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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의 조용한 동네, 아이슬레베네 슈트라쎄에 있는 아파트를 빌린 적이 있다. 유학생 부부가 쓰던 집이었다. 그들은 침실 하나에 자신의 짐을 몰아넣고 나머지 공간을 모두 쓰라고 했다. 내가 쓸 수 있는 공간은 침실 하나와 피아노와 테이블이 있는 거실, 그리고 복도와 주방이었다. 지은 지 140년이 된 오래된 아파트의 4층. 엘리베이터는 기잉기잉, 느린 소처럼 움직였기 때문에 손때가 반질반질한 난간을 잡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편이 훨씬 빨랐다. 나는 그런 아파트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유학생 부부가 돌아올 때까지 석 달은 온전히 혼자 지낼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백열전구 한 개 달랑 붙은 좁은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면 머리카락 한 올 남지 않도록 정리를 했다. 약속한 날짜 이전에는 부부가 돌아올 리도 없는데, 남의집살이라는 것이 다 그런 법이어서 젖은 수건은 그때그때 빨래통에 던졌고 욕실 바닥도 물기 없이 닦아놓았다. 크루아상은 반으로 갈라 치즈 한 장, 햄 한 장을 찔러 넣고 전자레인지에 딱 30초만 돌렸다. 그러고 나면 또 싱크대를 젖은 행주로 닦았다. 창가에 내놓은 제라늄이 죽을까 봐 나는 애면글면했다. 제라늄을 잘 키우는 방법을 전혀 몰라서 신경질이 날 정도였다. 빌려 쓰는 집이라 그랬을 것이다. 대선을 앞둔 시기라 그런지 요즘은 내가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빌려 쓰고 있는 모든 것들에 새삼 미안할 때가 많다. 당장의 대통령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대통령을 골라내야 하니까 말이다. 바람도 빌리고 해도 빌리고 새소리도 빌려 쓰다가 오롯이 잘 돌려주고 싶은데. 내 것에서 끝날 삶이 아닐 것인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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