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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중의 고전산책] 세 군주 이야기로 보는 리더의 자질

입력
2017.04.0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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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 시대의 군주는 그야말로 권력의 중심에 서 있었기에, 권력암투의 소용돌이 속에 살고 있었다. 주변에는 충신들도 있었지만, 음험과 악독을 뒤로 하고 술수로 군주의 눈과 귀를 가리면서 사익을 추구한 자들도 적지 않았다. 《한비자》<팔간(八姦)>편에 예시된 것처럼, 군주 곁에는 ‘동상(同床)’인 처와 첩, ‘재방(在傍)’인 측근들, ‘부형(父兄)’인 친인척 등이 포진해 ‘사방(四方)’인 이웃 제후국의 외세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였지만 모든 것은 군주에게 귀결된다고 한비자는 지적하고 있다.

〈내저설하(內儲說下)ㆍ육미(六微)〉의 두 군주 이야기부터 보자. 어리석은 군주로 알려진 초나라 회왕(懷王)은 정수(鄭袖)라는 첩을 오랫동안 두고 있었다. 어느 날 정수의 미모가 쇠한 틈을 타서 미인(美人) 첩을 들였다. 하룻 만에 처량한 신세가 된 정수는 반격의 기회를 엿보았다. 갖은 선물 공세로 그녀의 환심을 사고 나서 어느 날 넌지시 일러주었다. “왕은 입을 가리는 것을 매우 좋아하오. 왕을 곁에서 섬길 때는 반드시 입을 가리도록 하시게.”(<내저설하>편) 신첩은 왕을 만날 때마다 입을 가렸다. 이상하게 여긴 왕이 찾아간 자는 다름 아닌 옛 여인인 정수였다. “그녀는 정녕 왕의 냄새를 싫어해서라고 했습니다.” 왕은 이 말을 마음에 새겨두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첩이 몇 번 더 입을 가리자, 왕은 노여워하면서 이렇게 외쳤다. “코를 베어라.” 곁에서 왕을 모시고 있던 자가 칼을 뽑아 첩의 코를 싹둑 잘랐다. 간교한 정수의 말 한 마디만 듣고 첩의 코를 베어버린 회왕의 오판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것은 무엇인가?

이와 다른 사례도 있다. 진(晉)나라 문공(文公)의 이야기다. 문공의 요리사가 고기를 잘 구워 바쳤는데 고기에 머리카락이 휘감겨 있었다. 괴이하게 여긴 요리사가 변명할 틈도 없이 문공의 서릿발 같은 문초가 이어졌다. “너는 과인이 목이 막혀 죽도록 하려고 했느냐? 어찌해서 구운 고기에 머리카락을 감았느냐?” 목숨마저 위태로운 위기 상황이었지만 요리사는 냉철한 어조로 머리를 조아리고는 이렇게 빗대었다. “저는 죽을 죄 세 가지를 지었습니다. 숫돌에 칼을 갈아 간장(干將)처럼 예리하게 해서 고기는 잘랐지만 머리털은 자르지 못한 것이 신의 첫 번째 죄이고, 나무로 고기를 꿰면서 머리털을 보지 못한 것이 신의 두 번째 죄이며, 숯을 가득 채운 화로를 준비해서 불이 발갛게 달았는데, 고기가 다 익도록 머리털을 태우지 못한 것이 신의 세 번째 죄입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자신을 미워하는 누군가가 주변에 있을 것이라고 한 마디 덧붙였다. 요리사의 침착한 대응에 문공은 낌새가 이상하여 진상조사를 해 보니, 요리사의 예측대로 그의 자리를 노리는 자가 꾸민 일임을 밝혀내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군주는 스스로의 오판을 과신하고 진심어린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아 화를 자초하기도 했다. 〈유로(喩老)〉편에 나오는 채(蔡)나라 환후(桓侯)의 이야기다. 환후에게 병이 났을 때, 마침 전설의 명의 편작(扁鵲)이 채 나라에 있었다. 편작은 환후를 만나 처음에 피부에 질병이 있다고 했으나 환후는 자신이 질병이 없다고 하면서 내쳤다. 그 때 그가 한 말은 “의사는 이득을 좋아해 질병이 없는데도 치료해 자신의 공이라고 자랑하려고 한다.” 는 것이었다. 의사의 소명을 다하려 열흘 뒤 다시 찾아간 편작은 치료하라고 했으나 환후는 응하지 않았고 심지어 불쾌해했다. 다시 열흘 뒤 찾아가 질병이 장과 위까지 침범했다고 그 심각성을 알려 주었으나 이 때도 환후는 불쾌해 할 뿐 일절 응하지 않았다. 또 열흘이 지나서 환후를 만난 편작은 아무 말도 없이 발길을 돌려 나왔고 국경을 벗어나고자 했다. 이상한 생각이 든 환후가 까닭을 묻자 편작의 답은 이러했다.

“질병이 피부에 있을 때는 찜질로 치료하면 되고, 살 속에 있을 때는 침을 꽂으면 되고, 장과 위에 있을 때는 약을 달여 복용하도록 하면 됩니다. 그러나 병이 골수에 있을 때는 운명을 관장하는 신이 관여한 것이라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지금 군주의 질병은 골수에까지 파고들었으므로 신이 아무것도 권유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도 환후는 무려 닷새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버티다가 통증이 심해져 편작을 찾았으나, 그는 이미 진(秦)나라로 달아난 뒤였다. 환후는 결국 죽고 말았다.

의사의 양심에 따라 그 심각성을 여러 차례 경고했으나, ‘병입골수(病入骨髓)’ 즉 병이 골수에 들어서 치료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도록 오직 자신의 어리석은 판단력에 의지하는 환후야말로 몽매한 군주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그는 편작을 이익이나 좇는 파렴치한 자로 매도하면서 목숨마저 잃었으니 말이다.

군주 곁에 이런 식의 일들은 늘 일어나게 마련이고, 늘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군주는 시비와 선악이 혼재하는 상황에서 냉철함을 유지하면서 사태를 파악하고 제대로 판단하여 위엄과 권위를 세워나가야만 사악한 자들이 발을 못 부치고 정도를 걷는 자들이 곁에 있게 된다. 일의 조짐(兆朕)은 형체가 없어 보이지만, 그것이 불거지면 파급효과는 예측불가일 때가 적지 않기에 말이다.

김원중 단국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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