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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 칼럼] 트럼프의 암울한 트위터 기술

입력
2017.02.12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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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은 그의 정치적 소통기술을 줄곧 과소평가해 왔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나 로널드 레이건 같은 전임자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 둘은 “위대한 소통자”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국인의 상당수가 이 두 사람을 싫어한다 해도 이들은 미국민 모두를 끌어안았고, 중도파에 호소하려 했다. 대조적으로 트럼프는 자신을 선택한 소수층만 염두에 두고 있다. 그의 취임사는 선거유세처럼 들렸고, 취임 후 일련의 거짓 발언과 선동적 행정명령은 자신의 지지층을 강화했지만, 중도파의 신뢰를 무너뜨렸다.

트럼프는 리얼리티 TV로 소통술을 연마했다. 거칠고 선동적인 발언에 관중이 즐거워하고 시청률이 올라가는 그런 곳이다. 그는 17명의 후보가 난립한 공화당 경선 때 관심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위해 그런 접근법을 썼다. 한 조사에 의하면 트럼프는 20억 달러에 달하는 광고효과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공화당 내 라이벌인 젭 부시가 광고를 사기 위해 쓴 돈 1억 달러를 훨씬 능가한다.

많은 사람들은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지명된 뒤에는 본선에 대비해 중도로 이동하는 전통적 길을 따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번 그런 기대를 거부하고 포퓰리즘적 캠페인을 자신의 일부 지지층에게 집중했다. 그 지지층이란 지구적 경쟁시대에서 일자리를 잃고, 과거 수십 년 동안 일어난 문화적 변화에 분노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포퓰리즘적 전략은 타깃 계층에 효과적으로 먹혀 들어 투표에서는 거의 300만표 가까이 졌지만, 선거인단 획득에서는 승리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3개 러스트 벨트 주(州)의 10만 표가 없었다면 그는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관측가들은 트럼프가 취임 후에는 정치적 중도파에 메시지를 전할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자신의 밑바닥 지지층을 위한 정치를 고집함으로서 지식인들을 다시 혼란에 빠뜨렸다. 과거 ‘레이건 민주당원’으로 불린 블루칼라 노동자 계층과 티파티 공화당원으로 새로운 포퓰리스트 정당을 만들 것이라는 추측도 나돈다.

트럼프는 소통의 도구를 선택하는 데도 관례를 따르지 않았다. 새 기술은 새로운 기회를 연다. 루스벨트는 라디오 방송으로 인해 가능해진 대중과의 ‘노변정담’을 잘 활용했다. 레이건은 미리 준비한 원고를 TV 연설을 통해 극적으로 전달하는데 거장이었다. 레이건의 백악관 스태프들은 그 날 혹은 그 주의 최우선 이슈에 항상 행정부 메시지의 초점을 맞췄다. 트럼프는 자신이 능숙하게 다루는 케이블 TV와 함께 트위터를 사용했다. 유세 기간 참모들이나 언론을 뛰어넘어 공공의 의제를 직접 주도해 나가기 위해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놀라는 것은 트럼프가 백악관에서도 이를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바마 참모진이 든든한 계정을 갖고 있었듯, 트위터 사용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가 개인적으로 관여한다는 것은 백악관 발(發) 정책적 충격을 어떻게 관리하고, 핵무기와 같은 복잡한 정책이슈를 140자 이내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많은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지지층과의 소통의 도구로서, 그리고 관심을 자신에게 계속 집중시키기 위한 도구로서의 트위터 정치는 트럼프가 의회와 언론을 건너 뛰어 직접 대중과 소통할 수 있게 해 줬다.

정치적 소통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한다.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많은 방법들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는 집회에서의 연설 등을 위해 수사(修辭)를 가르치는 학교가 있었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웅변술을 공부한 뒤 로마 원로원에서 명성을 떨쳤다. 우드로 윌슨은 어렸을 때 재능 있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리더가 되는 데 필수적이라고 생각해 웅변술을 터득했다. 윈스턴 처칠은 완벽한 영어문장 구사 능력을 성공의 비결로 꼽곤 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구어체의 리듬이 풍부한 아프리카계 교회에서 성장하면서 소통의 자양분을 얻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다른 사람보다 쉽게 온다. 마리오 쿠오모 전 뉴욕주 주지사는 힐러리는 보다 체계적이고 꼼꼼한 반면 빌은 극장식의 과장된 성격이라고 둘을 비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웅변술이나 수사학이 효과적 정치소통의 유일한 형태는 아니다. 말을 사용하지 않는 신호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요소다. 영감을 주는 지도자들 중에는 훌륭한 웅변가가 아닌 사람들도 있다. 마하트마 간디를 보라. 시골 촌부의 소박한 옷차림과 그런 삶의 스타일이 주는 상징성은 말보다 훨씬 울림이 크다. 간디의 그런 이미지를 영국 변호사 복장을 한 불안정해 보이는 젊은이의 모습과 비교한다면 상징적 소통의 힘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다.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방식에서 말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이 적혀있는 그의 빨간색 유세용 야구모자라든가 사업가로서 브랜드에 대한 집착, 트위터를 쓰는 것 등을 생각해보라.

웅변술과 상징으로 멀리 있는 관중과 소통하는 것에 더해 리더에게는 일대일 혹은 작은 그룹에서 소통할 줄 아는 능력도 필요하다. 어떤 경우에는 밀착 소통이 수사보다 더 중요하다. 효과적인 내각을 이끌고 활력을 불어넣는 조직관리 능력은 트위터 정부와 양립하기 어렵다. 해리 트루먼은 웅변술에서는 그저 그랬지만 우수한 참모진을 능숙하게 관리하고 생기를 불어넣음으로써 부족한 대중연설 능력을 상쇄했다.

모범을 보인다는 것은 리더에게는 매우 중요한 또 다른 소통의 형태다. 2007년 싱가포르 정부가 공무원들의 임금을 인상했을 때 여론의 부정적인 반응이 예상되자 리셴룽 총리는 자신은 그 대상에서 빼겠다고 선언했다. 이해충돌과 관련한 상징적 측면에서 트럼프는 아직 정치소통의 기술을 숙지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트럼프는 비판론자들이 예상했던 것보다는 효과적인 소통 능력을 보여줬지만, 비전통적 방식으로 장기간 성공할 수 있을지 여부는 그의 임기 내내 큰 의문 중의 하나로 남을 것이다.

조지프 나이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ㆍ국제정치학

번역=황유석 논설위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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