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나쁜 놈들을 막지 못하면 미군을 내려보내겠다"며 원색적인 표현으로 위협했다고 AP통신이 통화 녹취록 발췌본을 인용해 지난 1일 보도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미일 정상간 친밀감이 뚜렷할수록 일본인들은 안정감을 갖는게 전례였다. 그러나 전세계를 거칠게 다루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일본인의 전통적인 믿음도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특유의 발빠른 행동이 트럼프에겐 기대만큼 통하지 않는 분위기다. 첫 정상회담의 주인공이 되려던 장면이 무산된데다, 아태지역에서 경제는 물론 안보성격까지 가미해 미국이란 큰 형님을 뒤에 두고 골목대장 노릇을 하려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트럼프에게 퇴짜를 맞았다.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격동기에 대중의 불안을 기반으로 맹위를 떨치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위력이 일본에서도 잉태될 조짐이다. 포퓰리즘 자체는 한 사회의 쟁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긍정과 부정적 측면을 함께 갖는 양날의 칼과 같다. 문제는 국민의 불안과 분노를 이용하는 정치방식의 부작용에 있다.

일본도 미래에 대한 불안이 심상치 않다. 고령화와 인구감소, 장기 저성장을 벗어날 마땅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중산층이 약해지고 정사원보다 급여가 낮은 비정규직이 해마다 증가해 전체의 40%에 달하고 있다. 체념적이고 수동적인 일본인의 성격도 무장해제될 조건을 갖춰가는 듯 하다. 분노를 이용하는 정치가 출현하기 딱 좋은 환경인 것이다.

물론 포퓰리스트가 반체제적 입장에서 주로 기득권층을 적으로 설정한다는 점에서 외조부가 총리를 지낸 아베 총리를 이쪽으로 분류하긴 힘들다. 정치권 아웃사이더인 트럼프와 일본 주류사회의 귀공자격인 아베는 출신이 다르다. 그러나 국회 답변과정만 봐도 적을 설정하는데 능한 아베 총리의 모습을 포퓰리즘적 특성과 달리볼 수도 없다. 아베는 주로 추궁을 당할 때 더 강한 기세로 민주당(현 민진당) 정권의 실패를 주장하는 방법으로 공격성을 드러내왔다.

트럼프가 잘 활용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대중조작이나 포퓰리즘을 구사하는데 큰 무기가 된다. 말하고 싶은 화두만 일방통행식 전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아베 총리와 우익인사 하시모토 도루(橋下徹)전 오사카 시장이 SNS를 중시한다.

정책이슈도 포퓰리즘의 대표적 수단이다. 아베 총리는 최근 느닷없이 대학교육 전면무상화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헌법개정을 통해 대학까지 포함한 고등교육 무상화를 실시하자는 파격적인 주장은 보수야당의 제안에 아베가 지지하는 방식으로 세를 확산중이다. ‘전쟁가능한 보통국가’로 가는 개헌 길목에서 별도의 미끼를 던지는 정교한 수법인 셈이다.

이같은 일본판 포퓰리즘이 한일관계에선 극단적인 우익적 목소리로 연결되고 있다. ‘한국 때리기’가 불안심리가 팽배한 일본사회의 허한 마음을 채워주는 인기영합주의로 구현되는 것이다. 아베 정부는 ‘소녀상’ 호칭을 문제삼기 시작했고 일본에선 공식명칭을 ‘위안부상’으로 통일할 계획이다.

소녀상이 아닌 위안부상으로 불러야 한다는 이유는 당연히 표현에서 오는 상징성 때문이다. 소녀상은 식민지 한반도의 어느 소녀가 끌려가는 장면을 선명하게 연상시킨다. 그러나 강제연행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이 위안부상으로 바꿔 부른들 보이는 모습이 소녀이니 이기기 힘든 프레임 싸움이다. 또 ‘박근혜_최순실 사태’를 보며 ‘촛불의 힘’을 신기해하던 일본사회 일각의 평가가 ‘정부를 굴복시키는 게 민주주의라고 자화자찬한다’는 비아냥으로 바뀐 점도 감지된다.

조기대선의 가능성과 맞물린 한국에서도 반일 포퓰리즘의 기세는 더하면 더했지 사그라들 분위기가 아니다. 양국이 부정적 시너지를 주고받으며 분노를 더 키워갈 것이다. 한일관계는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질 일만 남았다. 외교는 이상과 현실이 교차한다. 이보다 더 나빠지지 않게, 더 막장으로 치닫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게 외교역량이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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