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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니 인사이드] 시멘트 업계 토종 자존심… 서둘러 구축한 3대 경영체제 안정화는 과제

입력
2017.03.20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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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시멘트 충북 단양 공장
한일시멘트 충북 단양 공장

“만년 2인자의 막판 뒤집기다.”

지난달 16일 한일시멘트가 현대시멘트 인수전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업계 관계자들은 이렇게 입을 모았다. 동양시멘트와 쌍용양회 등 이전에 벌어진 메이저 시멘트사 인수전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신 한일시멘트가 현대시멘트 인수 전 승리로 업계 선두권 업체로 도약할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사모투자펀드인 LK파트너스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한 한일시멘트는 현대시멘트 인수가로 6,500억원을 적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시멘트의 시장 평가금액 6,0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다.

이런 과감한 베팅은 허기호(52) 한일시멘트 회장이 주도했다. 허 회장은 두 번의 인수전 패배 후 ‘이번에도 밀리면 끝’이라는 배수진을 치고 인수전에 나섰다. 다소 과도한 인수금액이 향후 한일시멘트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지만, 한일시멘트는 인수 전 승리로 얻을 수 있는 과실을 더 크게 보고 있는 분위기다.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한일시멘트와 현대시멘트 시장점유율을 더할 경우 약 25%가 돼 기존 1위 쌍용양회 시장점유율인 20%를 넘어서게 된다”며 “사모펀드로 넘어갔던 시멘트 산업 재편 주도권도 한일시멘트가 다시 쥐게 됐다”고 설명했다.

개성 송상이 차관받아 설립한 한일시멘트

한일시멘트는 국가 주도로 경제발전 계획이 진행되던 1961년 설립됐다. 창업주인 고(故) 허채경 선대회장은 당시 박정희 정부로부터 국가 차관을 받아 국가 기간산업인 시멘트사업에 뛰어들어 현재의 한일시멘트를 일궜다.

개성출신으로 6ㆍ25때 월남한 허 선대회장은 사업 수완이 좋아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허 선대 회장은 1969년에 녹십자를 설립하며 의약품 제조 사업에도 뛰어들어 큰 성공을 거뒀다.

도로망 확충과 아파트 건설이 계속되던 1960년대 후반부터 약 30년 간은 시멘트 산업의 전성기였다. 시멘트는 만드는 데로 시장에서 팔려나갔고, 한일시멘트를 비롯한 주요 7개 시멘트사들은 이런 사업 환경을 십분 활용해 손쉽게 덩치를 키웠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 건설경기가 내리막을 걸으면서 시멘트업계에도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시멘트사들은 안 팔리는 시멘트를 팔기 위해 가격 덤핑경쟁에 나섰고 이는 수익성 악화로 직결됐다. 또 외환위기로 한라그룹과 쌍용그룹 등이 부도를 맞으며 한라시멘트는 프랑스의 라파즈에, 쌍용양회는 일본 태평양에 매각되는 운명을 맞기도 했다. 2013년에는 ‘동양그룹 사태’로 동양시멘트마저 무너지면서 시멘트 업계는 본격적인 구조조정 시기에 돌입했다.

사모투자펀드(PEF)가 시멘트업계에 눈독을 들인 것도 이맘때부터다. 지난해 국내 대표 PEF인 한앤컴퍼니와 글랜우드PE 등은 일본 태평양과 프랑스 라파즈로부터 각각 쌍용양회와 한라시멘트 경영권을 사들였다. 한일시멘트도 사모펀드에 맞서 쌍용양회 인수전에 나섰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시멘트업계 2위에 머무르는데 만족해야 했다.

2 한일시멘트실적추이와 주요 주주구성/2017-03-19(한국일보)
2 한일시멘트실적추이와 주요 주주구성/2017-03-19(한국일보)

3세 경영체제 구축… 주식담보로 승계자금 충당

현대시멘트 인수전을 승리로 이끈 허기호 회장은 창업주 허 선대회장의 장손으로 오너 3세 경영자다. 해외 자본과 사모펀드에 매각되는 운명을 맞은 다른 시멘트사와 달리 한일시멘트는 3세 경영체제를 구축하며 반세기 넘는 가족 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허 회장은 지난 2005년 대표이사에 오른 뒤 꾸준히 지분을 사들이며 회사 지배력을 높여가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아버지 허정섭 명예회장으로부터 10만주를 증여받아 경영일선에 나선지 10년여 만에 최대주주 위치에 오르기도 했다. 허기호 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전기 배전업체 중원(주)이 보유한 한일시멘트 지분까지 고려하면 허 회장의 지분율은 13.22%까지 치솟는다.

허기호 3세 경영 체제 출범을 허씨 일가 내부에서 공식 인정했다는 시그널도 감지된다. 실제 허 회장과 중원은 지난해부터 숙부인 허동섭 전 한일건설회장의 주식 8만 주를 인수하는 등 특수관계인 주식을 전방위로 매입했다. 잠재적 경영권 경쟁자였던 숙부는 물론 다른 친인척들이 허기호 체제 출범에 동의했다는 뜻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앞서 허 회장은 지난 2014년 숙부와 사촌들이 경영하는 녹십자홀딩스 주식 10만주를 전량 매도해 한일시멘트와 녹십자 간 후계구도 교통정리도 마무리 지었다.

문제는 허 회장이 지분 매입자금의 상당 부분을 주식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충당했다는 점이다.

허 회장은 지난해 10월 허동섭 전 회장의 주식 8만주를 인수 할 때도 매입자금 72억5,000만원 중 50억원을 주식담보 자금으로 해결했다. 현재 허 회장과 중원이 가지고 있는 한일시멘트 주식 99만7,725주 중 63.5%인 63만4,000주가 은행권에 저당 잡혀 있다.

한일시멘트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서둘러 주식을 매입하려다 보니 자금이 부족했던 것으로 안다”며 “주식 담보 자금의 대부분은 회사 주식 매입에 사용됐다”고 말했다.

주식을 담보로 빌린 돈을 가지고 회사 주식을 사들이는 게 법적으로 문제가 되진 않는다. 다만 주식 담보제공 당시 보다 한일시멘트 주가가 하락할 경우 금융권이 언제든 반대매매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은 허기호 체제의 안정성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올해 초 7만원대에 거래되던 한일시멘트의 주가는 현대시멘트 인수 전 승리 후 9만원대까지 치솟았다가 17일 8만7,900원에 거래를 마쳤다.

허 회장이 14만주의 주식을 신한금융투자에 담보로 맡겼던 지난해 10월 14일 주가 8만 2,700원보다 고작 5,200원 비싼 가격이다.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시멘트 산업구조 재편과정에서 한일시멘트가 주도권을 쥐고 시장을 장악한다며 실적 개선과 함께 주가도 더 오를 여지는 있다”며 “다만 현재로선 한일시멘트의 주가 움직임과 허기호 체제의 안정성을 연결해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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