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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불륜의 문학적 포장

입력
2017.03.1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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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에 출간되고 1995년에 영화화 된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시공사, 1993)를 삐딱하게 요약하면, 도시에서 온 떠돌이 사진작가가 시골의 중년 여성을 나흘 간 농락하는 이야기다. 오프라 윈프리는 이런 한갓된 이야기를 “전 미국인을 감동시킨 작품”이라고 예찬했으나, ‘L.A 타임스’는 이 작품에 “중년 여성의 포르노그라피”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를 붙였다. 둘 다 과도한 칭찬과 험담이다. 이 작품이 ‘위대한 개츠비’ 만한 명작은 분명 아니지만, 킨케이드는 개츠비보다 더 미국적이다.

미국에 두 번째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유진 오닐은 미국을 만든 이주민 정신에 충실했다. 그가 쓴 ‘느릅나무 아래 욕망’과 ‘지평선 아래’는 집을 떠나는 자 살고, 집을 짓거나 거기 안주하는 자는 죽는다는 공식을 반복한다. 유진 오닐의 후계자인 테네시 윌리엄스 역시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에서 방랑을 멈춘 아버지의 아들에게 음위증(Impotenz)이라는 벌을 안겼고, 남성이 되기 위해서는 ‘유리 동물원’의 톰처럼 세계를 떠도는 선원이 되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똑같이 유부녀와 간통을 벌였지만 개츠비만 죽고 킨케이드가 살아남게 되는 이유도 별 게 아니다. 어리석게도 개츠비는 데이지의 집 옆에 자신의 집을 지었고, 킨케이드는 제 갈 길을 떠났다.

프란체스카는 ‘마지막 카우보이ㆍ시대에 낙오된 자ㆍ마법사ㆍ사냥꾼ㆍ무당’ 등으로 지칭되는 킨케이드의 존재감에 가려져 있지만, 그녀 또한 만만치 않은 이력을 가졌다. 나폴리의 은행가 집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던 그녀는 여자 사립학교에서 교사 노릇을 하면서 미술학교 교수와 열애를 했다. 부모가 강력하게 반대한 것을 보면, 나이가 꽤 차이 나는 유부남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던 스물다섯 살 때, 이탈리아를 점령한 미군 병사를 만나게 된다. 그녀가 연상의 유부남이나 시골뜨기 외국 사병과 연애를 하게 된 까닭은 주위에 남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탈리아 청년은 죽었거나 부상을 당하거나 포로수용소에 있었다. 아니면 전쟁 중에 완전히 망쳤거나.”

리처드 존슨의 입장에서 프란체스카는 일종의 전리품이다. 전후 이탈리아의 궁벽상은 미국 오지 출신의 사병이 프란체스카와 같은 도시 교양 여성을 잡아채는 데 유리했다. 그녀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제한”되어 있었다. 그녀는 십대 소녀였을 때 “바다 절벽에 서서 세상 저 너머에서 오는 배들”을 보면서 꿈의 나래를 펼쳤던 만큼,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미군 병사에게 쉽게 자신의 꿈을 위탁했다.

한창호의 ‘오페라와 영화’(돌베개,2006)는 소설에는 없고 영화에만 나오는 한 장면으로 그녀의 좌절을 분석한다. 영화는 남편과 두 아이가 일리노이에서 열리는 가축 품평회에 출전하기 위해 트럭을 타고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프란체스카는 남편과 아이들이 떠나자 그들이 듣던 라디오의 컨트리 음악 채널을 그녀가 좋아하는 오페라가 나오는 채널로 바꾼다. 이때 마리아 칼라스가 부르는 생상스의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가 흐른다.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새벽 키스에 꽃들이 열리듯/ 나의 사랑아 나의 눈물을 닦아주오/ 다시 한번 그대의 목소리로 말해다오!/ 데릴라에게 영원히 돌아온다고 말해다오.” 프란체스카(데릴라)가 이 노래를 듣고 있을 때, 그녀의 집으로 접근하는 킨케이드(삼손)의 지프가 화면에 등장한다.

많은 독자들은 에로티시즘과 스토이시즘을 나누어 가진 이 소설의 얄미운 부조화에서 매력을 발견하지만 이런 이중성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루이즈 디살보의 ‘불륜, 오리발 그리고 니체’(산해,2006)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처럼 이중적이고 자기분열적인 형태의 연애는 “불륜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행위를 사적인 것으로 지켜주려는 최소한의 도덕심”도 없는 미국에서나 벌어지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연애에 솔직한 유럽에서는 주위 사람들에게 발각되어 입방아에 오르는 ‘불행한 불륜’이 많은 대신, 청교도적 위선으로 무장된 미국에서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처럼 안전한 형태의 ‘행복한 불륜’이 더 많은 역설이 생겼다는 것이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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