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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애 신화'에 갇힌 당신, 완벽한 엄마 아니어도 괜찮아요

입력
2017.02.2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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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둘째를 질투해서 심하게 괴롭혀요. 모두 엄마인 제 잘못 같아요. 아이에게 미안해서 혼내지도 못하겠어요. 일러스트 김경진 기자
첫째가 둘째를 질투해서 심하게 괴롭혀요. 모두 엄마인 제 잘못 같아요. 아이에게 미안해서 혼내지도 못하겠어요. 일러스트 김경진 기자

모든 게 엉망이 됐어요. 6개월 전 둘째가 태어난 뒤로요. 육아가 고통입니다.

저는 연년생 두 딸의 엄마입니다. 계획하지 않았는데 둘째가 생겼어요. 둘째가 태어난 날, 한밤중에 진통이 와서 첫째에게 인사도 못하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산후조리원에 있는 동안 첫째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어요. 떨어져 있는 동안 아이가 엄마를 보면 더 힘들어 한다고 어른들이 말려서요. 영상 통화도 전혀 못했고요.

일주일 만에 만난 첫째는 저를 외면했어요. 안으려고 하면 소스라치며 울었어요. 그 뒤로 첫째는 아빠만 찾는 아빠 껌 딱지가 됐습니다. 아빠가 눈앞에서 사라지기만 해도 자지러지게 울어요. 저는 무조건 싫다고, 멀리 가라고 하네요. 20개월 된 첫째가 동생을 심하게 질투해요. 둘째 얼굴에 피가 날 때까지 꼬집고 할퀴고 괴롭혀요. 툭하면 드러누워서 떼를 쓰며 한 시간씩 울고요.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밥 먹기 싫다고, 잠자기 싫다고, 엄마가 동생을 안아 주는 게 싫다고….

저는 매번 아이를 붙들고 애원하며 싹싹 빌어요.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 좀 제발 봐줘” 같은 말을 달고 삽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랑 다 같이 울어버린 적도 많아요. 모두 제 잘못이니까요. 둘째 낳으러 병원 가면서 아이에게 인사했어야 했는데, 일주일 동안 아이 마음을 잘 보듬어 줬어야 했는데, 더 좋은 엄마가 돼야 했는데… 자책감이 들어 괴롭습니다. 산후조리원에서 보낸 일주일이 모든 걸 망친 것 같아요. 아이가 그저 딱하고 애처롭다 보니 훈육도 제대로 못하고 있어요. 어른들은 나쁜 버릇을 고쳐 주는 엄한 엄마가 돼야 한다고 하지만, 마음이 약해져서 그럴 수가 없네요.

저는 평범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자랐어요. 남편도 좋은 사람이고요. 그런데 아이들 때문에,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 때문에 하루하루가 너무 힘듭니다. 우울증에 걸린 게 아닌가 싶어요. 육아가 원래 이렇게 힘든 건가요? 저의 고통은 언제쯤 끝날까요? 제가 첫째에게 그렇게 많이 잘못한 건가요? 첫째의 상처는 어떻게 달래 줘야 할까요?

(강승희씨ㆍ가명, 32세, 주부)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모성애에는 기본적으로 죄책감이 깔려 있습니다. 엄마를 ‘굉장히 긴 인고와 희생의 시간을 견딘 끝에 완전무결한 결정체로서의 아이를 낳아 완벽하게 키워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그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엄마들은 죄책감을 느낍니다. 승희씨가 지금 느끼는 감정이지요. 엄마를 불편해하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아이에게 미안해하는 것은 이해해요. 하지만 죄책감이 과한 건 아닌지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우리는 모성애와 부성애를 구별합니다. 엄마는 낳는 순간부터 자녀를 사랑한다고 하는데, 아빠는 어떨까요? 아빠도 똑같이 끔찍이 사랑합니다. 모성애가 부성애보다 더 큰 사랑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아요. 아이가 아빠를 더 잘 따르는 자체가 나쁜 건 아닙니다. 아빠가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다면 그걸로 좋은 거예요. 엄마와 아빠 역할을 구분하거나 엄마가 양육에 대한 모든 것을 혼자 책임질 필요는 없어요.

승희씨는 왜 그렇게 큰 죄책감을 느낄까요? 감기에 빗대 얘기해 볼게요. 아이가 자라면서 감기에 걸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감기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면역력도 생기고요. 그런데 아이가 열이 나고 칭얼대면 우리나라 엄마들은 미안하다는 말부터 합니다. 그런 게 엄마들 정서에 단단히 새겨져 있어요.

문제는 승희씨의 지나친 죄책감이 아이의 정서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는 겁니다.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때리지도 않는데, 아이를 더 불안하게 한다는 게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겠지요.

