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희정 충남지사 부인 민주원 여사

안희정 충남지사의 부인 민주원씨는 안 지사의 소통능력과 통찰력을 정치인으로서 최대 장점으로 꼽았다. 왕태석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고려대 83학번 동갑내기로 학생운동을 함께하던 정치적 동지였다. 그러나 결혼 후 길이 갈렸다. 남편이 참여정부 탄생의 주역으로 “노무현으로 표현되는 가치”에 자신을 내던지는 동안, 생계를 잇고 아이들을 키우는 건 오롯이 아내의 몫이었다. 대선 후보 지지율 2위의 무서운 다크호스로 떠오른 안희정 충남지사의 부인 민주원(53)씨. 자신을 “안 지사의 30년 친구이자 아내”라고 소개하는 그에게 정치인 안희정의 장단점과 다양한 면모, 영부인의 역할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답변마다 유머가 넘쳤다.

안희정 충남지사(왼쪽)와 부인 민주원씨가 1989년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을 때. 야자수로 하트를 만들었다. 안희정 캠프 제공

-드라마 ‘도깨비’의 첫눈 장면을 패러디한 영상이 화제가 됐다. 평소 그렇게 알콩달콩한 편인가.

“사이는 아주 좋은 편이다. 문제는 첫 눈은 일 년에 한 번만 온다는 거. 애정표현도 첫 눈 오듯 한다.” (▶ 영상보기)

-첫사랑인가.

“운이 없다. 첫사랑이다.(웃음) 하지만 ‘친구 부부’라 평등하고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다. 기성질서에 덜 얽매인달까.”

-어떻게 만났나.

“대학 1학년 때 남편이 도서관 앞자리에 앉았는데 제 친구랑 아는 사이더라. 안면을 튼 후 우연히 같은 수업을 듣게 됐다.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는데 종강 무렵이 되니 더 이상 만날 구실이 없어 남편이 고민을 좀 했던 모양이다. 동지적 관계를 발전적으로 계승하자는 둥 한참 무슨 얘기를 하길래 그러자고 한 게 6년 연애로 이어졌다. ‘밀당’(밀고 당기기)도 없이 오누이처럼 연애했다.”

-남편 별명이 ‘충남 엑소’인데.

“그렇게 불릴 때만 ‘아, 그렇지’ 한다.”

-남편의 외모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말인가.

“잘생긴 거야 대학교 1학년 때 알아봤다.(웃음) 처음 봤을 때는 피죽 한 그릇도 못 먹은 것처럼 얼굴이 허옇더라. 내가 강원도 여자라 서울깍쟁이 같은 모습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대입 검정고시(안 지사는 남대전고 제적, 성남고 자퇴 후 검정고시를 쳤다) 준비하느라 해를 못 봐서 그런 거였다. 방에만 몇 달간 있었다는 말을 듣고 그런 오해가 좀 가셨다.”

-어떤 점이 매력이었나.

“반듯하고, 성품이 좋고, 정이 많다. 생각이 바르고, 가치 지향이 나와 비슷해 잘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1995년 큰 아이를 안고 시부모님과 함께 참석한 남편의 대학 졸업식. 안희정 캠프 제공

-철물점집 아들과 건설회사 중역 딸이 만나 연애했는데, 집안 반대는 없었나.

“먹고 사는 데 전혀 지장 없는 정도였지, 우리 집이 대단한 부자는 아니었다. 연애는 몰래 했고, 결혼할 때 엄마는 좀 반대하셨다. 남부럽지 않게 키워놓은 딸이 집도 없대지,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라지, 시댁 형편도 아주 어려울 때라, ‘네가 왜 그런 집에 시집을 가냐’ 하셨다. ‘그런 집에 시집 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랑 결혼을 하는 거다’ 말씀 드렸다. ‘괜찮다. 나한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잘 살 수 있다’ 설득했다. 그때 커다란 큐빅 반지 두 개를 사서 엄마한테 ‘다이아 반지 받았다’고 말했는데, 몇 년 후 집에 도둑이 들어 훔쳐갔다. 그 도둑이 얼마나 실망했을까, 안쓰러웠다.(웃음)

