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총서 설치 공약 내걸면
“면도기자판기도 비치하라”
역차별 반발에 무산되기 일쑤
여총없는 학교선 논쟁도 못해
“언제 생리할지 모르는데…”
하소연할 곳 없어 발만 동동
연세대에 설치돼 있는 생리대 자판기. 반면 서울 일부 대학에는 생리대 자판기가 없어 여학생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서울 A대 새내기 김모(19)씨는 14일 예비대학인 ‘미터(미리 배움터)’에 갔다가 다급히 화장실로 향했다. 예정보다 일찍 생리가 시작된 것. 화장실엔 생리대자판기가 없었다. 안절부절못하던 그는 급한 대로 동기에게 휴대용 담요를 빌려 허리에 두른 채 편의점으로 가 생리대를 샀다. 김씨는 “갑자기 생리가 시작돼 옷에 묻어나 행여 보일까 봐 너무 신경 쓰여 담요로 가렸다”고 했다. “고등학교에도 설치된 생리대자판기가 없어 너무 놀라고 당황했죠.”

일부 대학이 생리대자판기를 설치하지 않아 여학생들이 불만을 쏟고 있다. 해묵은 요구 사항인데도 남학생들 반발에, 학교 측 무성의에 좌초되기 일쑤. 그나마 여학생 학생회가 있는 대학은 선거마다 공약으로 등장하곤 하지만, 그마저도 없는 대학은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이 속앓이만 하고 있다.

생리대자판기는 비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강의실 등과 가까운 화장실에 자판기가 있으면 갑작스럽게 시작된 생리에 대응할 수 있다. 자판기가 있는 대학에 다니는 박모(26)씨는 “수업을 듣다가 생리가 시작되면 바로 화장실로 달려간다”고 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라 편의점까지 가거나 생리대를 빌릴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자판기 설치비용은 대당 40만~50만원, 상대를 배려한다면 비싼 액수도 아니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13년 한양대에선 여학생 총학생회장 후보가 자판기 설치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지만 자판기 설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여학생 80% 이상이 자판기 설치를 바란다”는 조사 결과도 먹히지 않았다.

남학생들이 ‘역차별’ 카드를 꺼내 들어 심하게 반발했기 때문. 당시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여자들만 사용하는 생리대를 왜 학생회비에서 빼서 지원하냐’ ‘남자 화장실에도 면도기를 비치해 달라’ 등 비난 글이 올라왔다. 학교는 논란을 빌미로 예산 지원 요청을 외면했다. 학생회 간부였던 이슬기(27)씨는 “면도기가 비상 생리대처럼 화장실에 비치해야 할 만큼 필수품인지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여학생 학생회가 사라졌거나 애초 없던 대학은 이런 찬반 논쟁도 이뤄지지 않는다. 세종대 학생 유모(22)씨는 “총학생회 내부에 양성평등위원회가 있지만 생리대자판기 설치에는 관심 없다”며 “생리대자판기는 비상 생리대를 살 수 있는 유일한 창구지만, 설치할 수 있는 동력이 보이지 않아 너무 답답하다”고 말했다. 2011년부터 여학생 학생회가 없어진 건국대 사정도 비슷하다. 건국대 졸업생 정모(27)씨는 “총여학생회가 있을 때는 그래도 생리대자판기 얘기가 나왔다”며 “지금은 학생들이 모두 불편해 하지만 얘기할 곳이 없다”고 했다. 한양대 역시 2014년을 끝으로 여학생 학생회가 사라져 현재 생리대자판기 설치를 주장하는 단체조차 없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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