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돈의 전당] 돈맛 빠진 대학들, 교육 투자엔 '짠손'

#1
대학들 정부 지원금 조건 맞추려
정원 늘리고 학부 신설 등 무리수
강의실 부족에 수강신청 전쟁
학생들 교육받을 권리 침해당해
#2
홍대 ‘캠퍼스 자율전공’ 개정으로
미대 등 인기학과로 학생들 몰려
수강 대란 불구 학교는 뒷짐만
학생들 교육소비자커녕 생존투쟁

이화여대 공대(엘텍ㆍELTEC) 신입생 A씨에게는 매주 두 번 ‘전력 질주의 날’이 있다. 공대 학생이면 반드시 들어야 하는 ‘미ㆍ적분학’ 수업이 있는 화요일과 목요일이면 직전 교양 수업이 끝나기 10분 전 강의실을 빠져 나와 눈썹이 휘날리게 뛰어야 한다. 숨차게 강의실에 도착해선 ‘블랙홀’을 피해 자리를 확보해야 한다. 원래 40명이 앉으면 꽉 차는 이 강의실에서 A씨와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은 50명. 강의실에 추가로 집어넣은 의자 10개 때문에 교실 뒤쪽은 옴쭉달싹 할 수 없고, 맨 앞줄 가장자리는 칠판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 만약 이 블랙홀에 앉으면 그 날 수업은 출석에 만족하고 명상으로 90분을 버텨야 한다. 교수님도 상황의 열악함을 아는지라 짠한 눈빛만 보낼 뿐이다.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뛰고 있다. 기초적인 전공 수업조차 진행이 어려울 만큼 교육 환경 투자를 방기하고 있는 일부 대학에서, 학생들은 수강 신청부터 강의실 자리 잡기까지 생존 투쟁을 벌여야 가까스로 졸업한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함. 배우한기자bwh3140@hankookilbo.com

“억울하다”고 A씨는 말했다. “강의 때마다 자리싸움이 치열해요. 저도 처음엔 앞 수업 다 끝내고 왔죠. 그랬더니 ‘블랙홀’이라는 맨 앞줄 가장자리밖에 안 남아 있었어요. 일부 학생들은 거의 서서 듣다시피 해요. 그래서 앞 강의시간 교수님께 사정을 설명 드리고 강의 끝나기 전에 나가도 된다는 허락을 얻었어요. 헐레벌떡 뛸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입학금, 등록금 수 백 만원을 냈는데 내가 왜 이렇게 해야 하나….”

이화여대는 지난해 공대의 덩치를 확 키웠다. 322명이던 신입생 정원을 193명이나 늘렸고(515명), 7개 학과는 4개 학부 9개 전공으로 탈바꿈했다. ‘휴먼기계바이오공학부’ ‘소프트웨어학부’ ‘차세대기술공학부’ ‘미래사회공학부’ 등 그 이름도 화려한 학부들이 탄생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프라임(PRIMEㆍ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 중 소형 사업 지원 대상 12개 학교에 포함돼, 연간 약 50억원의 정부 지원금과 입학정원을 조정 자격을 확보한 결과다.

그러나 변신의 후유증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기존 정원의 3분의 2가 갑자기 늘어났지만 학생들이 들을 수 있는 강의는 넉넉히 개설되지 않았고, 강의실은 흑백TV 시절에나 보던 콩나물 시루가 따로 없다. 공대 학생이면 누구나 배정 받던 사물함이 모자라 무거운 전공 책도 짊어지고 다녀야 한다.

