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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보기만 해도 웃음이 푹 터지는 양은밥상이 하나 있다. 식당 배달 아줌마들이 김치찌개 뚝배기와 나물 종지, 그리고 공기밥을 쌓아 머리에 이고 좁은 시장 길을 바삐 걸을 때 쓰던 그 양은쟁반에 다리만 달린 것이다. 우연히 발견을 한 나는 냅다 만원을 내고 그 밥상을 샀다. 반짝반짝 싸구려 윤이 나는 밥상에는 푸르고 붉은 꽃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가끔 친구가 놀러 오면 나는 양은밥상을 꺼내 상을 차리곤 한다. 못난이 계란프라이 두어 개를 부치고 깍두기를 꺼내고 거기다 갓김치까지 있으면 양은밥상은 한껏 예뻐진다. 그리고는 참이슬 한 병. 어릴 적 아버지는 술을 하지 않아 아무리 기억을 헤집는다 해도 엄마가 양은밥상에다 술상을 차린 적이 없지만 나는 그런 장면을 수십 번도 더 본 사람처럼 마냥 정겹다. 총각김치 한 입 베어 물고 막걸리 한 잔 들이켜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 속에서 자꾸 보는 거다. 물론 내 아버지는 순한 사람이라 밥상 따위 엎어본 적 없지만 이 밥상만 보면 온 식구 다 둘러앉은 참에 홱 둘러엎어 버리는 성난 어느 아버지의 행패가 떠오르기도 하고 치맛자락 꼭 말아쥐고 앉아 새침하게 젓가락을 두들기는 낯 모르는 젊은 처녀가 떠오르기도 한다. 참 별일이지. 잔치국수 말아 다섯 식구 머리 디밀고 앉아서 호로록 국수가닥을 빠는 가족도, 늦은 밤 텔레비전 켜놓고 라면 한 개 끓여 뚜껑에 덜어먹는 자취생의 얼굴도 그려진다. 양은밥상에다 밀가루 홀홀 뿌려놓고 엄마와 둘이 앉아 소담소담 빚은 만두를 늘어놓아도 되겠다. 밥상이 꽉 차면 엄마는 끄응, 일어나 찜통으로 만두를 옮기고 나는 또 밀가루를 뿌리고. 이번 설에도 만두는 건너뛰겠지만 마음만으로 벌써 백 개는 빚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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