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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의 우충좌돌] 주권자와 유권자 사이의 벽

입력
2017.04.0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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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쳤던 국민도 선거 앞두고 정치적 분화

제왕적 대통령제, ‘주권자’ 지위 가로막아

권력구조 개헌과 선거법 개정 병행해야

그렇게 무능하면서도 뻔뻔한 대통령이었다니! 국민은 정말 주권자답게 행동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아야 할 점이 있다. 주권자의 지위는 헌법에 의해 보장받지만, 그것이 실제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압도적 다수의 정치적 참여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것이 실제로 실행되고 또 제도적 변화를 가져온 예는 역사에서 드물다고 할 수 있다. 거꾸로 말해, 압도적 다수의 정치적 참여가 없을 경우 주권자의 ‘권리’는 헌법 조항에만 보장된 ‘잠재적’ 권리로 머물기 쉽다는 것이다. ‘압도적 다수’의 힘이 폭발적으로 분출하며 주권자의 아우라가 빛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그 빛은 이내 바래기 시작한다. 특별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하나로 뭉쳤던 국민이 다름 아닌 선거라는 정치적 현장의 소용돌이에서 다양하고 이질적인 정치 세력들의 지지자, 곧 유권자로 바뀌기 때문이다.

자연스런 과정이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애초부터 ‘주권자’는 잠재적 성격을 띠는데, 그것은 이제 전적으로 유권자로 대체되지는 않더라도 이것에 의해 밀리거나 가려진다. 여러 단계로 분열된다고도 할 수 있다. 전체 국민이라는 형태로 헌법에 명시된 주권자는 이미 정치적 참여 과정 속에서 ‘촛불 시위대’와 ‘태극기 친박’에 의해 분열된 후, 선거 과정에서는 이질적 개인과 집단으로 더 분열된다. 물론 선거를 통한 주권자의 ‘분열’이 마냥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대의정치는 투표자들의 정당한 ‘분열’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도 이제 저 높은 주권적 권리보다 일상의 바닥에서 기어가는 권리에 신경 쓸 일이 많아진다.

결국 주권자의 지위나 행동이 중요하지 않게 된다는 말? 아니다. 헌법에 보장된 잠재적 권리는 이제 투표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결정을 통해서 분열되면서 비로소 현실적으로 실행된다는 뜻이다. 물론 선거에 모든 게 달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정치적 결정은 기본권과 다른 차원에서 실행되는 싸움이다. 선거과정은 마케팅과 ‘상징 조작’을 통한 ‘더러운’ 싸움이다. 일단 정치적 상황이 시작되면, 주권자의 존엄한 권리에만 호소하기 어렵다.

그런데 그 권리에 호소하기 어렵게 만드는 다른 문제가 또 있다. 대통령에게 권위주의적 권력을 보장하는 헌법이 국민의 주권자적 지위를 애초에 방해하고 있다면? 총리를 하수인으로 부리는 초정부적 권력이 헌법에 의해 주어졌다고 믿는 대통령은 자신이 주권자라고 착각하는 과대망상적 행동을 하게 된다. 사회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시스템 작동의 모든 무게가 대통령에게 편집증적으로 쏠리는 현상, 여당을 직할 부대처럼 거느리는 그의 군주적 통치방식, 그리고 사법부의 권위는 안중에 없는 초법적 태도가 역사에서 왜 반복되는 걸까? 물론 헌법에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것이다. 국회와 사법부도 견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애초에 헌법이 대통령에게 권위주의적 권력을 부여한 상황에서, 그들에게 견제능력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대통령이라는 존엄한 지도자를 뽑아서 국가를 이끌게 해야 한다는 이상한 믿음 때문에, 다수당 대표에게 정치적 권한을 주는 내각제 정부를 믿지 못하는 ‘국민 정서’에도 책임이 없지 않다. 국민의 이런 태도가 대통령에게 극도의 권위주의적 권력을 행사하게 하는 헌법과 맞물려 있다. 그러니 그것에 책임이 없다고 누가 감히 말하는가?

내각 책임제로 갈 수 있다면, 독일 방식의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최선일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계속 직접 대통령을 뽑기를 원한다면? 이원집정제가 대안일 것인데, 이 경우 다수당의 총리가 국내정치에 관해 실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다수당의 정치적 권위가 합리적으로 인정되려면, 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제대로 분배돼야 한다. 따라서 권력구조에 관한 개헌 못지않게 선거제도 개정이 필요하다. 유력한 후보인 문재인과 안철수는 이제까진 개헌에 소극적이었다. 이제라도 개헌과 선거법 개정을 확실하게 공약으로 약속하라!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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