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인 뼈에서 찾은 조상의 기원…“유전적 동질성 상대적으로 높아”

러시아 극동지방 동굴서 발견된
7700년 전 인류 유전자 분석 비교
울산과학기술원 공동논문 발표
“남방계 유전자가 대부분 차지
북방계 비중 극히 적게 나타나
단일민족 의문 거둬도 될 듯”

‘우리는 단일민족이다.’

40대 이후 세대라면 어릴 때부터 귀 따갑도록 들어왔을 이 명제가 흔들리기 시작한 건 불과 10여년 전이다. 믿음을 의문으로 바꿔놓은 결정적 요인은 생명공학 기술이다. 유전자 분석으로 한국인이 북방계와 남방계 동아시아인이 혼합된 집단이라는 학설에 힘이 실리면서 ‘우리가 정말 단일민족일까’라는 의문을 품게 됐다. 세월이 흘러 유전자 빅데이터를 자유자재로 다루게 된 지금, 의문이 다시 믿음으로 바뀔 가능성이 제기됐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과 영국 캠브리지대,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독일 포츠담대 공동연구진은 미국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 1일자(현지시간)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한국인을 단일민족이라고 봐도 무리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를 주도한 박종화 UNIST 게놈연구소장은 “신석기 시대에 살았던 고대인들의 유전자를 분석해 한국인의 기원을 밝힌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두만강 북동쪽 러시아 극동지방의 ‘악마문(Devil’s Gate)’ 동굴에서 1970년대에 발견된 7,700년 전 고대인 5명의 뼈에서 유전자를 채취해 분석했다. 이들은 갈색 눈동자와 삽 모양 앞니 유전자를 갖고 있었다. 갈색 눈동자 유전자는 서양인과 한국인이 약간 다른데, 악마문 동굴인은 한국인 유전자와 더 비슷했다. 앞니 안쪽에 홈이 파여 삽처럼 생긴 것 역시 한국인에 많이 나타나는 특징이다. 우유 소화가 잘 안 되는 유전자, 고혈압에 약한 유전자, 몸 냄새가 적은 유전자, 마른 귓밥 유전자 등 현대 동아시아인이 전형적으로 갖고 있는 유전자도 확인됐다.

학계에선 악마문 동굴인이 현재 인근에 사는 울지(Ulchi)족의 조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근처 다른 원주민을 제외하면 현대인 가운데선 한국인이 악마문 동굴인이나 울지족과 유전자가 가장 비슷할 것으로 연구진은 판단했다. 악마문 동굴인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한국인과 거의 같았다는 점도 이런 판단의 근거다. 세포에 들어 있는 작은 기관인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는 모계(母系)로부터만 물려받기 때문에 유전적 조상을 추적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러시아 극동지방의 ‘악마문’ 동굴 입구. 이곳에서 발견된 7,700년 전 고대인의 뼈에서 추출한 유전자 일부가 한국인과 유사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제공
러시아 극동지방 ‘악마문’ 동굴의 위치. 울산과학기술원(UNIST) 제공

연구진은 이어 60여개국에 퍼져 있는 수십 가지 인족(인종집단)에 속하는 약 2,500명의 유전정보를 확보해 유전자가 얼마나 섞여 있는지, 유전자의 변화가 얼마나 유사한지 등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계산했다. 그리고 악마문 동굴인과 현대 베트남 또는 대만 원주민의 유전자를 융합했을 때 한국인과 가장 비슷한 유전자가 구성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한국인의 뿌리가 수천 년 동안 북방계와 남방계 아시아인의 유전자가 섞여 형성됐다는 기존 학설이 증명된 것이다.

지금까지 학계에선 이 학설 때문에 한국인은 순수한 단일민족이 아니라는 견해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연구진이 컴퓨터로 재구성한 고대 한국인의 유전자에는 남방계 유전자가 대부분이고 북방계 유전자는 종류나 비중이 극히 적게 나타났다. 다른 아시아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국인은 유전적 동질성이 매우 높다는 의미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유전자 구성 측면에서 보면 한국인은 단일민족이라도 불러도 된다”고 판단했다.

신석기 시대 전후 동아시아인들의 유전자 구성 변화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추측해본 결과. 아랫줄로 갈수록 현대와 가까운 시기다. 한국인의 왼쪽은 북방계, 오른쪽은 남방계 인족(인종집단)이다. 색이 여러 가지일수록 다양한 유전자가 섞였다는 의미다. 한국인은 다른 인족에 비해 유전자 구성이 단순하고, 현대와 가까워질수록 남방계와 더 비슷해진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제공
7,700년 전 이전 아시아인들의 주요 이동 경로. 화살표의 색깔은 각기 다른 이동 흐름을 보인 집단을 뜻한다. 이 중 남방계의 한 집단(파란색)이 북쪽으로 영역을 확장하다가 그 전에 자리잡고 있던 북방계 집단(노란색)과 만나 한반도로 내려왔다. 이들이 향후 한국인의 조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제공

동아시아인은 과거 북극과 서아시아, 남아메리카 지역까지 광범위하게 이동하며 살았다. 그러다 약 1만년 전부터 북방계와 남방계의 생활상이 뚜렷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고 정착생활을 하게 된 남방계는 자식을 많이 낳으며 인구와 영역을 빠르게 확장했지만, 북방계는 여전히 수렵채집과 유목생활을 했기 때문에 세를 키우지 못했다. 전성원 게놈연구소 연구원은 “남방계가 북쪽으로 영역을 확장하다 그 전에 자리잡고 있던 북방계와 7,000~8,000년 전 이후 만나 융합한 뒤 한반도에 자리잡아 한국인의 조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현대 한국인과 중국인의 유전자와 질병 정보 등을 대규모로 분석해 동아시아인의 기원과 이동을 더 구체적으로 밝혀낼 계획이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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