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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 "실화 연기 부담에 한번 더 외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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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 "실화 연기 부담에 한번 더 외치곤 했다"

입력
2017.02.1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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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는 “영화 ‘재심’은 실화보다 더 따뜻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정우는 “영화 ‘재심’은 실화보다 더 따뜻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시나리오를 아껴가면서 봤다고 했다. 무슨 말일까. 이야기가 궁금하면 보통 단번에 쭉 읽어가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배우 정우(38)는 영화 ‘재심’(15일 개봉)의 시나리오를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장면 장면마다 상상력을 더해갔다. 상상을 먼저 하고 그 다음에 그것이 맞는 지 시나리오를 들여다봤다. ‘재심’은 정우에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정우를 만났다.

‘재심’은 지난 2000년 전북 익산의 약촌 오거리에서 발생한 사건을 모티브로 한 실화다. 당시 16세 소년이 택시기사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10년을 복역했다. 그 뒤 지난해 16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정우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실화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그저 구성이 탄탄한 이야기라고 느꼈다. 나중에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두 차례나 방영된 사실을 알았고, 영화 촬영이 끝난 뒤에야 방송을 봤다. “선입견이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뒤늦게 ‘그것이 알고 싶다’를 봤다”는 그는 “아무래도 연기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았다”라고 했다.

실화를 접한 정우는 “충격 그 자체였다”고 했다. “그런 일을 내가 겪었다면 어땠을까. 두렵고 무섭고 힘들었을 상황을 곱씹었다”며 연기에 자신의 감정을 보탰다고 했다.

정우는 실제 이 사건을 담당했던 박준영 변호사를 연기했다. 극중 이름도 성만 다른 이준영이다. 직접 박 변호사를 만나 사건의 뒷이야기들을 들었다. “변호사 같지 않은 외모”를 가진 박 변호사를 보면서 영화 속 캐릭터를 만들어 갔다. 초반에는 대중적으로 화제가 되는 큰 사건이나 거액의 수임료를 챙기는 ‘속물’ 변호사로 캐릭터를 잡았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빈틈 많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변호사로 보이고 싶었다”고 했다.

정우(왼쪽)와 강하늘은 영화 ‘재심’에서 각각 변호사 준영과 살인범 누명을 쓴 현우로 출연했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정우(왼쪽)와 강하늘은 영화 ‘재심’에서 각각 변호사 준영과 살인범 누명을 쓴 현우로 출연했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언제부터 의뢰인이 범죄자인지 따지셨습니까?” 등의 대사만 봐도 영화 속 준영의 속물 근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다 억울한 누명에 10년간 투옥 생활을 한 현우(강하늘)를 만나면서 준영을 조금씩 변해간다. 경찰의 폭력 앞에 살인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던 현우의 사정을 알아가면서 준영은 변호사로서의 사명감을 배워 나간다. 준영은 살인마라는 사회의 차가운 냉대 속에 날카로워져만 가는 현우의 손을 잡고 진실규명을 위해 애쓴다.

정우는 “실존인물을 연기하는 건 어렵다”고 털어놨다. 영화 속에서 감정이 고조된 현우를 진정시키기 위해 뺨을 때리는 장면조차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영화 ‘히말라야’(2015)를 떠올려야 했다. 에베레스트에서 사망한 산악인 박무택을 연기했던 그는 “마지막에 숨을 거두는 장면은 상당히 예민하게 촬영했다. 무려 10여 번 재촬영하며 연기와 싸웠다”고 했다. 실존 인물을 설득력 없이 연기하면 당사자나 가족 등 관련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신경 쓰며 연기했다.

그래서인지 정우는 ‘재심’ 촬영 때는 “한 번 더”를 매번 외쳤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중압감과 함께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함께 작용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재심’의 김태윤 감독은 배우들의 연기에 첫 테이크 만에 “오케이”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정우는 그럴 때마다 “한 번 더!”를 외쳤다고 했다. “순간적으로 ‘컷’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현장의 열기를 더 끌어올리고 싶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날씨도 덥고 기운이 빠지는 촬영 현장에서 파이팅 넘치는 모습으로 후배들을 이끄는 존재가 되고 싶었단다. 이심전심이라고 했던가. 상대 배우인 강하늘마저 “한 번 더”를 입에 달고 다녔다고 한다. 전염성 강한 긍정 바이러스를 정우가 전파한 셈이다.

하지만 위기도 있었다. 영화 속에서는 편집됐지만 유리문에 얼굴이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이마 부위를 50바늘 정도 꿰매는 대형 사고였다. 병원으로 이동해 무려 한 시간 동안 봉합수술을 했다. 촬영이 중간에 중단될 정도였다. 병원에서는 열흘 이상 쉬어야 한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실밥을 풀지도 않은 상황에서 촬영에 임했다. “상처 난 부위는 컴퓨터그래픽(CG) 작업을 했을 정도”였다. 정우는 “많이 속상하고 안타까웠던 순간이었다”고 돌아봤다.

정우는 영화 ‘재심’에서 살인마라는 누명을 쓴 현우(강하늘)의 억울함을 풀어주려 애쓰는 이준영 변호사로 열연한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정우는 영화 ‘재심’에서 살인마라는 누명을 쓴 현우(강하늘)의 억울함을 풀어주려 애쓰는 이준영 변호사로 열연한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그렇게 많은 액션 영화를 했지만 다친 적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이번에 심각한 부상을 당해서 저나 가족들, 영화 제작진들이 모두 놀랐어요. 영화가 흥행하려고 액땜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하”

정우가 웃을 수 있는 건 15년 가량의 연기 내공이 차곡차곡 쌓인 덕이다. 지난 2008년 영화 ‘스페어’의 주인공으로 낙점되기 전까지 그는 7년간 단역과 조연을 전전했다. 이후 ‘바람’ ‘붉은 가족’으로 스크린에 주연으로 나서긴 했지만 결과는 신통찮았다. 그러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2013)에 출연하면서 드디어 빛을 봤다. 그는 이후 ‘쎄시봉’(2015)과 ‘히말라야’, ‘재심’까지 세 편 연속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렸다.

“매 작품을 하면서 제가 조금씩 변화하는 것을 느낍니다. ‘스페어’로 첫 주연을 했을 때는 현장에서 오는 중압감을 느끼면서 연기를 했죠. ‘바람’을 통해선 연기에 대한 즐거움과 희열을 느꼈고요. 아직도 배우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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