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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마을에 초고층 아파트… 외지인 몰려 수천만원 웃돈 첫 등장

입력
2017.03.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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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9층 아파트 들어선 아바이마을

소유자 대부분 서울 강남 50대 이상

주민들은 고급 아파트에 어리둥절

#2

호텔ㆍ콘도 우후죽순 들어서며

조망권 침해 놓고 법적 다툼도

“속초시 무분별한 개발 조장” 지적

속초의 대표적 낙후 지역이었던 아바이마을에 29층짜리 속초아이파크 공사가 한창이다. 서울 강남 등에 거주하는 외지인들이 바닷가 전망을 누리기 위해 수 천 만원의 프리미엄(웃돈)까지 얹어서라도 사겠다고 나서면서 아바이마을은 속초 부동산 시장의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속초=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속초의 대표적 낙후 지역이었던 아바이마을에 29층짜리 속초아이파크 공사가 한창이다. 서울 강남 등에 거주하는 외지인들이 바닷가 전망을 누리기 위해 수 천 만원의 프리미엄(웃돈)까지 얹어서라도 사겠다고 나서면서 아바이마을은 속초 부동산 시장의 핫 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속초=류효진 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자연 곁에 머물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에는 부작용도 따른다. 호젓하던 동해안 곳곳에 아파트, 호텔 건설을 위한 대형 크레인이 거대한 위용을 뽐내고 있고, 공사 차량이 들락거리며 부산스럽다. 새로 놓일 고속도로와 고속철도가 더 많은 사람을 동해로 끌어들일 것이라는 기대 심리로 집값과 땅값이 천정부지다. 환경 파괴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신경도 쓰지 않던 조망권 침해를 놓고 법적 다툼까지 벌어지고 있다. 북적거리는 대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삶을 찾는 이들이 늘어갈수록 그들의 소원을 풀어주던 강원도는 더 많은 숙제를 떠안게 되는 것이다.

낙후 지역에서 초고층 아파트단지로

이런 상황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속초 아바이마을이다. 이 곳에 현대산업개발이 짓는 29층짜리 아파트 속초아이파크 6개동(687세대)이 내년 1월 입주를 시작할 예정이다. 지난달 22일 속초시 청호동 한 공인중개사무소에서 만난 박모(38) 실장은 “아이파크가 분양한 2015년 속초 부동산 시장이 확 바뀌었다”며 “속초 사람들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프리미엄(웃돈)이 처음 등장하며 동네가 들썩거렸다”고 했다. 2015년 6월 분양한 영랑호 옆 e편한세상 영랑호(29층, 497세대)와 같은 해 10월에 분양에 들어간 아이파크는 속초의 첫 20층 이상 고층 아파트다. 지역 부동산업계 관계자의 말을 모아 보면, e편한세상은 500만~1,000만원, 바다 옆 아이파크는 1,000만~2,000만원의 프리미엄이 얹혀져 거래됐다.

박 실장은 “아이파크는 전망도 좋고 길 건널 필요 없이 걸어서 5~10분에 해수욕장을 갈 수 있어 외지인에게 인기가 높다. 입주를 앞두고 막판 물량을 구하려는 수도권 대기자가 수백 명이고, 분양 당시 800만원 대였던 3.3㎡(평)당 가격은 1,000만원 대로 뛰었는데도 팔겠다는 이들이 없다”고 말했다.

이 동네는 6ㆍ25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모여 살며 아바이마을로 불리게 된 곳으로, 지역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 아파트 공사현장을 빼면 주변에는 오래된 단층 주택들뿐이다. 학교나 학원 등 교육 여건도 좋지 않아 속초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호수나 바다를 보면서 살겠다는 외지인 수요가 이같은 부동산 열기를 불러왔다. 박 실장은 “속초 주민들은 아바이마을에 고급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이 어리둥절하다. 아이파크 소유자의 80~90%는 외지인이고, 대부분 서울 강남의 50대 이상이다. 절반 정도는 수도권에서 이사를 오려는 분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주말주택으로 산다. 이미 속초나 인근에 세컨드하우스를 보유했지만 더 좋은 곳으로 옮기겠다며 찾아 오는 손님들도 있다”고 전했다.

서울의 일일생활권으로 포섭되는 강원 해안도시들. 복선전철(KTX)과 고속도로 개통 덕분이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서울의 일일생활권으로 포섭되는 강원 해안도시들. 복선전철(KTX)과 고속도로 개통 덕분이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주말주택의 입지로 강원도가 선호되는 이유는 아무래도 편리한 접근성이 첫손 꼽힌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제주, 부산에서 불었던 세컨드하우스 열풍이 동해안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보인다”며 “(2004~2009년 현대산업개발이)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지으면서 접근성과 물가 등 강원도의 잠재력이 크다는 판단에 따라 속초와 동해에 아이파크를 짓게 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양양 동서고속도로의 동홍천∼양양 구간이 올 여름 개통되면 차량으로 서울에서 동해안까지 가는 시간이 3시간에서 1시간 30분으로 크게 줄어든다. 여기에 춘천∼속초 동서고속화철도가 예정대로 2024년 개통되면 서울 용산역에서 속초까지 KTX로 1시간 15분이면 갈 수 있다. 속초를 서울에서 1시간 대 생활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이런 기대감으로 기존 아파트 값도 덩달아 뛰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015년 2월 속초시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9,488만원이었지만 지난해 8월 1억2,234만원을 기록해 29%(2,746만원)가 올랐다. 같은 기간 강원도 전체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10%(1,200만원) 오른 것에 비하면 3배 가까이 더 오른 것이다.

