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 국립생태원 제공

‘매화’라고 들어보셨는지요? 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선시대 하늘같이 높은 임금의 용변을 감히 ‘똥’이라 부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매화라 불렀습니다. 매일 임금님의 용변을 보고 임금님 건강을 체크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똥은 사람에게도 매우 소중한 물건입니다. 그런데 똥 하면 왠지 일단은 피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을 다들 합니다. ‘똥’ 이야기를 꺼낼라 치면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입 꼬리를 씰룩 거리죠. ‘똥’자가 언급되면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웃음보가 터지고 다들 난리 법석을 떱니다.

하지만 필자는 이 똥을 찾아 우리나라 산과 들과 계곡을 헤매고 다닙니다. 애석하게 아직 바다는 헤매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찾는 녀석들이 바다에도 살기는 하지만 주로 육지에 살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산을 그토록 다녔어도 산삼이나 송이버섯같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상하게 제 눈에는 귀한(?) 똥만 들어옵니다. 똥을 보면 잠시 심호흡을 하고 이렇게 외치곤 합니다. “심 봤다!”

자칭 ‘똥박사’, 똥에 심취한 이유

동물을 주제로 강의를 할 때면 으레 똥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스스로를 ‘똥 박사’라고 자처하면서 말입니다. 사실 똥을 주로 연구하는 사람은 아닌데 똥에 연연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산에 가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야생동물을 볼 수 있을까요? 기대와 다르게 실제로 동물을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많은 동물들이 사라진 것도 한 이유이지만, 사람과 동물이 활동하는 시간대가 서로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동물들은 야행성입니다. 이른 새벽이나 저녁 무렵 그리고 밤에 주로 활동하고, 우리가 산을 오르는 시간대에는 휴식을 취합니다. 동물들이 낮에 활동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오면 먼저 숨는 녀석들의 습성 때문에 그들을 직접 보기란 무척 힘든 일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야생동물을 찾아서 그들의 삶과 행동을 알아낼 수 있을까요?

모든 생명체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흔적을 남깁니다. 흔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나브로 변화하고 소멸하지만, 생명체들의 삶과 행동을 추적할 수 있는 유일한 자연적인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똑같은 생명체가 없듯 그 주인들이 남긴 흔적들도 제각각이죠. 야생동물 역시 끊임없이 흔적을 남기고 야생동물을 찾아다니는 이들은 그들의 흔적을 쫓을 수밖에 없습니다. 야생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똥은 그들을 이해하기에 가장 좋은 흔적인 거죠. 똥이 보인다면 똥 주인이 그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똥은 사회학적으로 보면 비천하고 불결한 대상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피하고 싶은 대상이며 이야기하기 꺼리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 웃음을 주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인문학적 측면에서 똥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고 합니다. 똥을 인정하지 않는 현실의 세계 즉 똥이 부정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면 되는 세상이란 의미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과학적 측면입니다. 똥에 그리 집착하는 것도 이 때문인데요. 과학적으로 똥을 접근하면 똥은 동물이 소화하고 난 나머지 음식 찌꺼기로 배출된 부산물을 뜻합니다. 똥은 75%의 물과 나머지의 3분의 2는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 그리고 3분의 1은 박테리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야생동물의 똥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선 똥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 줄 수 있는 삶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야생동물을 찾는 좋은 신호이지요. 이런 이유는 여러 단서들 중 똥이 가장 시선에 잘 띄는 흔적이라 그렇습니다. 똥은 또한 그들의 행동과 생태를 이해하고 그들만의 의사소통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도 합니다.

외모처럼 저마다 다른 똥의 세계
야생동물 배설물 도감. 국립생태원 제공

‘참 풍성한 게 덩칫값을 하네.’ 곰 똥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보통 배설한 지 얼마 안 된 상위 포식자의 똥 냄새는 지독한 편인데, 반달가슴곰의 똥 냄새는 그리 심하지 않습니다. 곰 똥을 자세히 보면 다른 동물의 똥보다 유난히 식물의 씨앗을 많이 품고 있습니다. 고기를 주로 먹는 상위 포식자의 똥보다 냄새가 덜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반달가슴곰 똥은 사람 똥과 비슷하지만 부피가 더 큽니다. 냄새는 별로 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검은색으로 변합니다. 잠자리로 쓰는 굴 근처에는 똥이 쌓여 있는 곳도 있습니다.