아버지가 의외로 경제적 문제에는 쿨하셨다. ‘남자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게 중요하다’며 ‘그런 어려움이야 벌면서 헤쳐나가면 된다’고 하시더라. 당시 우리 고민은 남편이 학생운동 하다 구속됐던 사실을 얘기하고 결혼하느냐 안 하고 하느냐였는데, 항상 우리는 ‘맞을 매는 먼저 맞는 게 좋다’는 게 원칙이다. 아버지가 실향민이시라 반대가 심할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그 길로 나갈 뜻이 명확하다면 그런 일 겪을 수도 있지’ 하며 허락하셨다.”

-안 지사의 첫 직업이 김덕룡 의원 보좌관이었다. 이 사람은 정치인이 되겠구나 예상했나.

“전혀 못했다. 나는 이 사람이 재야운동권에 있거나 사회운동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하려면 은행에 가서 융자를 받아야 하니까 의원실에 들어간 거지 그 길로 계속 나갈 줄은 몰랐다. 그 자리에서 의미가 있었던 건 당시 사회운동권의 목소리를 제도권 안으로 들여오자는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자기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사회단체들을 참 많이 만나고 다녔다. 정치를 하게 된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난 게 결정적 계기였다.”

-17년간 노 전 대통령과 삼각관계로 살아온 것 같다고 했는데.

“집에 와도 늘 정신이 다른 데 가 있으니까. 항상 다른 남자 생각만 했다.(웃음) 몸은 와 있는데 마음과 정신은 다른 데 가 있던 시절이라 소외감을 많이 느꼈다. 아이들은 아빠가 집에 들어오면 같이 놀고 싶어하는데 바쁘다며 외면하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로서 마음이 찢어졌다. 그걸 참는 게 좀 힘들었다."

-남편이 중요한 정치적 결단을 내리기 전에 미리 고민을 공유하는 편인가.

“상의한다기보다는 어떤 사건을 겪은 후의 소회나 감정, 생각 같은 걸 주로 얘기한다. 나 이랬어, 이런 게 힘들어, 그런 풀리지 않는 감정의 응어리들을 사후적으로 말한다. 제가 어차피 무엇을 진행시키는 데 필요한 사람은 아니다. 그건 정책 보좌진이나 도청의 전문가들이 하는 일이다. 제가 담당하는 일은 집에 왔을 때 그가 들고 온 짐을 나눠 지거나 덜어주는 거다. 힘들었던 점이나 괴로웠던 점을 얘기하면 위로해주고, ‘이래서 그런 거 아닐까’ ‘자기가 왜 그랬을까’ 질문한다. ‘내가 왜 그랬지?’ 생각하다 보면 ‘그래서 그랬구나’ 알게 되면서 풀어지는 경우가 많다. 마음을 정돈하는 일을 도와준다. 저는 주로 듣기만 하는데, 어디 가면 대화를 많이 한다고 얘기하고 다니더라.”

1997년 둘째 아들의 첫 돌에 찍은 가족 사진. 안희정 캠프 제공

-남편이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교사로 일하며 생계를 책임졌다. 두 아이 키우며 혼자 지기 힘든 짐이었을 텐데.

“남편이 도지사 되기 전까지는 거의 혼자 집안을 꾸려왔다. 시댁에서도, 친정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었고, 남편은 집에 안 들어오고…. 아이 둘 키우면서 많이 힘들었다. 몸도 마음도 너무 많이 지치고, 내 인생에서 이때 제일 우울했던 것 같다. 남편이 하는 일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생각하니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부부싸움도 많이 했겠다.

“자주 못 봐서 많이는 못했다. 하지만 한번 하면 강렬하게 했다. ‘이럴 거 결혼을 왜 했냐? 애는 왜 낳았냐?’ 그런 레퍼토리로. 그러면 며칠 최선을 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똑같았다.(웃음)”

-정치인 안희정의 장단점을 평가한다면.