부모가 아이를 키우면서 지켜야 할 일관성이라는 게 있습니다.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이고 일관적으로 가르치고 도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아이가 고집을 부리고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고 빌기만 하는 건 일관성이 아니에요. 부모는 깊은 사랑과 단단한 책임감을 갖고 아이가 따라야 할 지침들을 명확하게 알려 줘야 합니다. 여러 사람과 평화롭게 살려면 반드시 따라야 할 지침들이지요. 옳은 것과 그른 것, 해도 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해야 하는 것은 꾹 참고 해내게 하는 것이 바로 훈육입니다. 아이의 상태나 호ㆍ불호에 끌려 다녀선 안 돼요. 부모는 아이에게 한결 같은 등대가 돼 줘야 해요.

그런데 승희씨는 아이에게 지침을 주지 않아요. 부모로서 꼭 가르쳐 줘야 할 것들을 놓치고 있어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는데 싫어하면 어떡하지, 방긋 웃지 않으면 어떡하지, 또 울면 어떡하지, 엄마를 미워하면 어떡하지 같은 두려움을 갖고 있지 않나요? 그런 이유 때문에 아이가 배워야 할 것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면, 승희씨는 부모로서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자신감이 더 떨어질 거예요. 지침을 배우지 못한 아이로 자라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가 넘지 말아야 할 한계를 설정해 주고 따르지 않으면 단호하게 가르쳐 주세요. 물론 아이를 두렵게 해서는 안 되고요.

아이가 그저 말을 잘 듣는 고운 인형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라나요? 아이들은 원래 말을 잘 듣지 않아요. 하지만 승희씨는 아이 감정을 살피는 데만 전력 질주 하다가 아이가 불편한 감정을 표출하면 무력감을 느낍니다. 양육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 엄마 하기 싫은 마음이 들 수도 있고요. 그래서 육아가 고통이라고 했겠지요. 아이에게 다시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는 승희씨의 의도는 사랑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 선합니다. 하지만 부모의 선한 의도와 행동이라도 아이에게 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랍니다. 오히려 때로는 아이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승희씨는 아이에게 애원하고 사정하는 행동으로 버겁고 감당 안 되는 상황을 당장 끝내려고만 해요. 밥 먹으라고 하는 게 엄마로서 잘못하는 게 아닌데도 겁부터 내는 거지요.

승희씨가 둘째를 낳았을 때 저에게 물었다면, 산후조리원에서 아이를 만나고 영상통화도 하라고 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잖아요. 첫째는 상황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특히 감각이 예민한 아이입니다. 아이 행동의 원인을 동생에 대한 질투만으로 보지 마세요. 아이는 동생의 등장으로 주변 환경이 바뀐 것 불편하고, 동생 울음소리가 불편할 수도 있어요. 아이가 동생을 질투하니 더 많이 사랑해 주고 놀아 줘야겠다는 식의 접근 방법으론 안 됩니다. 다른 각도로도 아이를 살펴보세요.

승희씨는 양육자로서 자기 확신이 없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고 혼란스러워하고 있어요. 이 세상에 육아 영재는 없어요. 누구든 인내심을 갖고 배워야 해요. 부모가 때로 실수를 해도 아이들은 용서합니다. 부모가 손을 내밀면 아이는 금세 잡아요.

아이는 태어난 지 20개월, 즉 약 600일이 됐습니다. 그런 아이에게 그 일주일이 그렇게 절대적으로 중요했을까요? 나머지 593일 동안 승희씨가 아이를 충분히 사랑해 줬을 텐데 정말 그럴까요? 모든 게 그 일주일 때문이고, 그러니까 승희씨가 정말로 미안해해야 하는 걸까요? 왜 그렇게 아이에게 쩔쩔매는 엄마가 됐을까요?

다시 말하지만, 우리나라 엄마들의 무의식에는 완전무결한 엄마가 돼야 한다는 과도한 의무감이 있습니다. 아이에게 사랑을 느끼기도 전에 중압감에 눌리는 경우가 많아요. 또 엄마와 아이는 죽을 때까지 절대로 분리할 수 없는 한 덩어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를 독립된 개체로 분리한다고 해서 이기적인 것도 아니고, 아이가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게 한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에요.

엄마들의 목표가 완벽한 엄마가 되면 안 돼요. 매 순간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승희씨는 지금까지도 최선을 다했고, 이미 좋은 엄마입니다. 때때로 아이를 대하는 게 힘겹더라도 승희씨가 본능적으로 언제나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그리고 매일 밤 잠들기 전에 하루 종일 엄마를 힘들게 한 아이를 용서하세요. 또 그런 아이에게 복잡한 감정을 느끼는 승희씨 자신과 화해하세요.”

정리=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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