검은 콩자반을 흩뜨려놓은 듯 보이는 똥! 이 똥의 주인은 천덕꾸러기로 언론에 심심찮게 소개되고 있는 고라니입니다. 비슷하면서 약간 다른 모양새의 똥도 보입니다. 이 똥의 주인은 한곳에 무더기로 똥을 모아서 공중화장실을 만드는 대단한 친구입니다. 바로 바위타기 명수로 이름난 산양입니다. 고라니와 산양 똥은 검고 타원형으로, 산양 똥이 고라니 똥보다 더 길쭉하고 큽니다.

주로 하천 주변에서 볼 수 있고 냄새가 비리며 생선가시를 듬뿍 함유하고 있는 똥은 누구의 것일까요? 바로 수달입니다. 수달은 물가에 있는 돌 위에 똥을 누는데, 똥이 빨리 굳어서 돌에 딱 붙어 있습니다. 비린내가 나고 물고기 가시가 주로 보입니다.

산 속에 구덩이를 파서 똥을 누는 습성이 있는 동물은? 그건 오소리입니다. 오소리는 똥굴을 만들어 다른 오소리들에게 자신의 영역을 알리기도 합니다. 구덩이는 오소리 똥굴이라고 불립니다. 오소리는 딱정벌레나 지렁이와 열매 등을 많이 먹기 때문에 똥이 질척하고 털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구리는 산양과 같이 공중화장실을 만들어 똥을 일정한 장소에 배설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너구리는 자기 보금자리에 똥을 배설하지 않고 이렇게 깨끗하게 한 장소를 이용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그렇게 지저분한 동물이 아닙니다.

멧돼지는 그 크기만큼 똥도 큼지막하게 배설합니다. 다른 동물들도 그렇듯이 어떤 먹이를 먹었는가에 따라 똥의 형태나 크기가 다릅니다. 멧돼지는 잡식성이라 똥에 식물, 동물 등 다양한 먹이 찌꺼기들이 섞여있습니다.

삵은 주로 작은 설치류(쥐 종류)를 먹기 때문에 소화되지 않은 털들이 똥으로 나옵니다. 산을 걷다 보면 사람이 다니는 길에서 잘 보이며 털이 있는 특징으로 삵 똥인지를 금세 알아 볼 수 있습니다. 멧토끼 똥은 동굴동굴한게 아주 예쁘게 보입니다. 보통 1차로 배설하는 똥은 검은색인데 소화가 덜 된 상태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먹어 2차 똥을 배설하는데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갈색을 띠게 됩니다. 우리가 보는 멧토끼 똥은 대부분 이런 상태를 띠게 됩니다.

똥을 알아야 정체가 보인다
수달. 국립생태원 제공

요즘은 똥을 분자생물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하여 주인이 누구인지 헷갈리는 동물을 찾아내기도 합니다. 분석을 위해서는 똥을 수집할 때 직접 손으로 만져서는 안됩니다. 수집하는 사람의 건강이나 유전자 분석을 위해서 똥을 오염시키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수집된 똥으로 최근 연구자들은 동물의 아빠, 엄마를 찾는 등 동물의 가계도를 만들고 있습니다.

똥을 분석하면 어떤 먹이를 먹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모로 유용한 물건입니다. 이렇듯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배변하는지를 잘 살펴보면 똥 주인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금세 알 수 있는 녀석도 있고 헛갈리는 녀석도 있습니다. 그나마 똥이 있어 다행입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해주니 말입니다.

산을 올라 똥을 못 보고 내려오면 그날은 왠지 허탕을 치고 내려온 느낌이 듭니다. 사실 동물을 조사할 때 똥만 보는 것은 아닌데도 그렇습니다. 털, 발자국, 먹이를 먹은 흔적, 보금자리, 휴식자리 등 많은 것을 조사하는데 왜 그리 똥에 집착하는 걸까요? 똥은 녀석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건강 상태는 어떠한지, 어떤 먹이를 좋아하는지 등 직접적으로 알 수 없는 야생동물의 행동과 생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동물들은 다양한 의사소통의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소리를 내서 이야기하고, 냄새를 풍겨 서로에게 이야기합니다. 몸짓을 보며 서로를 이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동물들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데 있어 가장 쉽고도 확실한 수단은 배설물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액체 상태인 오줌은 금세 증발해 버려서 눈에 잘 띄지 않을뿐더러 사람의 후각은 동물과 같지 않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역시 똥이 최고일 수밖에 없는 거죠. 똥은 우리에게 그들이 여기에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는 신호를 건네줍니다.

국립생태원 이배근 동물관리연구실장

산양. 국립생태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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