이런 후유증은 일찍부터 예상됐다. 사실상 단과대 하나가 새로 생기는 것이나 다름 없는 큰 변화인데도 준비 기간은 턱없이 모자랐다. 3년 동안 21개 대학에 6,000억원 넘는 지원금을 쏟아붓는 프라임 사업은 ‘2015년 12월 29일 공고→2016년 3월 사업계획서 접수→5월 초 선정 대학 발표’까지 5개월 만에 결론이 났다. 사업 공고 뒤 2, 3개월 만에 사업계획서를 내야 했기 때문에 대학들은 교수, 학생 등 구성원들과 진지한 논의가 애초부터 이뤄질 수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학생들 미래와 직결되는 학과 개편 및 정원 조정이 차분한 의견 수렴 없이 추진됐고, 상당한 반발과 내홍을 겪었다. 이화여대를 비롯해 프라임 사업 선정 대학들은 대입 수시 원서 접수를 겨우 4개월 앞두고 학과를 개편했다. 인문계 정원을 축소하고 공대를 늘리는 방향에 대학 구성원들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됐느냐는 근본적 물음에 이어 현실적인 문제제기가 일었다. 과연 대학이 이 학생들을 인재로 양성하기 위해 교수진, 강의실, 실험장비, 사물함이나 식당 같은 부수 시설까지 ‘가르칠 준비’를 했느냐는 것이었다.

전공 책 한권 올려두기에도 비좁은 책상의 대학 강의실에서 한 여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강의실과 교수진이 절대 부족하고 시설도 노후한 일부 대학에서 학생들은 교육 받을 권리를 주장하지도 못한 채 졸업에 급급한 형편이다. 학생 제공

A씨의 전력 질주는 그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예다. “미ㆍ적분학 첫 강의를 갔는데 강의실이 터질 것 같았어요. 교수님도 학생들도 모두 깜짝 놀랐어요. 공대 정원이 엄청 늘었고 전공 수업인데도 강의 들을 학생 수를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은 채 학기를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처음 7개 반에서 새로 반 하나를 급하게 만들었는데도 원래 정원보다 10명 이상씩 더 배정됐어요. 강의실이 미어 터지는데도 학교는 큰 강의실 배정이 어렵다고 해서 이 지경이 됐어요.” 결국 대학이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에 대해선 눈감은 채 50억원을 쥐고 보자는 생각에 급급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화여대 측은 “수강이 제대로 안 된 학생들에 대해 수요 조사를 했고 수강생 증원, 추가 분반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안내했다”며 “새로 생긴 학부나 전공의 경우 연차 별 계획에 따라 교수를 충원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새 학기 강의실 학생들로 폭발 직전

블랙홀, 콩나물 시루 강의실은 비단 이화여대만의 상황이 아니다. 홍익대 미대 시각디자인학과는 3월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한바탕 난리가 났다. ‘기초 입체’ ‘기초 평면’ 등 1학년 전공 수업에 수강신청자가 폭주하면서 도저히 수업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반을 하나 더 추가하기 위해서도 학생들 스스로 나서야 했다. 추가 반 개설을 위한 최소 인원 30명을 모집하기 위해 학생회가 3,4학년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재수강을 신청하도록 부탁한 뒤 다시 취소하도록 해 신입생 수업으로 운영하는 편법을 동원했다. 늘어난 수업은 시간강사를 급히 구해 강의를 맡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의실은 폭발 직전이다. 홍익대 미대 관계자 B씨는 “새로 반이 생기면서 미대 강의실로는 부족해 다른 단과대 강의실까지 쓰고 있다. 본부 측에 시설 확대를 요청했지만 딱히 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고 답답해 했다.

