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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칼럼] 3.1절 그리고 ‘한국인문대전’

입력
2017.02.28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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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유학자 이황은 조선의 유학자일까, 아니면 중국의 유학자일까. 너무도 뻔한 질문을 하자니 사뭇 민망하다. 그런데 이 질문을 중국 학자에게 던지면, 또 다른 외국 학자에게 던지면 어떤 답이 나올까.

다음은 세계적으로 이름 높은 북경대의 한 교수가 쓴 ‘송명 성리학’(원서: 宋明理學)의 목차 중 일부다.

5. 명대 중, 후기의 이학

1) 왕수인 2) 담약수 3) 나흠순 4) 왕정상 5) 이황 6) 왕기

이황을 제외하고는 모두 명대 중ㆍ후기의 이름난 유학자다. 그런데 이는 이황이 조선인이란 사실을 아는 한국인에게나 분별 가능하다. 이를 모르는 사람들 눈에는 이황이 명대 학자로 읽힐 가능성이 무척 높다.

이와 유사 사례가 더 있다. 경전을 비롯하여 역대의 유학 관련 전적을 모은다는 중국의 ‘유장(儒藏) 사업’이 그것이다. 그 중 ‘국제유장사업’은 중국과 한국, 일본, 월남, 서구 등지의 유학 관련 전적을 디지털화하고 해제를 단 후 이를 온라인에 공개, 세계인이 이용할 수 있게 함이 그 목표다. 물론 조선시대 유학 전적은 ‘국제유장-한국편’이란 명목으로 공개된다. 그렇다고 이 자료를 접한 외국 학자가 유학사에서 조선의 독자성을 인지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유학은 공자로부터 나왔으니 그럴 만하다고 여긴다면 오산이다. 중국문학에는 ‘속(俗)문학’이란 분야가 있다. 우리로 치자면 민간문학에 해당된다. 얼마 전 듣기로, 중국의 한 학자가 ‘동아시아 속문학사’를 집필한다고 한다. 동아시아는 중국과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게다가 현재 중국에는 티베트, 위구르, 몽골, 만주 같은 이른바 ‘소수민족’의 강역도 포함되어 있다. 동아시아 속문학사는 이 일대에서 펼쳐졌던 민간문학의 역사를 서술 대상으로 삼는다는 뜻이 된다.

이를테면 우리의 고려 속요나 판소리 같은 민간문학이 동아시아란 범주로 편입돼 다뤄진다는 얘기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 것이 곧 세계적인 것”이라는 달뜬 기대에 편승해 우리 전통이 동아시아 전통으로 확장된 것으로 봐야 할까. 혹 표방한 바는 ‘동아시아’지만 실질은 동아시아 일대의 민간문학 역사를 중국 중심으로 재편했을 가능성은 아예 없는 것일까.

현재 중국은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21세기 새로운 문명 표준을 구축, 이를 국제적으로 발신하고자 무던히 노력 중이다. 상술한바, 안팎의 문화를 중국 중심으로 집적하고 정리하는 활동도 그 일환이다. 이는 ‘문화제국’ 곧 문화로 제국을 구현했던 전통의 부활이기도 하다. 그들은 적어도 2천여 년 전부터는, 정치적 통일을 완수하면 문화를 크게 일으켜 역내 유일의 보편문명이자 최고 수준의 문화국가로서 주변에 문명 표준이 되고자 했다. 조정이 대규모로 추진했던 학술 진흥은 그 고갱이였다. 조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정조가 ‘사고전서’를 구하고자 애썼다는 일화가 일러주듯, 문화제국 중국이 생산한 학술 진흥의 성과는 과거 한자권에서 문명의 푯대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왔다.

이는 과거나 지금이나 문명 표준을 점하기 위해서는, 달리 말해 보편문명을 창출하고 구현하기 위해서는 국가 연구역량의 대대적 신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역설해준다. 국가 연구역량의 신장은 정부나 재계 할 것 없이 범 국가 차원에서 학술 진흥에 적극 나서야 비로소 ‘지속 가능’하게 구현될 수 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에 들인 22조 원이면, 연봉 1억 원을 받는 수준급 인재 400명을 550년 동안 지원할 수 있다. 550년이면 500년 조선 역사보다 더 긴 시간이다. 그만큼의 시간 동안 그런 규모로 학술 진흥이 이뤄진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삼일절 아침이다. 2년 후면 삼일운동 100주년이다. 삼일운동이 있던 해 임시정부가 수립됐으니 대한민국 수립 100주년이기도 하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기리고 있을까. 98년 전 이 날, 선조들은 인류평등의 대의를 표방하며 우리가 독립국임과 자주민임을 세계만방에 선언했다. 헌법 전문에 아로새겨 있듯이 ‘대한민국’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삼일운동에는 그렇게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겠다는 겨레의 의지가 응축되어 있다. 이것이 삼일절에 우리가 기려야 할 바다. 명실상부한 독립 국가와 자율적 시민의 역사를 건설하겠다는 그 지향 말이다.

무릇 역사는 문화가 뒷받침되어 구축된다. 게다가 지금 우리는 문화 선진국이 되지 못하면 주저앉게 되는 기로에 서 있다. 우리 문화를 보편문명에 걸맞게 주조해야 비로소 시민이 행복한 사회, 나라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안팎의 문화를 우리 언어로 재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한글문명’을 보편문명으로 빚어갈 자양분을 풍요롭게 섭취할 수 있기에 그렇다. 이름 하여 ‘한국인문대전(韓國人文大典)’의 편찬! 반만 년 우리 역사에 일찍이 없었던 이 같은 대사업이라면 누구 앞에서도 떳떳이 기릴 만하지 않을까 싶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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