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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이 봄, 우리는 꽃보다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입력
2017.03.29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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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지방에 다녀왔습니다. 당연히 서울보다 봄이 일러 매화나 산수유 같이 일찍 피는 꽃들은 말할 것도 없고, 능수버들까지 물기를 머금고 능청능청하는 것이었습니다. 봄이 오는 것을 내가 눈치 채기도 전에 벌서 봄이 왔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봄이 빨리 왔다고 생각하는 저를 보고 반성케 되었습니다. 봄이 제 생각보다 빨리 온 것도 사실이지만 세월이 가고 봄이 오는 것조차 눈치 채는 것에 민감치 못했던 저를 보게 된 겁니다. 봄이 빨랐던 것이 아니라 제가 느린 것이었지요. 그럼에도 저는 저를 중심으로 봄이 빨리 왔다고 하며 제가 늦었다고는 생각지 않았던 겁니다.

그랬습니다. 봄이 오는데 저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고, 봄이 오는 것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면 봄이 오는 것이라도 일찍 눈치 채고 사람들에게 봄의 기쁜 소식을 나르기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최순실씨 사건이 드러난 작년 10월 이후 오늘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거의 모두 봄소식보다 더 큰 뉴스들 때문에 봄 손님 오시는 것을 영접하는 데 소홀한데 저도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봄 손님 오시는 것을 환영치 못하게 만든 사람들이 참 나쁘다고 남 탓하다가 좋은 소식,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 제가 과연 천주교 신부요 환경의 수호자인 성 프란치스코의 후예라고 할 수 있는지 반성을 했습니다.

그런데 반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봄이 이 꽃들을 피우는 데 내가 한 것이 너무 없었던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나는 이 꽃들만큼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 반성이 되었습니다. 꽃들은 실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까! 이 꽃들은 누구를 행복하게 하겠다고 하지 않으면서도 실로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행복하게 합니다. 만일 꽃이 누구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꽃의 탓이 아니라 그 꽃을 보지 않은 사람의 탓이요, 보고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그 사람의 불감증이 탓이겠지요. 그런데 저라는 사람은 본래 나의 행복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까지 행복하게 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아닙니까? 그런데 나는 몇 사람이나 행복하게 하고 있는지. 아니, 오히려 남을 힘들게 하고, 더 나아가 불행하게 하고 있지나 않은지 부끄러움과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저를 반성하면서 이런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봅니다. 아름답기로만 치면 꽃이 사람보다 더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러니 아름다움이 주는 행복만 놓고 보면 꽃이 저보다 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아름다움보다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하는 것이 있고, 꽃의 아름다움보다 더 인간을 아름답게 하는 것도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사실 꽃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아름다움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꽃이 우리를 사랑해주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꽃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가 꽃을 사랑하지 꽃이 우리를 사랑하겠습니까? 꽃은 무위(無爲)의 행복을 우리에게 선사하고, 반대로 우리는 사랑하겠다고 하면서 나도 불행하고 남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아무튼 꽃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도 우리는 꽃을 사랑합니다. 더 위대하고 더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지 않아도 사랑하고, 싫어도 사랑하고, 미워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행복하게 함에 있어서 우리가 꽃의 아름다움을 능가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입니다. 사랑하는 것입니다. 꽃보다 우리가 더 사랑하는 것이고, 꽃이 사랑치 않는 미운 사람까지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행복은 사랑할 때 오는 것이기에 우리는 미운 사람 때문에 사랑하지 않고 나를 위해 사랑하며, 행복하기 위해 사랑합니다.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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