“소통능력이 뛰어난 게 장점이다. 그 말은 곧 잘 듣는다는 얘기고, 상대를 이해하려 애쓴다는 거다. 입체적, 종합적으로 보는 통찰력도 뛰어나다. 문제를 당장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근시안적 접근법을 넘어서 이 문제가 사후에 무엇과 연결되고 그러므로 어떤 각도에서 바라봐야 입체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지 통찰력이 있다. 마음이 따뜻한 것도 장점이다. 단점은 한번 원칙과 목표를 정하면 잘 안 바꾼다는 것. 고집스럽달까. 장점이자 단점인데, 지금까지는 단점으로 드러난 경향이 있다. 앞으로는 장점으로 발휘되지 않을까.”

-남편이 정치를 안 했으면 좋겠다 싶을 때 없었나.

“2004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구속됐을 때, 말은 못했지만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고생하더니.”

-의원 비서관으로 남편보다 먼저 정계에서 일했는데, 왜 계속하지 않았나.

“처음부터 교직을 하려는 뜻이 강했다. 의원실은 전교조 해직교사협의회 간사로 일하다 소개로 우연히 가게 된 거였다.”

-그렇게 가고 싶던 교직을 스스로 그만둔 이유는.

“저 혼자 아이들 돌보는 게 너무 힘들어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 좋은 엄마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 좋은 엄마가 되려면 우선 엄마가 행복해야 한다. 그런데 그때 우울감이 너무 커 그렇지 못했다. 행복하지 못한 엄마는 아이들을 행복하게 키우는 게 힘들다. 그때 얘기를 하면 참 속상한데,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과 싸우고 사고를 많이 쳤다. 아빠도 아이들과 같이 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엄마도 제대로 못 돌봐주니 그런 것 같아 일을 그만뒀다. 아직도 아이들한테 굉장히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안 지사도 제일 반성하고 후회하는 게 그 시절에 아이들과 함께 못해준 거다. 감옥에서 많이 반성했다더라. 나와서는 좋은 아빠가 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아이들과 자전거 타러 다니다가 넘어져서 빗장뼈도 부러지고, 애들 학교에서 축구대회 나갔다가 팔이 부러지기도 했다. 지리산, 설악산 등 산이란 산은 애들이랑 참 많이 다녔다. 3년 터울의 두 아들이 나중에 ‘아빠가 애쓰는 게 느껴지더라’ 말하는데 깜짝 놀랐다. 그때 10세, 13세였는데 그걸 느꼈던 거다. 그러면서 용서가 되었다고 하더라. 이후 사이가 좋아졌다.”

-아이들한테 어떤 가치를 강조하며 키웠나.

“공부 잘하라는 말은 전혀 안 했다. 학교도 대안학교에 보냈다. 건강하고, 자기를 사랑할 줄 알고, 남을 아프게 하지 않으면 된다고만 가르쳤다. 큰 아들은 철학을, 작은 애는 심리학을 전공한다. 큰 애는 군대에 다녀왔고, 작은 애는 작년 철원 부대에 운전병으로 입대했다가 건선이 심해 쫓겨나왔다. 재검 받고 오라는 말에 아버지 생각이 떠올라 ‘안 돼요. 저는 꼭 군필이 돼야 해요’ 매달렸다더라.”

-같은 지점에서 만나 손잡고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걸어 들어갔는데 부부의 삶이 크게 달랐다. 여성의 주체적 삶에 대한 고민이 많았겠다.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다고 해서 여성이 주체적 삶을 살게 된 건 아니다. 가장 큰 원인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가사와 육아노동이 너무 여성에게 집중돼 있다는 거다. 이 엄청난 노동을 여성 홀로 책임지는 게 당연한 이데올로기처럼 돼 있다.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게 그래서 슈퍼우먼 이데올로기다. 그걸 만들어서 이 세상에 뿌린 자들이 누구냐, 그 허구를 알아야 한다. 슈퍼우먼은 있어선 안 되고, 있을 필요도 없다. 이렇게 엄청난 가사노동 속에서 여성에게 주체적인 삶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그러니까 여자들이 비혼을 원하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 가르치기는 여자도 주체적으로 살라고 한다. 이런 사회적 바탕에서 아이를 낳으라고 권장하는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

