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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과거사에 전향적일 수 없는 일본

입력
2017.02.03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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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1923~96)는 일본 문학에서 독특한 영역을 개척한 소설가이다. 그는 기독교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던 일본에서 가톨릭 신도이자, 신과 구원의 문제를 일관되게 천작한 가톨릭 작가로 이름을 떨쳤다. 13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대표작 ‘침묵’은 그를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로까지 만들어 주었다. 이런 소개는 그에게 평생 무겁고 엄숙한 작품만 쓴 소설가였다는 후광을 안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명성을 높여준 종교소설을 쓰는 막간에, 그의 경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대중소설도 몇 편이나 썼다.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좌절시켰다는 후문을 갖고 있는 ‘스캔들’(보고사, 1999)이 그런 작품이다.

1986년에 출간된 ‘스캔들’은 작가와 비슷한 나이의 소설가 스구로가 주인공이다. 예순여섯 살 난 스구로가 작가의 분신이라는 것은 그가 엔도처럼 가톨릭 신자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스구로가 엔도의 소설과 제목이 똑같은 ‘침묵’을 썼다는 설정으로 더욱 두드러진다. 작가가 자신의 일상이나 치부를 고스란히 중계하는 소설을 사소설(私小說)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작중의 스구로가 미쓰라는 여중생을 능욕하는 ‘스캔들’도 사소설일까. 엔도는 소설의 기본 줄거리나 세부를 실제 작가의 삶과 일치시켜가며 읽는 것에서 독서의 즐거움이 발생하는 사소설의 문법을 빌려, 자신이 전달하려는 주제를 극대화하려고 했다.

집필실에서 가까운 요요기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던 스구로는 원조교제에 발을 담그기 직전의 여중생을 우연히 알게 된다. 미쓰에게 자신의 집필실을 청소하는 아르바이트를 맡긴 스구로는 그녀의 천진한 모습을 훔쳐보며 노쇠의 슬픔을 느낀다. 작중의 미쓰는 아직 여자의 모습을 느낄 수 없는 어린아이의 신체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고, 그녀는 주로 잠에 빠진 형태로 등장한다. 난숙한 여성의 신체와 여성의 응시는 남성의 주체성을 탈취하기 때문에, 희생자에게는 이중의 안전장치가 강제됐다.

이 작품의 주제는 스구로가 “미쓰의 몸을 침으로 더럽히고 있던 자기를 꼭 닮은 사내, 그는 다른 사람도 아니오 가짜도 아니었다. 그는 나이다. 그것은 다른 한 면의 나이고, 또 한 사람의 나이다. 그것을 이제부터는, 다시 감출 수는 없다. 부정할 수도 없다”라고 한 말에 집약되어 있다. 여기에 “인간은 아름다운 것에서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사실은 인간이란 추한 것에서도 미(美)를 찾아 도취할 수가 있다는 거야”를 덧붙이면 더욱 완벽해 진다. 선악과 미추의 공존을 승인하는 이런 세계관은 기독교적이라기보다, 엔도가 30대 중반에 사드에 대한 평전을 쓰고, 사드를 공부하겠다고 프랑스로 건너간 사정과 상관 깊다. 하지만 그것을 추적하는 것은 이 글의 목표가 아니다.

사디스트인 나루세 부인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분열된 스구로를 하나의 통합된 인격으로 만들어주는 인도자 역할을 한다. 그녀가 사디스트가 된 경위는, 아시아 태평양 전쟁 당시 중국에 파견되었던 남편 나루세 도시오로부터 민간인 학살 체험을 듣고서다. 대학교 2학년 때 학도병으로 육군에 입대하여 전쟁이 끝날 때까지 중국에서 근무했던 도시오는 게릴라를 소탕한다면서 중국인 마을을 습격해 여자와 아이들을 집단 학살했다. 잠자리에서 남편의 학살 이야기를 들은 나루세 부인은 모범생 같았던 남편에게 “모순 된 두 가지의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충격과 쾌감을 함께 느꼈으며, 민간인 학살 광경을 떠올릴 때마다 흥분하게 된다.

나루세 부인의 일화가 개운치 않은 것은, 남편의 중국 민간인 학살이 고작 인간의 양면성을 드러내주는 개인적인 체험으로 축소되고 마는 때문이다. 그리하여 일본의 전쟁 책임은 그저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알 수 없는 흑점(黑點), 문자 그대로 “마음 속의 새까만 것”에 전가되고 만다. 이런 전도를 엔도 슈사쿠 개인의 작가 능력 부족이나 역사인식 결여라고 말 할 수 있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하겠다. 고케쓰 아쓰시의 ‘우리들의 전쟁책임’(제이앤씨, 2013)과 거기 실린 히로히토의 항복 조서를 보면,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던 일본이 자신의 과거사에 대해 전향적이 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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