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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두 살이 되지 않은 아기는 가끔 내 등 뒤에 붙어 서서 목덜미를 살금살금 어루만진다. 내 목덜미에 새겨진 푸른 나비 때문이다. 나는 오래 전 뒷목에다 나비 한 마리를 그려 넣었다. 타투어는 진지한 목소리로 조언을 했다. “본인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잖아요. 목덜미에 새긴다면 자기 눈으로 자기가 즐기지 못해요.”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내가 타투를 원했던 건 ‘예뻐지고 싶어서’였다. 몸에 예쁜 그림 하나 그려 넣고 오래오래 즐기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내가 보지 못하는 그림이라니. 날렵한 구두도, 고급스런 시계도, 하다못해 아슬아슬하게 짧은 스커트도 내 눈으로 바라보며 내가 즐기기 위한 것이었는데 타투는 왜 뒷목을 택한 걸까, 스스로에게 여러 번 물었지만 나는 딱히 대답을 찾지 못한 채, 처음의 고집대로 목덜미에 나비를 그려 달라 부탁했다. 그래서 내 타투의 목격자는 요즘 아기뿐이다. 아빠에게도 할머니에게도 없는, 오직 엄마만의 이상한 푸른 나비. ‘정글에서 춤추는 공작새를 누가 보았나’라는 힌디어 속담이 있다. 정글 속 공작새는 신이 나서 춤을 추지만 누구도 그 모습을 목격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공작새는 정말 춤을 춘 것인가 아닌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물론 공작새에게 관중은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저 혼자 신나서 춤을 추었는데, 공작새가 정말 춤을 춘 건지 아닌 건지 따지는 사람들을 보며 공작새는 고개를 갸우뚱할는지도 모른다. 내 타투는 목격자를 위한 것이었나.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나. 곰곰 생각해보는 밤이다. 사실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한다. 그냥 엄지발가락에다 타투를 새길 걸, 그런 생각도 들고 말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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