이걸 누가 해결하나? 지금은 ‘여성들이여, 당신들이 해결하라’는 거다. 이 가부장적 모순은 몇 백 년의 역사를 통해 굳어진 건데 그걸 해결해야 할 주체는 여자 혼자인 것처럼 말한다. 여자들이 해야 할 일은 슈퍼우먼의 환상에서 벗어나는 거다. 모든 것을 잘 할 필요가 없고, 못한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자기가 할 수 있고, 즐거운 만큼만 하면 된다. 그리고 결혼할 때는 정말 남자를 잘 고르거나 잘 교육시켜야 한다. 사랑한다면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는 것뿐 아니라 ‘너를 위해 노동을 나누겠어’라고 말해야 한다. 내 시간과 노동을 나눠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남자를 골라야 한다. 그런 각오나 동의가 돼 있는 남자여야 한다.”

-자책의 발언인가.

“다 섞여 있다. 삶이 준 깨달음이다.(웃음) 사람이 행복하게 주체적으로 살려면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과 여백이 있어야 하는데 여자들은 그게 없다. 이런 조건 속에서 주체적으로 살라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 가정 내 변화를 만드는 게 그 출발점이다. 동시에 제도나 정책에도 관심을 기울여 환경의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그 제도와 정책을 만드는 게 대선 후보로서 안 지사의 역할인데, 잘 가르치셨나.

“우리 결혼생활 내내 아내인 나를 이해하는 것이 여성의 삶을 이해하는 걸로 잘 전달이 된 것 같다. 많이 싸웠고, 왜 싸웠는지도 모르고 싸웠는데, 지나고 보니까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지지 않는 내 인생에 대한 저항, 공격, 대립이었던 것 같다. 한 20년 싸우다 보니 이게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여성의 삶이라는 것에 대한 몸부림과 부딪힘이었던 것 같다.”

2013년 용봉산 산행 중인 안희정(오른쪽) 충남지사와 부인 민주원씨. 안희정 캠프 제공

-가정 내 노동 분담이 이제는 잘 되나.

“시간이 있으면 잘 하는 편이다. 남편은 마음이 심란하면 청소를 주로 하는데, 마음이 다 정리됐는데도 청소할 게 남아 있으면 ‘내가 너무 안 치웠나?’ 싶어 좀 민망하기도 하다. TV에서 백종원씨 요리 프로를 보다가 나가서 장을 봐오기도 한다. 냉파스타 같은 걸 하는데 맛있게 잘한다. 저녁 다 먹고 배부를 때 해줘서 그렇지.(웃음)”

-교직을 떠난 후 아동상담을 공부했다. 누군지 알리지 않고 보육원과 여러 아동시설에 상담 봉사를 다녔다는데.

“우리 애 때문에 상담 받으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 아이들 마음을 잘 어루만져서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나게 해주는 건 국가적으로도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동 상담도 중요하지만 사실 교사들 상담도 중요하다. 선생님 마음이 편안해야 아이들을 잘 돌볼 수 있으니까. 얼굴이 알려지면서 앞으로 영유아 상담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나 싶어 걱정이 되기는 한다.”

-남편의 대선 출마 선언 이전에는 언론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정치적 동지로서 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보일 수도 있었을 텐데 조용한 내조를 추구한 이유는.

