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영하는 1996년 독특한 제목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한국 문학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 이전의 단편소설도 평단의 주목을 받았으나 그의 등장을 한국 문학계의 신선한 사건으로 만든 작품은 역시 아이러니와 허무주의가 짙게 풍기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이다. 당시 26세였던 그는 이 작품을 통해 물질 만능주의에 젖어가는 한국 사회의 죽음과 섹스, 예술의 역할을 다루었다. “90년대 중반은 자살과 인생무상의 정서가 트렌드이자 화두였던 시기” 라고 그는 자주 이야기했다. 그의 소설은 90년대 서울의 권태와 소외를 보여준다. 국내외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이 90년대와 2000년대한국의 급격한 문화 변화를 담았다고 평가했다.

그의 소설은 한국 문단에서 주된 소설 전개 방식에서 탈피했다고 할 수 있다. 당시까지 한국 문학의 반복적 주제는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중요성이었다. 그러나 그는 독특하게도 군인의 아들로서 경험해야 했던 잦은 이사와 어렸을 적의 기묘한 사고 때문에 이런 주제에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와 그의 어머니는 군부대에 살던 시절 연탄 가스에 중독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그는 10세 이전의 모든 기억을 잃었다. 이러한 사고와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던 경험이 합쳐져 그에게는 뚜렷이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없게 되었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유목민과 같은 어렸을 적 삶은 글에 대한 접근 방식을 새롭게 형성했다. 그는 그의 작품의 대표적 주제가 외로움과 적응이라고 했다. 이런 주제는 한국, 특히 도시화의 격변기인 90년 당시의 서울 정서와 잘 맞아 떨어진다.

일곱 편의 소설과 두 편의 단편소설 그리고 작품상을 수상한 시나리오를 발표한 김영하는 한국에서 가장 사랑 받는 소설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작품은 한국의 거의 모든 주요 문학상을 휩쓸었고 열두 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었다. 각색 되어 영화화된 작품들도 여러 편이다. ‘퀴즈쇼’라는 작품은 뮤지컬로 만들어졌고, ‘빛의 제국’은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그의 인기 높은 테드 강연과 팟캐스트 그리고 뉴욕타임즈 기자로서의 활동도 흥미롭다. 그러나 김영하 작가의 작품은 아직 소설가 한강이나 신경숙의 작품만큼 외국 독자들에게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다.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그의 단편 소설은 매우 다가가기 쉽고 현대적이다. 장르소설의 요소도 갖고 있으며, 섹스 죽음 범죄와 같은 자극적 주제를 다룬다. ‘사진관 옆 살인사건’은 미국 고전 탐정 소설과 닮았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북유럽 느와르 풍의 범죄 시리즈물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하는 소설이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온 세상이 자신에 음모를 품은 듯한 하루를 보내는 회사원을 다루는데, 카프카의 작품을 생각나게 한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작가의 아내가 좋아하는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커버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한다. 그의 동료 작가 크리스 리는 그 작품을 지금까지 읽어본 이야기들 중 가장 외로운 이야기라고 평했다. ‘로봇’이라는 작품은 스스로를 로봇이라고 여기는 한 남자의 연애 이야기이다. ‘오빠가 돌아왔다’은 비극적이면서 동시에 희극적인 이야기로 막장 가족과 세대 간의 충돌을 이야기한 작품이다. ‘마지막 손님’ 은 2003년 ‘살인의 추억’ 영화 촬영장에서 일하던 친구에게서 영감을 받은 소설이라고 한다.

그의 작품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사랑, 섹스, 죽음, 쇼핑, 음악, 직장, 관계, 우정, 영화, 기술 그리고 예술 이라는 주제들은 모자이크처럼 합쳐져 한국 현대 사회의 모습을 나타낸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영감을 끌어오는 능력을 가졌고, 그의 단편소설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젊은 세대들에게 읽혀지도록 쓰여진 작품들 같다.

배리 웰시 서울북앤컬쳐클럽 주최자ㆍ동국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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