A4용지를 올려두기에도 좁은 한 대학의 책상. 학생 제공

이 같은 혼란은 학교 측이 지난해 ‘캠퍼스 자율전공(캠자)’ 신입생들의 전공 선택 관련 학칙을 개정한 후 증폭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캠자 신입생은 원하는 전공을 선택해 학교에 제출하되, 시각디자인 산업디자인 건축학과 등 인기 전공의 경우 정원이 초과되면 학점에 따라 우선 선발하는 ‘진입 제한’을 뒀다. 그러나 올해 신입생부터는 평균 학점이 B 이상이면 누구나 원하는 전공을 고를 수 있도록 장벽을 크게 낮추었다. 그러자 시각디자인과 같은 인기 전공 수업에 수강생이 지난해보다 약 60명이 더 몰린 것이다. 늘어난 학생들을 학교가 감당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B씨는 “지난해 학칙을 바꾼 뒤 전공 강의 반을 1개 더 늘린 상태였지만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시각디자인, 산업디자인 전공을 선택할지는 예측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학내에선 학교 측이 진입 제한을 열어주면서 캠자 정원을 대폭 늘려 등록금 벌기에만 급급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캠자 입학 정원은 지난해 331명에서 473명으로 43%나 늘었고, 캠자 신입생 등록금은 홍익대 내에서 가장 높은 미대 수준(학기 당 450만원)이다. 게다가 학내 강의실 부족과 수강신청 대란은 이미 심각한 수준이었다. B씨는 “올해 캠자 정원이 늘기 전에도 학생 수에 비해 강의 수가 부족하고 강의실은 학생들로 넘쳐났다. (애초에 인프라가 부족해) 반 하나를 더 늘리는 것조차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학생들은 값비싼 등록금을 내고서도 양질의 교육을 받기는커녕 어떻게든 졸업 학점을 채우기 위해 피튀기는 싸움을 벌이는 신세가 됐다.

혼란 해결은커녕 일단 학생 더 뽑고 보자

전공수업조차 듣기 어려운 이런 상황은 지방 사립대에선 더 흔하다. 수강생은 넘쳐나는데 추가 개설이 안 돼 선배들에게 양보하는 일까지 생긴다. 대전 한남대에서 경찰행정학을 전공하는 4학년 C씨는 지난해 수강신청을 했던 ‘청소년 범죄론’이라는 전공 수업을 듣지 못했다. “3학년 2학기에 들어야 하는 전공 수업인데, 수강신청에서 튕겨져 나왔다. 조교는 ‘4학년 선배들이 졸업해야 한다고 사정을 하니 어쩔 수 없다’며 내년에 들으라고 했다. 강의하는 선생님께 추가로 받아주실 수 없느냐고 부탁드렸지만 자신은 시간강사라 권한이 없다고 해서 결국 포기했다.” 그는 “이번 학기엔 3학년 후배가 전공 필수 과목인 ‘형사소송법’ 강의를 들으려 했는데 복수 전공을 하는 다른 학과 학생들이 몰려 못 들었다”고 덧붙였다.

한국외대 도서관의 한 화장실. 도심 건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줄로 잡아당겨 물을 내리는 화장실이 여전히 대학 건물에 쓰이고 있다. 학생 제공

복수 전공이 일반화했는데도 수업 인프라는 따르지 못하고 있다. 한국외대는 복수 전공을 하지 않을 경우 한 전공만으로 졸업 학점을 채우기 어려울 정도로 전공 강의가 부족해 사실상 의무적으로 모든 학생들이 이중 전공을 하고 있다. 이 대학에서 미디어와 경영학을 이중 전공하는 D씨는 “전공 수업은 몇 개 없는데 주 전공 학생에게 수강 신청 우선권을 주고 신청이 다 끝난 다음에 복수 전공 학생들에게 수강 신청을 하게 한다. 얼마 안 되는 수강 티켓을 놓고 복수 전공 학생들끼리 다툼을 벌인다”며 한숨을 쉬었다. 듣고 싶은 전공 강의를 맘대로 골라 듣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심지어 졸업하기 위해 먼저 수강 신청한 학생들에게 돈을 주고 취소하게 한 다음 추가 수강 신청을 하는 지경이다. 여기에 여러 대학들이 앞다퉈 영입하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들까지 경쟁에 가세하면서 강의실은 난리 그 자체다. 학생들은 교육 소비자로서 권리 주장은커녕 수업을 듣는 당연한 일을 생존투쟁처럼 수행하고 있다.

홍익대에서 20년 이상 재직한 한 교수는 “요즘 대학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대학들이 갖가지 ‘자율전공’을 신입생을 뽑는 변칙 통로로 활용할 뿐 강의실ㆍ실습실 등 교육 여건 개선은 신경도 안 쓴다. 밀착 교육은 불가능하고 교육의 질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근본적인 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조차 흐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학문의 전당’은 학문을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곳이 되고 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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