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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구의 동시동심] 맘대로 거울

입력
2017.02.0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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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기를 망설이고, 길을 갈 때면 유리에 자기 모습이 비쳐 보일까 봐 쇼윈도도 안 보던 아이가 있다. 아무개야 하고 누가 자기 이름을 부르기라도 하면 화들짝 놀란다. 거울에 비쳐 확인되는 자신의 속꺼풀 눈과 쪽니도 자꾸 미워진다. 이렇게 거울 보기를 부담스러워하고 남의 눈에 띄기를 두려워하는, 자신감이 없던 아이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소설이나 산문이라면 그런 변화의 이유를 그럴 듯하게 말해야 하겠지만, 동시라면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언제부턴지 “내 눈에 내가 꽤 이뻐” 보이고, “속꺼풀도 쪽니도 나름 귀여워” 은근히 자신감이 생겼다. “한 번 보고/두 번 보고/세 번 보니까//조금씩 천천히 내가 좋아진” 것이다. ‘한 번, 두 번, 세 번까지’ 보았다는 것과 ‘조금씩 천천히’ 좋아졌다고 말하는 데 이 시의 묘미가 있다. 어쨌든 이 아이는 거울 속의 아이와 완전히 화해한다. ‘나를 외면하던 나’가 ‘나를 좋아하는 나’로 변신한 것이다.

송선미의 동시 ‘맘대로 거울’은 여러 번 읽을수록 시 속의 아이를 따라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을 긍정하게 되는 감염성이 짙은 작품이다. 거울이야 항상 사물을 정직하게 비쳐 보여주지만 볼 때마다 거울 속의 영상은 밉게도 귀엽게도 보이며 달라진다. 일체유심(一切唯心)을 살짝 깨친 것이라 해도 되겠다.

얼마 전 강남에 공연을 보러 갔다가 거리의 빌딩마다 성형외과 간판이 즐비한 것을 보고 쫙 소름이 끼쳤다. 개인의 선택권을 존중해야겠지만 과연 쌍꺼풀이 예쁠까, 외꺼풀이 예쁠까, 속꺼풀이 예쁠까. 인생을 살려면 얼마간 나르시스트가 되어야 쓸데없는 괴로움을 벗어날 수 있다. 누구나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면 많은 거울들과 마주친다. 학벌이며 자식이며 친구며 직장이며 애인이며 그 모두가 자신을 비쳐 보이고 있는 거울이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말거나, 네 번 이상 지나치게 보는 것은 위험하다. 딱 세 번 보는 게 적당하다. 후훗.

김이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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