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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통째 먹을 건가, 나눌 건가

입력
2017.03.0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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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ㆍ개혁 하려면 의회권력과 협치 필수

文 "법 안되면 촛불 돌파"는 초법적 발상

정치권 과제인식능력 높이고 권한 나눠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왼쪽부터),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 이재명 성남시장이 8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열린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제33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성평등 정책 발표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왼쪽부터),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 이재명 성남시장이 8일 오전 서울시청에서 열린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제33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성평등 정책 발표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병준(이하 존칭 생략)이 물었다. '노무현을 아느냐'고. 2월 말 한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다. 대상은 "그의 이름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들, 특히 지금의 모든 어려움을 구조나 체계의 문제가 아닌 사람의 문제로만 말하는 이들"이다. 그는 적시하지 않았지만 전후 문맥으로 유추하면, '이들'은 노무현의 유지 계승을 '운명'처럼 받아들인 문재인과 노무현의 '적자'를 자처하는 안희정 정도일 것이고 더 좁히면 문재인과 그 주변이다.

김병준은 젊은 시절 재야 정치인 노무현을 만나 자치와 분권에 기초한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었고 참여정부 5년 내내 대통령 정책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노무현의 고민과 아픔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다. 그런 그가 왜 한솥밥을 먹던 옛 동지를 향해 거친 질문을 던졌을까. 항간의 얘기처럼 2006년 교육부총리에 지명됐다가 논문 표절 논란 등으로 낙마할 때 도와주지 않았던 친노 진영이 지난해 말 자신을 총리로 지명한 '박근혜 카드'마저 무산시킨 것에 대한 섭섭함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더구나 탄핵정국에서 여야를 넘나들던 그는 최근 패권정치 저지를 명분 삼아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로 나설 수도 있다는 뜻까지 내비쳤다. 그런 만큼 노무현을 빗대 문재인 등의 배타적 행보를 비판한 그의 말이 액면대로 순수하게 들리진 않는다. 하지만 그는 반칙과 특혜로 비뚤어진 세상을 바로 세우려던 노무현의 뜻이 어떻게 좌절되는지, 특히 지지자들의 배신감을 무릅쓰며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의한 대통령의 번민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김병준의 지금 처신이 오염되고 틀렸을지는 몰라도, 여소야대의 늪에 빠진 국가운영 체계의 한계와 대안에 목말랐던 노무현 사람들이라면 그의 고언을 외면할 일은 아니다. 더구나 누가 이끌든지 차기 정부는 출발부터 여소야대의 의회 권력과 사사건건 부닥치게 돼 있다. 친일과 군부독재 세력, 사이비 보수의 기득권 독점이 빚은 수십 년 적폐를 대청소하고 특혜와 농단으로 무너진 나라를 다시 세우겠다는 '선한 의지', 그리고 "(설사) 청산을 위한 법이 통과되지 않아도 촛불을 든 국민의 지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돌파할 수 있다"는 초법적 발상으로는 기득권의 저항에 내내 휘둘렸던 노무현의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문재인은 헌정사 처음으로 지역과 세대, 이념을 뛰어넘는 통합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욕심을 내면서도 안희정의 연정론은 "분노가 없다"고 쪼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국가와 개인의 삶이 패러다임적 전환을 요구받는 때에 '70년 적폐 청산'에 올인하는 것이 옳은지 의문이지만, 나라가 쪼개져 가치 충돌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그 어려운 작업을 누구와 어떻게 이뤄내겠다는 것인지 설명이 없어 그의 생각을 따라가기 힘든다. 사드 문제 등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다음 정부로 넘기면) 안보와 국익을 지켜낼 복안이 있다"며 애매한 '전략적 모호성'으로 답을 비켜 가는 것은 그렇다 쳐도, "거악(巨惡) 척결에 필요하다면 소악(小惡)과 손잡을 수도 있다"는 전략적 유연함조차 배제하니 말이다.

리더십 공백 속에 안팎으로 큰 도전에 직면한 지금 우리 사회는 김병준의 말처럼 국민적 공감대 아래 정치권 전체가 과제 인식 능력을 키우고 권한과 책임을 나눌 것을 요구받고 있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청산 이상으로 미래를 보는 혜안과 결단이 없으면 또 다른 적폐만 낳을 우려가 크다.

최근 문재인은 경선 토론에서 이번 대선은 새 시대를 열 1번 타자를 뽑는 의식이라며 본선경쟁력이 검증된 자신이 나서야 정권 교체를 달성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집권 후 청산 및 개혁 구상은 여전히 추상적이고, "협치와 분권 외에 대안이 없다"고 하면 "너무 통합과 포용에 꽂혀 있다"고 꼬집는다.

사람들에게 "문재인이 될 것 같으냐"고 물으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문재인이 잘 할 것 같으냐"는 질문에는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가로젓거나 입을 닫는다. 나누고 모으겠다는 개인 의지보다, 통째 먹고 휘두르겠다는 진영의 의욕이 넘쳐 그럴 것이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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