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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따라쟁이 아기

입력
2017.02.0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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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16개월 아기는 뭐든 따라하고 흉내를 낸다. 찻주전자와 찻잔 소꿉놀이 세트를 사 주었더니 온종일 차를 따르고 나에게 마시라고 내미는 통에 “응, 고마워, 엄마 냠냠.” 이 소리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에는 서랍장 안에서 손수건 한 장을 꺼내 와서 노는가 싶더니 설거지를 하는 내 곁에 서서 냉큼 손수건을 배에 둘렀다. 가만 보니 내가 두른 앞치마를 따라 한 모양이었다. 하도 우스워 설거지는 내팽개치고 동영상을 찍어 두었다. 카메라를 본 아기는 더 신이 나서 손수건 앞치마를 두른 채 발을 막 동동 굴렀다. 마침 아기의 안부를 물어 온 선배 언니에게 동영상을 보내 주었더니 딩동, 메시지가 왔다. “도저히 안 사 줄 수가 없네. 꼬까 앞치마 하나 사서 보냈다.” 나는 아기보다 더 신이 나고 말았다. 장난감 과일이 가득 든 바구니를 팔뚝에 척 걸고 현관을 나서고, 전화기를 귀에 대고 혼자 까르르 웃다가 작은 손을 들어 입까지 가리는 건 분명 할머니를 따라 하는 것일 테다. 수줍음이 많은 시어머니의 습관인 것을 나도 안다. 얼마 전에는 재우려고 눕혔더니 저 혼자 꼬무작꼬무작 모로 돌아누워 휴대폰을 들여다보기에 기함을 한 적도 있었다. 어릴 적 마당 수돗가에서 손빨래를 하는 엄마를 보며 나도 빨래판과 빨래비누가 그렇게 갖고 싶었다. 굽 높은 구두와 머리를 동그랗게 부풀리는 구루프 같은 것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신기하던지. 내 아기도 얼마 안 가 엄마의 인생 따위 시시하게 여기는 새침한 소녀가 되고 말겠지만 아직은 달걀을 부치는 내 옆에 다가와 제 장난감 프라이팬을 불쑥 내밀고 있으니 당분간은 그저 즐겁겠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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