들썩이는 부동산 시장은 영동지역 최대 도시 강릉도 예외가 아니다. 내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 빙상경기가 치러진다는 올림픽 특수까지 겹쳐 열기는 속초보다 더 뜨겁다. 강릉시 교동 B공인중개사무소 박모(47) 대표는 “최근 2~3년 사이에 강릉 아파트 가격이 3.3㎡(평) 당 200만~300만원이 올랐다. 지난해 공급된 아파트는 평당 분양가가 900만~1,000만원으로 서울 관악구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땅값도 바닷가를 중심으로 같은 기간 2배 가까이 올랐다. 어지간한 곳은 평당 1,000만원을 훌쩍 넘고, 커피거리로 유명한 안목해변은 11년 전 평당 400만원 하던 곳이 지금은 1,500만원에 호가가 형성된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올림픽 특수에 바다 전망을 선호하는 외지인 수요가 부동산 열풍 상승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제2영동고속도로가 완전 개통한데다, 올 겨울 서울~강릉 고속철도가 뚫리면 서울에서 1시간 10분여 만에 강릉에 닿는다는 점도 작용했다.

속초가 '포스트 제주'의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이곳 부동산에는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를 찾는 수요가 급증했다. 부동산들이 몰려 있는 속초 청호동 일대. 속초=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속초가 '포스트 제주'의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이곳 부동산에는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를 찾는 수요가 급증했다. 부동산들이 몰려 있는 속초 청호동 일대. 속초=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우후죽순 아파트, 호텔, 콘도… 과잉 우려도

과잉 개발 우려도 이미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달 24일 서희건설은 속초시 조양동 바닷가에 지어질 31층짜리 주상복합 서희스타힐스더베이(2020년 2월 입주 예정, 232세대)’ 분양에 들어갔는데, 분양가가 3.3㎡(평)당 900만 원대를 기록했다. 앞서 KCC스위첸(2019년 2월 입주 예정, 847세대), 효성해링턴플레이스(2019년 8년 입주예정, 651세대) 등 호수, 바다 주변에 들어설 아파트들이 줄을 서 있다. 아파트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7월 대포항 인근에 라마다호텔이 문을 열었고, 올 7월 외옹치항 인근에 롯데리조트가 들어서는 것을 비롯해 크루즈호텔 등 앞으로 3년 안에 속초 바닷가에 호텔ㆍ리조트의 객실만 4,000개가 생긴다. 여기에 지난달 초 설악산 울산바위 바로 아래에 호텔식 타운하우스가 분양을 시작하는 등 설악산과 동해안 일대에 처음 보는 주거 시설이 경쟁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강릉도 마찬가지다. 박 대표는 “내년까지 강릉 일대에 8,000세대의 아파트 물량이 쏟아지고, 내년 초부터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3,800세대가 거래될 것을 감안하면 총 1만세대가 넘는다. 인구 21만명의 강릉은 최근 해마다 인구가 1,000~2,000명씩 줄고 있다. 아무리 고속철이 뚫리고 고속도로가 놓인다 해도 이 많은 물량을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지 답이 안 나온다. 공장, 회사도 없는데 아파트만 짓는다고 사람들이 올 것이라는 생각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니 ‘묻지마 투자 광풍’에 대한 걱정이 커진다. 바닷가에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는 호텔, 콘도 대부분이 연 7~8% 수익을 보장하며 투자를 유도하는 ‘분양형 호텔ㆍ콘도’다. 박 대표는 “은행 금리 1~2%와 비교도 안될 정도의 높은 수익을 보장한다는 소식에 메뚜기떼처럼 몰려들어 대부분 마감됐다. 그런데 과연 그 수익을 보장해 줄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앞서 제주, 부산 등에서도 분양형 호텔 광풍에 사기를 당한 사례들이 많지 않느냐”고 우려했다.

속초에 브랜드 아파트 단지가 대거 들어서면서 전에 없던 조망권 침해 소송까지 벌어지고 있다. 속초=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속초에 브랜드 아파트 단지가 대거 들어서면서 전에 없던 조망권 침해 소송까지 벌어지고 있다. 속초=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41층 호텔 허가한 속초시, 조망권 침해 소송 패소

조망권 침해와 환경 파괴를 두고 법정 다툼도 새로운 현상이다.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제1행정부(재판장 김정중 지원장)는 지난달 19일 속초시 청초호 41층 레지던스호텔(876실) 반대 시민대책위원회(대책위) 회원과 청초호 주변 지역 토지주 등 12명이 제기한 속초시 도시관리계획변경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건물 높이 조정은 도시경관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변경이므로 도시계획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를 거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해당 건물이 설악산 조망권을 해치고 청초호 철새 도래에 영향을 준다며 반대해 온 대책위와 토지주 등은 속초시가 해당 건물 높이를 당초 12층에서 41층으로 조정해 준 것을 문제삼아 지난해 8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엄경선(52) 대책위 대표는 “12층까지만 지을 수 있는 곳에 도시계획심의위원회 심의도 없이 41층까지 올리도록 허가한 것 자체가 시가 얼마나 무분별한 개발을 조장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아이파크도 29층 아파트가 들어설 수 없는 곳이었는데 시가 지구단위계획을 바꿔 허가를 받았다”고 비판했다. 속초시는 항소하고, 도시계획심의 절차를 거쳐 호텔 건축을 허가한다는 방침이다. 동해안 개발을 둘러싼 갈등은 한 동안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강릉ㆍ속초=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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