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가 위험하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미사일 발사로 안보환경이 칼날 위에 선 것처럼 위태롭다. 미국은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군사적 타격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게다가 한ㆍ중ㆍ일의 갈등과 대립도 첨예하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에 반발하여 한국 기업의 영업을 방해하고 중국인 관광객의 방한을 제한하는 등 노골적으로 보복조치를 취하고 있다. 일본은 한국의 시민단체가 부산 총영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한 것에 항의하여 주한 대사와 총영사를 소환하고 통화스와프 협의를 중단했다. 중국과 일본도 센카쿠열도(조어도)의 영유권 등을 둘러싸고 일촉즉발의 대결자세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한국과 주위의 평화와 안녕이 지금처럼 위험한 때도 없었다. 그야말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ㆍ중ㆍ일 사이의 물자교역과 인적 교류는 무척 활발하다. 2015년 삼국간의 무역액은 7,000억 달러를 넘었고 상호 방문객수는 2,400만 명에 이르렀다. 삼국의 경제규모는 세계의 20%, 아시아의 70%, 동아시아의 90%를 차지한다. 거기에 삼국과 밀접히 연계되어 있는 미국까지 가세하면 그 비중은 가히 지구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크다. 한·중·일의 교역교류가 이렇게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외교나 안전보장에서 서로 날카롭게 충돌하는 기이한 현상은 분명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한국은 과연 이런 역설의 위기를 극복하고 생존과 번영을 지속할 수 있을까? 요즘의 국내외 상황을 돌아보면 대단히 걱정스럽다.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돌고래 사관’을 주창해 왔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라는 속담에서 따온 것이다. 100여년 전 대한제국은 한반도 주위에서 우글거리던 고래 곧 열강의 싸움에 휘말려 나라를 잃었다. 새우의 신세였던 셈이다. 그 후 식민지, 남북분단, 6ㆍ25전쟁 등을 거치면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다. 그렇지만 한국국민은 이에 굴복하지 않았다. 절치부심(切齒腐心) ‘조국근대화’에 매진하여 불과 반세기 만에 세계가 손꼽는 부국강병과 자유민주를 이룩했다. 돌고래 정도로 성장한 셈이다. 그리하여 한반도 주위에서 열강인 고래들이 우글거리는 상황은 여전하지만 한국은 돌고래처럼 민첩하게 그들 사이를 누비며 생존과 번영을 지속할 것이라는 게 ‘돌고래 사관’의 골자이다.

열강 사이의 세력다툼이 격렬한 동아시아에서 한국은 어떻게 하면 생존과 번영을 도모할 수 있을까? 당장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묘안은 아니지만 새우의 신세에서 벗어나려고 목숨을 바쳐 투쟁했던 안중근의 유언에서 돌고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죄목으로 일본의 법정에서 사형판결을 받았다. 그는 여순(旅順) 감옥에서 비장한 각오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열강의 공방이 되풀이된 여순을 동양평화의 근거지로 조성하고 한ㆍ중ㆍ일의 공동군항으로 삼는다. 한ㆍ중ㆍ일의 청년으로 공동군단을 편성하고 각 청년은 2개국어 이상을 습득하여 형제우의를 다진다. 한ㆍ중ㆍ일이 평화회의를 조직하여 동양평화방략을 수립실천하고 그것을 인도ㆍ태국ㆍ버마 등으로 확대한다. 한ㆍ중ㆍ일이 공동출자하여 각지에 은행을 설치하고 공동화폐를 발행하여 사용한다. 한ㆍ중ㆍ일이 만든 동양평화기구는 로마교황의 인준을 받아 국제보장을 획득한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제국주의가 횡행하던 당시에는 한낱 꿈과 같은 이야기였다. 실제로 5개월 후 대한제국도 폐멸되었다. 그런데 100여 년이 지난 지금 ‘동양평화론’의 이상은 오히려 유럽에서 대부분 실현되고 있다. 선견지명(先見之明)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중·일·북·미 사이의 대결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동아시아는 그의 ‘동양평화론’에서 지혜를 배워야 한다. 일본은 안중근이 ‘동양평화론’의 구현방법을 자세하게 집필하기 전인 1910년 3월 26일 사형을 집행했다. 이제 ‘동양평화론’의 각론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 되었다. 안중근의 순국 107주년을 맞아 동아시아가 평화와 공영의 미래를 함께 만드는 쪽으로 선회하기를 바란다. 한국이 그 주역이 되면 더욱 좋겠다. 안중근을 의사(義士)로 기리는 돌고래 국가답게.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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