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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죽은 자의 물건들

입력
2017.02.14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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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글 쓰는 일을 하다 보니 서랍이든 책장이든 오래 들지 않은 가방 속이든 노트들이 여기저기 쑤셔 박혀있다. 대부분 몇 장 쓰지도 않은 것들인데 들추어보면 기분이 별로다. 날것 그대로의 메모들은 시퍼렇게 서툴기만 했다. 그렇다고 쭉쭉 찢어낼 수도 없다. 열 줄 사이에 숨은 한 줄이 한 편의 소설을 만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유품정리사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을 읽은 적 있다. 고독사를 하거나 자살을 한 이들이 늦게 발견되어, 유족들조차 악취 풍기는 집에 들어갈 수 없을 때에 그들이 남긴 물건들을 정리하는 이가 유품정리사다. 그들은 냄새를 빼고 살균을 하고 귀중품을 따로 모아 유족에게 전한 다음 재활용을 할 수 있는 물건들과 소각할 물건들을 챙긴다. 유서를 제외한 다른 내 것을 타인에게 보이는 일이 몹시도 싫은 나 같은 사람은 유품정리사가 반갑지 않다. 무엇보다 내 노트를 누가 보는 일이 싫은 거다. 친구는 얼마 전 유품정리 업체에 전화를 걸었단다. 별거 중인 친구는 남편과 살던 집에 남은 살림들을 정리하기 위해 그곳에 의뢰를 했다. “이 좁은 원룸에 커다란 장롱이랑 침대를 끌고 올 순 없잖아. 그렇다고 그 사람이랑 같이 쓰던 냄비랑 커피잔이 나한테 필요하겠니?” 나는 그런 일로 유품정리 업체를 이용한다는 걸 처음 알아서 마음이 조금 먹먹했다. 그녀의 혼수들은 중고가구점에 실려가거나 못이 뽑히고 문짝이 빠진 채로 고물상에 가겠지. 옷장 속 옷가지들은 헌옷 수거업체로, 가전제품은 재활용센터로도 갈 테고 비교적 말짱한 것들은 유품정리사가 챙길 것이었다. 죽은 자의 물건처럼 곳곳으로 흩어질 그 집의 살림살이를 떠올리니 친구와 맥주라도 한 잔 해야 할 것 같았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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