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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니 인사이드] 틈새시장 공략으로 급성장한 이랜드, 무리한 M&Aㆍ임금체불 이슈에 길을 잃다

입력
2017.03.26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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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앞 2평짜리 옷 가게서 시작

프랜차이즈 개념 도입 비약 발전

문어발 M&A로 영역 넓혔지만

차입금 규모 늘며 자금사정 악화

애슐리 등 알바 임금 체불 문제

이랜드리테일 상장심사에 타격

신용등급 하향 검토 등 먹구름만

중국 상해 창닝 지구에 위치한 팍슨-뉴코아몰 1호점 전경. 이랜드 제공
중국 상해 창닝 지구에 위치한 팍슨-뉴코아몰 1호점 전경. 이랜드 제공

프로축구 K리그 챌린지(2부리그) 소속의 이랜드 FC는 2015년 창단 당시 기존 구단들이 생각지도 못한 파격적인 마케팅으로 시즌 개막전부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대표적인 게 홈 구장인 잠실종합운동장의 변칙 운용이다. 7만석 규모의 좌석을 다 채울 수 없다고 판단한 이랜드는 서측 스탠드 5,000석의 표만 파는 희소성 전략을 통해 좌석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충성심이 높은 소수정예 팬만을 축구장에 초대하겠다는 이랜드의 전략에 팬들은 시즌권 확보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선수 선발과 감독 기용도 화제거리였다. 공개 오디션 방식으로 선수 선발전을 진행한 이랜드는 당시 4부리그 출신을 주전으로 발탁해 극적 묘미를 더했다. 초대 감독도 선수시절 부상으로 일반회사 영업직을 전전하다 다시 축구판으로 돌아온 무명의 외국인 감독을 영입해 축구팬들의 이목을 끄는데 성공했다. 프로스포츠단을 운영하는 대기업 관계자는 "2부리그 축구단을 출범하면서 이랜드처럼 팬들과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경우는 드물다"며 "이랜드그룹 특유의 파격 마케팅이 스포츠 산업에도 그대로 통했던 사례"라고 말했다.

역발상과 틈새시장 공략의 귀재 이랜드

이랜드의 뿌리는 1980년 문을 연 이화여대 앞 2평짜리 보세 옷 가게 ‘잉글랜드’ 였다. 서울대를 졸업한 당시 28세 청년이던 박성수(65) 회장은 근육무기력증이라는 병으로 취직이 어렵자 여대 앞 옷 가게 사장으로 변신한다.

박 회장의 역발상과 파격 마케팅은 이때부터 빛을 발했다. 그는 당시 거리를 점령했던 무채색 옷 대신 원색과 커다란 알파벳 문양을 디자인으로 활용한 옷을 전략적으로 판매했다. 비싸지 않은 가격과 화려한 디자인의 옷은 여대생뿐 아니라 20~30대 여성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잉글랜드 분점을 내겠다는 사람이 몰려들자 박 회장은 당시에는 생소했던 프렌차이즈 개념을 도입해 패션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90년대 10대 청소년들이 즐겨 입던 이랜드의 중저가 브랜드 ▦브렌따노 ▦언더우드 ▦헌트 등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경제발전이 급격히 이뤄진 1980~90년대 당시 10대 청소년들은 시장표 옷을 입기를 꺼려했다"며 "고가의 백화점 옷과 저가의 시장표 옷 사이의 틈새시장을 절묘하게 노린 이랜드는 비약적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어발 M&A의 그늘

패션업체로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 이랜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유통 ▦식음료 ▦호텔 등 전방위로 사업영역을 넓힌다. 사업확장의 주 수단은 인수ㆍ합병(M&A)이었다. 중국시장에 진출해 기초 터를 닦은 것도 이 무렵부터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뉴코아 ▦킴스클럽마트 ▦한국까르푸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종합 유통회사의 면모를 갖춰갔다. 중국사업에서 잭팟을 터트렸다. 2000년도부터 흑자를 내기 시작한 이랜드의 중국사업은 현재 그룹 전체 매출과 영업이익의 30%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랜드가 중국에서 운영하는 패션매장수도 7,300여 개에 달한다.

활발한 M&A와 중국 사업 성공을 발판으로 이랜드그룹은 10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연간 7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재계 40위권 기업으로 급성장했다. 하지만 M&A를 위해 과도하게 빌린 돈이 문제였다. 이랜드는 M&A에 들어가는 돈을 자체 내부 유보금이나 외부에서 빌린 돈으로 충당했는데, 차입금 규모가 늘면서 재무구조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패션 시장 성장도 정체되면서 이랜드의 자금 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

신용평가사들이 이랜드의 재무구조 상황에 옐로우 카드를 들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이랜드는 그룹 부채비율이 2011년부터 300%를 넘어서자 부동산 등 주요 자산 매각 작업에 돌입했다. 최근에는 주력 의류브랜드인 ‘티니위니’를 7,800억원에 중국 매각하는 초 강수를 두기도 했다. 이랜드 관계자는 “티니위니 매각으로 부채비율이 200% 대로 떨어지게 됐다”며 “올해 서울 강남구 쇼핑몰 점프밀라노 건물과 회사가 보유한 부지 등의 추가 매각으로 부채비율을 100%대로 떨어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체불에 발목 잡힌 그룹의 명운

이랜드가 내세운 재무구조 개선작업의 또 다른 한 축은 이랜드리테일의 기업공개(IPO)다.

이랜드리테일은 그룹의 지주사격인 이랜드월드의 유통 자회사로 뉴코아아울렛과 2001아울렛, NC백화점 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 애슐리, 자연별곡 등 외식사업을 주로 하는 이랜드파크를 자회사로 두고 있어 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분류된다. 2015년 기준 이랜드리테일의 연결기준 매출액은 2조 8,681억원으로 그룹 전체 매출 7조 1,069억원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이랜드리테일만 제값을 받고 상장한다면 유동성 위기를 일시에 해소할 수 있다는 게 이랜드 측 기대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에 이랜드 IPO 일정은 차질을 빚고 있다. 자회사 이랜드파크가 애슐리, 자연별곡 등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의 임금과 수당을 주지 않았다는 문제가 최근 불거지면서 이랜드리테일의 상장심사가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우량기업 신속심사(패스트트랙) 대상인 이랜드리테일이 지난해 12월 28일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해 상장심사 결과는 늦어도 지난 1월말까지는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거래소측은 이랜드의 임금 미지급 사건을 문제 삼으며 아직 심사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거래소는 최근 3년간 이랜드리테일의 임금 지급내역을 추가로 요구하기도 했다.

문제는 신용평가사인 한국기업평가(한기평)가 이랜드리테일의 승인 심사가 3월을 넘길 경우 이랜드월드의 신용등급 하향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점이다. 앞서 지난해 말 또 다른 신용평가사인 한국신용평가(한신평)가 이랜드월드의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 등급 바로 윗 단계인 BBB-(부정적)로 낮춘 바 있어, 한기평 마저 신용등급을 내리면 이랜드리테일 IPO 진행에 빨간 불이 켜질 수도 있다. 일각에선 상장이 되더라도 박성수 회장이 장악한 이랜드월드 지분이 많이 풀리지 않고 공모가도 낮게 책정될 경우 이랜드그룹 재무구조 개선에 큰 효과가 없을 거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이랜드 그룹 관계자는 “당초 상반기 내 상장을 목표로 한 만큼 일정이 크게 늦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2015년 4월 이후 M&A를 중단하고, 영업이익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그룹 전체 재무구조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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