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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엄마, 죽는 게 뭐야?”

입력
2017.03.0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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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눈썰매장을 찾았다가 빙어 잡기 체험을 했다. 물고기를 좋아하는 아들 녀석을 위해서였다. 철망이 달린 기다란 낚싯대로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빙어를 건져 올리는 게임이었다. 커다란 어항 주위를 뛰어다니며 꽤 많은 빙어를 건져 올린 아들은 한껏 신이 났다. 그 모습을 보는 내내 나 또한 흐뭇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잡은 고기를 굳이 집에 가져가자며 아들이 고집을 부렸다. 처치 곤란해질 게 뻔해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한 마리를 통에 담아 왔다. 하지만 역시나 빙어는 작은 통 안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더는 움직이지 않는 물고기를 보며 아들이 물었다. “엄마, 물고기 죽은 거야?” 나는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요즘 아들이 뜻이 좋지 않은 말을 그대로 흡수해 엉뚱한 데에 사용해서 당황스러울 때가 많아서였다. 우리 부부는 되도록 ‘죽는다’는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 너무나도 확실한 죽음을 두고 에둘러 표현할 길은 없었다. 역시 가져오지 말 걸 그랬어, 하는 후회와 함께 나는 아들에게 죽은 게 아니라 하늘나라로 간 거야라고 설명해 주었다. 물론 아들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하늘나라가 뭐냐, 그게 죽는 거냐, 죽으면 하늘나라로 가는 거냐, 그럼 다시는 볼 수 없는 거냐,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을 나는 대충 얼버무리며 죽음에 대한 직접적 설명을 피했다.

아이에게 진짜 죽음을 설명하기 적절한 때는 언제일까. 그리고 그때 엄마인 나는 어떻게 대답해줘야 할까. 네 살 아들을 두고 이른 걱정이 싹텄다. 아이가 죽음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될 때 부디 지나친 공포심을 품지 않길 바라는 이유에서였다. 어렸을 적 나는 처음으로 죽음이 뭔지 알게 됐을 때 무섭고 두려워서 잠도 못자고 혼자 훌쩍거렸었다. 그때 엄마에게 죽는 게 뭐냐 물으면 어쩐 일인지 엄마는 늘 시큰둥해 하셨다. 혹시 어른이 되면 죽음이 두려워지지 않는 건가 싶어서 질문을 바꿔, “엄마는 안 무서워?” 하고 물으면 엄마는 별일 아니라는 듯 어차피 죽으면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게 뭐가 무섭냐고 대답하셨다. 엄마의 그런 설명은 어린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으므로 나는 혼자 끙끙 앓기만 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아들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좀더 현명하고 어른다운 대답을 준비해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나 역시 여전히 죽음에 대해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나도 그 정체와 의미를 모르겠는 죽음에 대해서 아들에게 현명하게 대답할 방법을 찾기란 어려웠다. 아마도 옛날 엄마의 시큰둥한 표정과 설명도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엄마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던 게다. 어쩌면 그렇게 아이 앞에서 태연한 척 연기하는 게 가장 현명한 대답인지도 몰랐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저 곳곳에 널린 죽음을 잊고 열심히 살아가는 길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결국 나는 미리 준비해두려던 죽음에 관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죽음에 대해 질문하는 아들 덕분에 스스로 작은 위안은 얻었다. 엄마가 되고 나니 죽음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뀐 까닭이다. 그건 내 앞에서 나의 생명을 나눠 가진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는 덕분이다. 비록 나는 조금씩 늙어가고 있지만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으니 언젠가 삶의 마지막 날을 맞이했을 때 나는 아들의 존재 덕분에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눈 감지 않을까. 드라마 ‘도깨비’에서 불멸을 끝내려고 준비하던 도깨비가 했던 말처럼 나 역시 “서럽지 않다, 이만하면 된 것이다”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그 생의 마지막 날이 아주 먼 훗날이기를, 그때 아들은 부디 건강한 어른이 되어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아들도 그때쯤이면 아빠가 됐을 테니 나처럼 스스로 작은 위안을 얻었으리라 생각해본다. 아무래도 나는 그저 엄마로서 태연한 척 연기만 하면 되겠다.

이정미 전업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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