“조용한 내조를 했다기보다 그냥 조용히 내 인생을 살았던 것 같다. 사실 내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도지사가 선출직이다 보니 배우자도 당 행사와 도정 행사에 나가는 게 관행이다. 하지만 저는 선출직 공무원은 자기 능력으로 뽑히는 거라고 생각한다. 후보가 능력이 없으면 떨어지는 거지 배우자가 목욕탕 가서 유권자들 등 밀어 드린다고 붙는 건 아니지 않나. 그것 쫓아다니느라 내가 하는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크게 돈 버는 일은 아니지만 의미와 가치를 두는 일이고, 10년 넘게 해온 일이다. 관습적 행사에 잘 차려 입고 앉아 있다 오기 위해 내 일을 포기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영부인이 되면 그럴 수 없을 텐데.

“안 되나?(웃음) 선거 결과가 어떻든 나는 내가 하던 일을 계속할 거다. 우리 사회복지 정책에는 아이들의 정신건강 부분이 취약하니 경험을 살려 아동복지 정책에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동복지가 정책적으로 새로운 자리매김을 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한국에도 미셸 오바마 같은 퍼스트레이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동의하나.

“글쎄. 일단 퍼스트레이디라는 단어가 마음에 안 든다. 어쩐지 제일 먼저 구명보트에 타는 사람이라는 느낌이다. 대통령 배우자라면 맨 마지막에 구명보트에 타는 ‘라스트레이디’가 돼야 하는 것 아닐까. 제일 마지막까지 기다리고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정치인, 특히 대선 주자는 가족도 발을 담그지 않을 수 없는 직업이다. 남편이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했을 때 어땠나.

“작년 가을 처음 얘기를 들었는데, 겁이 확 났다. 영부인 이런 게 나와 상관 있는 일이라곤 생각도 못했고, 야권과 진보진영의 분열을 가져올까 봐 불안했다. 그러다가 실패하면 국민들이 그 상처를 감당할 수 있을까 너무 두려웠다. 남편은 ‘고여 있으면 성장하지 않고 썩는다. 세포도 분열을 해야 성장하는 것처럼 경쟁은 필요한 거다. 당신이 걱정하는 파멸적 분열로는 절대 안 갈 자신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얘기하더라. 자기가 나가야 혼란을 더 잘 봉합할 수 있다고 하는데, 듣고 보니 나가야 할 것 같았다.(웃음) 의미가 있는 도전이구나 싶어서 그럼 하시라고 했다.”

올 2월 열린 안희정 충남지사의 전국 온라인 지지자 모임에서. 안희정 캠프 제공

-남편이 내놓은 공약 중 유권자로서 마음에 드는 두 가지를 꼽아본다면.

“미세먼지 저감계획이 가장 마음에 든다. 황사철이 또 왔는데, 우리나라 미세먼지의 30%가 충남 화력발전소에서 나온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기존 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줄이겠다는 공약이 우리 건강에 대한 염려를 많이 하는구나 싶어서 좋다. 1조2,000억원 추가 예산을 들여 가정양육수당을 두 배 인상하겠다는 공약도 아이 키우기에 대한 차별을 방지할 수 있어 마음에 든다.”

-여론 전달자로서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나. 인터넷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남편의 정치활동에 대한 여론수집을 하는 편인가.

“댓글은 전하지 않고, 남편에게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기사나 글의 링크를 열심히 전달한다. 관점이 훌륭한 글들을 계속 보낸다. 제 별명이 ‘링크녀’다.

-남편이 당선될까, 안 될까.

“(웃으며)된다! 문제해결을 제일 잘 할 사람이고, 그걸 국민 여러분들이 알아봐 주실 거라 생각한다. 여소야대와 시대적 갈등을 넘어 시대교체를 할 사람, 이 모든 문제를 가장 포용력 있게 해결할 능력 있는 사람이 안희정이라고 생각한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민주원 여사

-1964년 강원 춘천 출생

-1983년 춘천여고 졸업

-1987년 고려대 교육학과 졸업

-1989~1992년 박석무 의원 비서관

-1993~2002년 고교 교사 재직(사회, 정치경제, 윤리 과목 등)

-2002~2003년 성공회대 사회학과 대학원 수학

-2008~2010년 용인대 예술치료학 석사

-2005년 이후 상담치료 봉사활동

-종교: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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