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를 지지하거나 권장하진 않는다. 그러나 차별하지도 않는다.’

지겨울 정도로 흔히 듣는 이야기다. 이번에는 문재인이다. 지난 13일, 그는 한기총, 한교연 등 기독교 연합 기구 대표들을 만난 자리에서 다른 성적 지향을 갖고 있다고 해서 차별해서는 안 되지만, 민주당이 동성애를 용인하고 조장한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고 발언했다.

지지율 1위 주자의 발언이다 보니 특히 논란이 되고 있긴 하지만 비단 문재인만의 입장은 아니다. 특히 정치인들 사이에서 이는 인권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으면서 기독교계의 표심도 얻을 수 있는 모범답안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 차별금지법의 발의자였던 김한길이 그랬고, 인권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였던 박원순도 그랬다. 박원순은 충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소수자가 포함된 서울인권조례를 폐기해버리기까지 했다.

이젠 대권 가도에서 이탈했지만, 반기문도 있다. 수많은 혹평에도 불구하고, 유엔사무총장 시절의 그는 분명한 성소수자 인권의 옹호자였다. 성소수자의 인권이 침해 당하는 것을 곧 우리 모두의 인권이 깎여나가는 것으로 표현했고, 학교 현장의 동성애 혐오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도 귀국 후에는 “(동성애를) 하라고 권장한 게 아니”라거나, “성소수자를 지지한다는 게 아니”라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간 과학적 증거의 누적으로 인하여, 성적 지향은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것임이 충분히 증명되었다. 인종, 성별, 출신처럼 말이다. 이에 대해 지지나 조장, 권장 등의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문제에 대한 몰인식을 보여주는 셈이다.

그러나 성적 지향이 인종, 성별, 출신 등과 달리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무형의 특질인 탓에,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버릴 수 없는 고유한 정체성이라는 사실을 종종 인지하지 못한다. 때문에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과 흑인임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 똑같이 어불성설이란 것이 와 닿지 않는 것이다. 동성애와 동성 간의 성관계, 동성혼 등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잖다. 동성애는 누군가가 흑인으로 존재한다거나, 여성으로 존재한다거나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지와 반대를 막론하고 그 자체로 존재한다. 막을 수도, 장려할 수도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지지니 장려니 하는 말은 그저 단어일 뿐인데 그에 너무 천착하는 것이 아닌가 묻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게 그저 단어가 아닐 수도 있다. 거기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죽어버린 사람들도 있다. 유황불로 심판해야 한다는 종교인의 저주를 들으며 살다가 목을 맨 사람이 있다.

그 정도 답변밖에 할 수 없다는 건 이해한다. 한국에서 성소수자와 연대한다는 것은 어떻게 봐도 표를 모을 수 있는 좋은 전략이 못 된다. 사실 교계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 성소수자를 차별해선 안 된다는 신념을 끝까지 지켰다는 점만으로도, 이들을 비난하는 건 온당한 처사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런 거물급 정치인의 행보는 사회의 경향과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조차 대선 후보 시절에는 동성혼에 대해 반대 입장을 피력했던 바 있다. 홍석천은 ‘동성애는 한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라는 안희정의 발언을 두고, 표 계산에서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발언을 취소해도 된다고까지 말했다. 그 자신이 동성애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앞장서 사회의 변화를 추동해야 할 책무 또한 갖고 있다. 단숨에 갈등을 봉합해버리고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걸 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분명한 인식을 갖고 있길 바라는 것이다. 사회적 변화는 빠르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 리더들이 근거에 기반한 합리적인 인식을 확실히 고수함으로써 느리더라도 꾸준히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사족. 당명 변경에 여념이 없으신 자유한국당(구 새누리당) 후보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임예인 슬로우뉴스, ㅍㅍㅅㅅ 편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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