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은 선거중] 11일 서호주 주의회 선거

“반이민” 내건 일국당 돌풍 조짐
교두보 마련후 ‘98년 영광’ 목표
작년 연방선거서도 상원 4명 배출
트럼프 효과로 지지율 급등세
극우 정치인 폴린 핸슨 부활 예고
11일 서호주 의회 선거…일국당 돌풍 부나

“호주에서도 무슬림들이 문제를 일으키지만 어떤 정치인도 그 문제를 꺼내지 않아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핸슨은 그 얘기를 할 거예요.”

지난 6일 호주 서호주(WA)주 남서쪽 해안의 맨두라시. 80세 여성 셀마 레치는 맨두라를 찾은 일국당(一國黨ㆍOne Nation PartyㆍON) 대표 폴린 핸슨(63)을 끌어안으며 지지를 표시했다. 레치는 “무슬림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나와 내 딸, 손녀들의 안전을 핸슨에게 맡기고 싶다. 그녀가 진정한 우리 편”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핸슨은 11일 치러지는 서호주 주의회 선거 지원 유세차 이곳을 찾았다. 유세장을 찾은 세실 윌리엄스도 폴린 핸슨 지지자. 평생 노동당만 찍었고 22년간 노조 대의원을 지냈다는 그는 영국 일간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이슬람에 동의하는 사람은 ‘소아성애’에 찬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어린 여성을 결혼시키는 이슬람 율법(샤리아법)은 소아성애를 허용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집권 자유당이나 야당인 노동당 모두 전력과 수자원회사를 민영화하겠다고 한 점도 일국당을 지지하게 된 이유라고 윌리엄스는 덧붙였다.

서호주 주의회 선거에 호주 안팎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반 이민ㆍ반 이슬람을 기치로 내세운 극우정당 일국당의 기세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치러진 연방선거 당시 4.29%(상원)였던 일국당 지지율은 브렉시트의 여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등 반 이민, 반 세계화 바람을 타고 꾸준히 상승했다. 지난 1월 서호주에서 지지율이 18%(뉴스폴)까지 치솟은 일국당은 이번 선거에서 녹색당과 제3당 자리를 다툴 것으로 예상된다.

폴린 핸슨(앞줄 왼쪽 다섯번째) 호주 일국당 대표가 지난1월 서호주 퍼스의 주의사당 앞에서 일국당 서호주선거 후보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일국당 페이스북 캡처
‘선호투표제’로 캐스팅보트 쥐게 된 일국당

지난해 연방선거에서 폴린 핸슨(1998년) 이후 18년 만에 상원의원(4명)을 배출한 일국당은 서호주 주의회 선거를 재도약 발판으로 삼겠다는 포부다. 1997년 창당한 일국당은 아시아 이민자 급증에 불안감을 느낀 농촌 백인들의 표심을 자극하는 ‘황화론(黃禍論)’으로 이듬해인 1998년 퀸즐랜드 주의회 선거에서 주 하원의원 11명을 배출(득표율 22.7%). 호주 안팎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핸슨이 2003년 정당법 위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고 수감되면서 당세가 하락,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연방ㆍ주의회선거에서 단 2명의 의원만 당선시키는 등 고전을 면치못했다.

각각 36, 59명인 서호주 주 상ㆍ하원 의원을 전원 교체하는 11일 서호주 의회선거는 ‘자유당ㆍ국민당 연정 대(對) 노동당’이라는 거대 양당 사이에서 일국당이 일종의 캐스팅 보터 정당이 될 수 있는지 시험무대가 될 전망이다. 최근 서호주에서 일국당 지지율은 7~10% 정도로 녹색당과 엇비슷하지만, 일국당은 호주의 독특한 선거제도인‘선호투표제(Preferential Voting)’를 활용해 정치적 위상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일국당은 여당인 자유당과 지난달 ‘선호투표 교환협상’을 마무리했다. 일국당 지지자는 투표용지에 하원 후보 중 자유당 후보를 선호2위로, 자유당 지지자는 상원 후보 중 일국당 후보를 선호2위로 표기하도록 하는 협상이다. 야당인 노동당(40%ㆍALP)보다 지지율에서 뒤지고 있어 하원 다수당 대표가 맡는 주지사 자리를 빼앗길 위기인 자유당(31%ㆍLib) 입장에서는 하원 선거구에서 일국당 지지자 표를 끌어오는 효과를, 주 의회에 의석이 없는 일국당 입장에서는 자유당 지지자 표를 더해 상원의원을 배출하려는 정략적 타협이다. 자유당 지지자 중 38%가 극우정당인 일국당과 선호투표 교환협상에 반대하는 등 자유당으로서는 정치적 도박을 한 셈이지만, 역설적으로 최근 일국당의 높아진 몸값을 보여주는 사례다. 일국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서호주 주의회에 교두보를 마련한 뒤 내년 예정된 퀸즐랜드 주의회 선거에서 ‘98년 영광’의 재현을 꿈꾸고 있다. 폴린 핸슨의 고향이기도 한 퀸즐랜드주에서 지난달 일국당 지지율은 23%로 원내 2당인 자유당(31%)을 위협하고 있다.

폴린 핸슨 왜 다시 부활했나

한물간 극우정치인으로 취급됐던 폴린 핸슨의 부활은 이민자의 가파른 증가와 맞물려 있다. 1975년 인종차별금지법을 제정하면서 오랜 이민 장벽을 허문 호주는 이민자들의 노동력에 기반한 광산투자와 주택건설붐 등으로 2000년대 중반까지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이후 경기침체와 인구증가로 인해 주택가격이 폭등하면서 반 이민주의가 힘을 얻게됐다는 분석이다. 호주국립대(ANU)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연방총선에서 이민 축소 여론(42%)이 이민 유지 여론(32%)보다 높았고, 이번달 뉴스폴 여론조사에서는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 이슬람 7개 국가 출신자 입국을 금지한 트럼프 스타일의 행정명령을 호주에도 도입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44%에 달했다. 경기침체, 다문화주의에 대한 반감 등이 반 무슬림, 반 이민을 앞세운 극우 여성 정치인의 득세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호주 집권여당인 자유당은 기술이민비자 축소를 검토하고, 야당인 노동당도 고소득자에 대한 감세, 호주인 고용 우선주의를 외치는 등 호주 정치권도 우향우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영국 BBC는 “(자유당 국민당 연정과 노동당이 대립하고 있는)의회에서 일국당이 법안 통과를 위한 균형추 구실을 하게 됐다”며 “폴린 핸슨은 20년 전보다 더 성숙하고 노회해졌다”며 그의 부활을 알렸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지난해 연방총선(상원) 출마한 폴린 핸슨이 이민자와 난민들이 호주 일자리를 빼앗아간다고 선전하고 있다. 폴린 핸슨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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