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DMZ)라고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철조망과 군인, 그리고 각종 군사시설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겠지요. 이제는 멸종위기종인 산양과 반달가슴곰의 서식지, 다양한 철새들의 휴식처, 열목어의 최대 서식지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지도 모릅니다. 지난 60여년간 이곳은 인간의 간섭에서 벗어나 훼손된 자연을 스스로 복원했습니다. 각종 개발로 인해 서식처를 잃은 야생 동ㆍ식물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죠. 그 결과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했습니다. 한반도 생태의 보고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DMZ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DMZ를 지키는 식물 터줏대감들
산양. 국립생태원 제공

비무장지대와 민간인통제선 이북지역을 통틀어 일컫는 DMZ 일원에선 산지, 습지, 경작지 잡초, 해안사구, 염습지 등 다양한 유형의 식생, 즉 식물공동체가 지역 별로 살아갑니다.

먼저, 동부지역을 살펴볼까요? 이 지역은 대부분 높은 산지지역으로 신갈나무가 가장 많이 분포해 있습니다. 1,296m에 이르는 산 향로봉에서 건봉산으로 이어지는 고지대는 신갈나무와 사스래나무 등이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아 양호한 식물공동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외 산지의 급 경사지에는 굴참나무와 소나무가 소규모로 뿌리를 내리고 있고 하천 변으로는 버드나무와 갯버들 등이 분포해 다양한 생물 다양성을 자랑합니다.

중부지역은 과거 논 경작지였던 저지대가 방치된 묵논(농사를 짓지 않아 버려진 논) 습지의 식물공동체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나무, 버드나무, 아까시나무, 가래나무 등 우리에게 익숙하고도 생소한 나무들이 그 기세를 뽐내고 있지요. 또 저지대 산림지역에는 상수리나무와 신갈나무가, 인위적으로 조성된 인공호수 주변으로는 버드나무와 선버들 등이 발달하고 있어 역시 보존가치가 큰 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부지역으로 눈길을 돌려보죠. 200~300m의 낮은 해발 구릉지로 이루어진 이 지역에선 상수리나무와 리기다소나무, 소나무로 구성된 혼합림이 분포하고 있으며, 해안가 주변으로는 곰솔이란 다소 낯선 이름의 소나무가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습니다. 검은 빛을 띠는 갈색 껍질의 곰솔은 주로 바닷가에서 자라는데 흰 겨울눈 언저리에 부드러운 흰 털이 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강화도 부근에 넓게 분포하는 갯벌에는 해홍나물 등의 염습지 식물가족이 넓게 발달하고 있습니다.

DMZ 내부에선 이미 빈번한 벌목과 산불의 영향 탓에 이에 대한 저항성과 회복성이 높은 신갈나무 같은 활엽수림이 점차 분포를 넓혀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능선과 같은 척박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활엽수림으로 천이(같은 장소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식물의 변화)가 진행 중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향노루. 국립생태원 제공
DMZ도 때론 눈물을 흘린다

DMZ에서 발생하는 훼손 및 교란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군 작전 시 시야 확보를 위한 산불, 군사시설 구축 및 운영에 따른 산림훼손, 군사도로 건설로 인한 훼손 및 2차 산사태 발생 등 훼손의 범위는 방대합니다. 시야 확보를 위해 군사도로 및 철책 주변으로 지속적인 벌목을 실시하기도 합니다.

군 작전상 필요한 산불의 경우 더욱 신중한 판단이 필요한데요. 만약 산불로 인해 자연이 훼손되었다면 인위적인 복원 사업보다는 자연적 천이를 유도해 스스로 회복되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겠지요.

다양한 동식물의 숨결을 듣기 위한 조사에 한계가 존재하기도 합니다. 민통선 이북지역은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지역으로 국방부 및 해당 군부대와 협의하여 조사경로를 선정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이 군사시설 및 미확인 지뢰지대인 탓에 숲 내부로의 접근은 불가능한 실정입니다. 때문에 군사도로 주변을 따라 차량과 도보를 이용하여 제한적인 조사가 이뤄져 온 것이 사실입니다.

두루미. 국립생태원 제공

특히 군사도로는 인간 및 차량에 의한 교란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구간입니다. 이동성이 낮은 곤충이나 이동이 불가능한 식물에 대한 조사는 교란된 구간을 대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외래종의 종수는 높게 나타나는 반면 멸종위기 종의 수는 낮게 나타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반면, 이동성이 큰 포유류와 조류의 사정은 또 다릅니다. 이들은 군사도로로 인한 교란의 영향을 적게 받으며 인간의 출입과 개발행위가 제한된 민통선 이북지역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종들과 멸종위기종이 출현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류와 담수에서 서식하는 저서성 대형무척추동물이 살고 있는 수 생태계 역시 교란에 의한 영향이 적고 온전히 보전되고 있어 다양한 생물종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아직은 숲 내부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하지만 앞으로 DMZ 일원에 대해 지뢰 위험을 감안해 더 다양한 조사지역이 확대된다면 더 많은 생물 종과 우수한 생태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도 DMZ는 살아있다

지난해 12월 발간된 ‘DMZ 일원의 생물다양성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DMZ 일원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은 총 91종입니다. 남한 면적의 1.6%에 불과한 곳에서 국내 멸종위기종의 약 40% 이상이 서식한다는 의미 있는 결과로 해석할 수 있는데요. 그만큼 DMZ가 외부의 교란으로부터 생태계를 보호하고 안정적인 서식처를 제공해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건강하게 숨 쉬는 DMZ의 현재 모습입니다.

특히 멸종위기 Ⅰ급인 두루미와 저어새 그리고 사향노루 등 소중한 동물들은 DMZ와 같은 특수한 조건의 서식처가 유지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에서 일찌감치 사라졌을 가능성이 높은 종입니다. 이들은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보전 가치가 매우 높은 종이기 때문입니다.

각 종들이 분포하는 서식지의 특징을 살펴보면, 저어새는 DMZ 일원 서부지역의 서해 비무장지대 무인도서와 강화도 인근에 서식하고 있습니다. 유독 경계심이 강한 저어새의 서식지와 먹이활동에 적합한 갯벌이 있는 환경입니다.

저어새. 국립생태원 제공

두루미의 주요 서식처로 알려진 DMZ 일원 중부지역의 철원과 연천은 대부분 논 경작지로 확인됩니다. 땅에 떨어진 곡물의 낟알인 낙곡이 많고 인간의 출입이 적은 지역으로 두루미의 겨울철 월동지로 제격인 곳이지요. 1968년 국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사향노루는 DMZ 일원 동부지역의 화천과 양구 등 해발고도 1,000m 이상인 산악지역에서 생활합니다. 과거 밀렵으로 인해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백석산과 백암산 일대의 급한 경사지역과 절벽지대만이 사향노루의 안정적인 서식처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DMZ의 생명들은 이처럼 자신들만의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의 특수한 서식처를 보전하고 생명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적절한 출입통제 대책을 마련하는 등 개체 수를 보존할 대책과 높은 관심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들의 건강한 숨소리를 계속 들을 수 있을지는 우리 모두에게 달려있습니다.

국립생태원 생태보전연구실 서형수 연구원

서형수 국립생태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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