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이정모 칼럼] 물고기에게 배우는 민주주의

입력
2017.03.21 15:29
0 0

내게 가장 무서운 물고기는 쏠배감펭이다. 영화 ‘007 두 번 산다’와 이소룡이 나오는 ‘사망유희’에서 쏠배감펭 때문에 사람이 죽는 장면을 봤기 때문이다. 사자 갈기처럼 생긴 가슴지느러미에 독이 있다. 놀랍게도 쏠배감펭은 순 우리말이다. 영어로는 라이언피시, 그러니까 사자고기쯤이다.

<물고기는 알고 있다>라는 책에는 쏠배감펭의 협동사냥 장면이 나온다. “사냥을 신청하는 쏠배감펭 한 마리가 다른 물고기에게 접근해 고개를 숙이며 가슴지느러미를 펼친다. 그리고는 꼬리지느러미를 몇 초 동안 재빨리 흔든 다음, 양쪽 가슴지느러미를 천천히 번갈아 흔든다. 신청을 받은 물고기가 지느러미를 흔들어 맞장구를 치면, 여럿이 함께 사냥을 떠난다.”

무기 역시 가슴지느러미다. 펼친 가슴지느러미로 궁지에 몰린 작은 물고기를 번갈아 공격한다. 그리고는 전리품을 공평하게 나눠 먹는다. 이런 장면을 보고서는 “물고기의 기억력은 3초”라느니 “물고기는 인식이라는 게 없고, 통증도 못 느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과학자들은 이미 물고기가 통증을 느끼며, 생각도 하고, 사건에 따라 몇 달~몇 년이나 기억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물고기의 협동은 종(種)의 장벽을 넘는다. 그루퍼라는 물고기는 곰치에게 접근해 온몸을 흔들면서 공동사냥을 제안한다. 한 팀이 된 두 물고기는 함께 산호초 주변을 헤엄치며 먹잇감을 찾는다. 곰치는 산호초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물고기를 추적하는 역할을 한다. 그루퍼는 산호초 주변의 탁 트인 공간에서 민첩하게 움직인다. 불쌍한 먹잇감은 도망칠 곳이 없다. 두 종은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줄 짝을 찾은 것이다.

더 놀랄 일이 있다. 그루퍼는 먹잇감이 숨어 있는 곳 위에 가서 물구나무를 선다. 곰치에게 먹잇감의 위치를 알려주기 위해서다. 표정을 지을 수 없고 가리킬 손도 없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에 파트너가 관심 갖기를 바라서다. 물고기는 공동 관심을 원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이들이 협동사냥을 제안하고 수용하는 장소는 아직 먹잇감이 보이지 않는 곳이다. 물고기는 눈앞의 이익만 좇는 게 아니라 미래를 계획할 줄 아는 것이다. 세상살이에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당장 이익이 없더라도 친선관계를 유지한다.

저자인 동물행동학자 조너선 밸컴이 물고기의 협동에서 가장 아름답게 여기는 것은 ‘의도적 지향성’이다. 두 마리의 물고기가 자신의 욕구와 의도를 서로에게 전달하고 해석함으로써 결과를 이끌어낸다는 말이다. 개체의 욕구를 사회적 결과로 이끌어낸다. 어떻게?

물고기, 새떼, 침팬지에 이르기까지 동물 집단에 공통적 의사결정 수단이 있다. 바로 투표다. 목적과 과제를 위해 효율적으로 투표한다. 물고기가 투표를? 정말이다. 우두머리 물고기가 먹잇감을 정하면, 다른 물고기들은 그를 따를지 말지, 지느러미를 이용해 투표한다. 물고기는 알고 있다. 우두머리 한 마리의 결정보다는 민주적 투표에 따른 집단적 결정의 이득이 크다는 사실을.

물고기 민주주의는 먹잇감만 결정하는 게 아니다. 지도자도 선정한다. 물고기는 과연 어떤 지도자를 선호할까? 과학자들은 물고기 민주주의를 연구하기 위해 로봇 물고기를 이용했다. 외모와 헤엄치는 모습이 하도 비슷해서 물고기들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정교한 로봇이다. 이 실험의 주인공은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 부성의 상징이 된 큰가시고기다. 외톨이 큰가시고기는 로봇 물고기를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로봇 물고기가 포식자에 다가가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에도 그를 따랐다. 하지만 일정한 규모 이상 무리를 이룬 큰가시고기는 로봇 물고기를 따르기만 하는 대신 안전한 행동을 취했다. 혼자서는 지도자에 저항하지 못하지만 반기를 드는 물고기 수가 충분해지면 어리석은 지도자를 따르지 않고 안전을 택했다. 물고기는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최소 규모의 집단이 필요함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물고기의 갈등이 포식자와 피식자 사이에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같은 종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하지만 인간과 달리 피 터지게 싸우는 일은 없다. 부상과 죽음이란 최악의 결과를 피하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위험 회피를 위한 가장 흔한 방법은 큰 소리를 내거나 몸을 부풀리고 색깔을 화려하게 바꾸는 방식으로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때로는 반대로 약점을 노출시킴으로써 상대방을 안심시키기도 한다. 허세와 유화정책은 많은 경우에 통한다. 이게 통하지 않으면 제3자가 등장해 중재한다. 중재자는 일방적으로 한 편을 정한다. 어줍잖게 중립을 취하지 않는다.

물론 가장 좋은 덕목은 자제력을 발휘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다. 어항 속에서는 호전적인 물고기로 알려진 수컷 베타 두 마리를 연못에 넣으면 화기애애해진다. 어항이란 폐쇄적 공간에서는 사생결단을 할 수밖에 없던 베타도 넓은 공간에서는 서로를 용인하고 평화롭게 지낸다.

5월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의 후보 경선이 한창이다. 후보자와 지지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물고기도 알고 있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