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넘게 후회하고 있는 일이 하나 있다. 작년 여름, 첫 단행본을 출간한 뒤 매체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던 때의 일이다. 한 인터뷰에서 “젊은 여성으로서 직업적으로 경험한 차별은 없었는지”를 물었다. 사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만 골몰하던 터라 글 쓰는 젊은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프리랜서 작가로 다양한 분야의 글을 써오면서 늘 문제라고 여겨온 것은 역시 공평하게 낮은 원고료가 우선이었다. 원고료가 성별에 따라 다르지는 않다는 식으로 대충 대답해 넘겼지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역시 다시 떠올려도 부끄러운 대답이다. 그 원고료가 나오게 되는 지면이 누구에게, 또 어떤 방식으로 주어지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이야기 했어야 했다. 어떤 작품과 현상에 대해서 글과 말로 평가할 역할이 주어질 때, 평론가와 칼럼니스트, 저널리스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여성 동료들이 늘 남자들에 비해 적은 기회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왜 말하지 못했을까.

지난 2월의 마지막 날, 한국 대중 음악상 시상식이 있었다. ‘신의 놀이’로 최우수 포크 노래 상을 수상한 가수 이랑이 트로피를 판매한 퍼포먼스는 오래 기억될 것이다. 이어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트로피 경매가 수상의 명예를 판매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상의 권위를 손상시키는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굳이 논의를 이어갈 필요는 없을 듯하다. 오히려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 부분은 많은 뮤지션이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입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과 한국 대중음악상 선정위원 63인 중 5인 만이 여성이라는 사실이 함의하는 바다. 후자에 집중해 질문해보자. 음악상 선정위원에 이름을 올릴 만한 여성 음악 평론가와 관계자가 이토록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원래 절대적인 숫자가 적다면 그것대로 문제이고, 원래 수에 비해 선정위원 비율이 적다면 더 큰 문제다.

이런 상황은 대부분의 문화 산업에 동일하게 나타난다. 여성의 소비가 산업의 근간이 되는 분야에서 이런 특징은 더욱 두드러진다. 결정권자, 직함,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 남성일 때, 그들과 같은 위치에 소수의 여성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성별 격차가 별로 없거나 적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인터뷰에서 나의 안일한 대답을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남성 필자와 같다 원고료를 받고 있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지면 자체가 여성 필자에게 절대적으로 적게 주어진다면 그 또한 차별이다.

그래서 기회의 격차는 성별 임금 격차 36.6%(OECD 고용 지표, 2015년 기준)보다 더 클 것이 분명하다. 그나마 남성과 같은 일을 할 기회를 얻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63.4% 적은 임금을 받는 것이므로, 기회의 정도까지 계산하면 차이는 까마득하다. 이 간극은 개인의 힘으로 부술 수 있는 “유리천장 따위”가 아니며, 동일 임금을 외칠 때 동일한 노동 기회의 분배가 반드시 따라가야만 하는 이유다.

2년 전 누군가 내게 급하다고 생각하는 페미니즘 이슈가 무엇인지 물었고 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고 답했다. 그는 내게 ‘그건 이미 지나간 페미니즘 의제’라고 말했다. 과연 그러한가. 오히려 지난해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접하며, ‘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데 동일임금이라니 사치스러운 문제제기가 아닌가’ 자조하게 되지 않았나. 하지만 더는 ‘나중’으로 미룰 수 없기에 나는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해 성별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한 조기퇴근시위에 참여했다. 공짜로 일하는 데 지친 여성들과 함께 소리 높여 외쳤다. 시위 시간이 3시인 이유는 임금 격차를 노동 시간으로 환산했을 때 여성은 3시부터 무급으로 일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기회의 격차까지 생각한다면 내년에는 점심을 먹고 퇴근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윤이나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