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의 화해] 자존감 찾고 당당해지고 싶은 엄마

아이가 원하는 건 ‘고학력 엄마’가 아니라 ‘따뜻한 엄마’다.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아이는 엄마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일러스트 김경진 기자

대학 졸업장이 이렇게 중요한 건지 몰랐어요. 엄마가 되기 전에는요.

저는 상업고등학교 출신입니다. 공부를 별로 잘하지도 못했고, 사회에 빨리 나와 돈을 벌고 싶었어요. 졸업하고 바로 대기업에 취직했어요. 성적은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운이 좋았죠. 20대 때는 그저 행복했어요. 젊다는 것만으로 자신감이 넘쳤고요.

결혼한 뒤로 모든 게 달라졌어요. 회사를 그만 두고 딸아이를 키우면서 자존감이 떨어졌어요. 아이 친구 엄마들 중엔 대학을 안 나온 사람이 거의 없더라고요. 대학을 못 나왔다는 사실을 꽁꽁 숨겨야 했어요. 부끄러워서 털어놓을 수 없었어요. 엄마들이나 동네 주민들을 만나면 늘 숨이 막혔어요. 대학 얘기가 나오지 않을지, 제가 무식한 게 탄로나지 않을지 걱정돼서요. 대인기피증까지 생겼어요. 사람들이 저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나가는 것도 싫었어요.

아이가 어릴 땐 거짓말을 했어요. 엄마는 무슨 대학을 나왔는지, 공부를 잘했는지 아이가 몇 번 묻더군요. 대학을 나왔다고 얘기했어요. 어쩔 수 없었어요. 어린 시절 저도 많이 배우지 못한 부모님이 부끄러웠거든요. 더 이상 아이를 속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 어느 날 용기를 내서 고백했어요. 아이가 제 마음을 이해해 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하지만 아이가 저를 무시하고 대들기 시작했어요. “엄마는 대학도 안 나왔는데 그걸 어떻게 안다고 그래!” “엄마도 대학 안 갔으면서 왜 자꾸 나한테는 공부만 하라고 해?” 아이의 말들이 제 마음을 갈갈이 찢어 놓았어요.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서 말과 행동이 점점 거칠어지네요. 어릴 땐 제 말을 정말 잘 듣는 아이였는데…

저는 하루 3,4시간만 근무하는 직장에 다닙니다.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시간을 이용해서요.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가 거의 항상 집에 있어서인지 아이는 저를 매일 놀기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엄마는 집안일만 하면 되는데 얼마나 편할까? 나도 빨리 엄마가 되고 싶어.” 아이가 언젠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이 앞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열심히 바쁘게 사는 엄마로 보이려고 애썼는데도 별로 소용이 없네요.

아이에게 괜히 사실을 말했나 후회스럽고 힘들어요. 그냥 대학 나온 엄마인 척 할 걸…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저 자신이 한심하고 이런 제 삶에 지쳐 갑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아이나 남편과 부딪히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아이에게 자꾸 버럭 화를 내고 남편을 무시하고요.

제가 그렇게도 싫어했던 저의 엄마의 모습을 어느새 닮아가고 있네요. 엄마는 아빠가 자신을 창피해하고 무시한다고 생각했어요. 아빠의 외도 문제도 있었어요. 부모님은 자주 심하게 싸우셨어요. 엄마가 자살 시도를 한 적도 있어요. 엄마가 건물 3층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을 제가 직접 봤어요. 자신감 없고 아이를 함부로 대하고 남편과 툭하면 싸우고 무식한 엄마… 엄마랑 저랑 판박이네요. 너무나 싫었던 엄마의 모습이 제게 대물림 되고, 아이까지 물려받을까 정말로 두렵습니다.

제일 큰 걱정은 아이 교육이에요. 대학 못 나오고 똑똑하지도 못한 저 때문에 아이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게 아닐까, 아이가 피해를 보는 게 아닐까요? 나이가 들어서인지 요즘 들어 기억력이 나빠지고 자존감도 떨어지다 보니 아이를 잘 교육시킬 수 있을지 걱정이 더 커집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육아 서적과 육아 방송을 열심히 챙겨 봤어요. 대학은 못 나왔더라도 육아를 열심히 공부하면 아이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지적인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덕분에 육아 이론은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데 실제로 적용하기는 어렵네요. 어떻게 하면 제가 당당하고 똑똑한 엄마, 아이가 원하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요?

(정지숙씨 가명, 39세, 워킹맘)

“어린 시절 지숙씨는 엄마의 어떤 점이 제일 싫었나요? 엄마가 어떤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나요? 마음 깊은 곳에서 그 답부터 찾아 보세요. 그리고 아이가 지숙씨에게 기대하는 게 무엇일지도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고학력자 엄마, 학구파 엄마, 영어를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하는 엄마, 어려운 과목을 척척 잘 가르쳐주는 엄마… 지숙씨는 그런 엄마를 원했을까요? 지숙씨의 아이는 어떨까요?

한국 사람들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상대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 인색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대상이자 연약한 존재인 내 아이가 표출하는 불편한 감정조차 잘 받아주지 못해요. 감정을 드러내고 수용하는 방법을 가족관계와 일상생활 안에서 편하게 배우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지숙씨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네요. 부모님이 감정을 안전하게 수긍해준 적이 거의 없었을 겁니다. 더구나 지숙씨 부모님은 어린 아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강도와 수위의 분노와 슬픔을 지숙씨 앞에서 지속적으로 표현해 깊은 상처를 줬습니다. 아이들을 두고 자살하려는 엄마 곁에서 어린 지숙씨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지숙씨는 부모님이 싸우려는 낌새를 보이기만 해도 엄청난 두려움에 떨었을 겁니다. 가슴 속 한 구석에 있는 엄마를 좋아하는 마음을 드러내기도 어려웠을 테지요.

감정 표현과 수용에 인색한 우리. 사랑하는 내 아이가 표출하는 불편한 감정도 잘 받아주지 못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런 지숙씨는 아이의 부정적 감정을 다루는 법을 잘 모르고 있어요. 그래서 아이가 대들고 엄마를 무시하는 행동을 하는 게 그렇게 괴로운 거예요. 지숙씨의 아픔을 이해하지만, 그 아픔을 언제까지나 껴안고 있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지숙씨를 괴롭히는 것은 열등감입니다. 키가 작아서, 눈이 작아서, 뚱뚱해서, 돈이 없어서… 열등감은 누구나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지숙씨가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런 엄마가 키우는 아이의 삶도 순탄하지 않을 겁니다. 지숙씨는 남편과도 감정 소통이 쉽지 않을 테지요. 두 분의 관계가 매끄럽지 못하면 지숙씨가 어릴 때 겪은 좌절과 슬픔을 아이에게 물려주게 될 겁니다. 있어선 안 될 일이지요.

지숙씨와 아이에게 필요한 건 대학 교육이나 학위가 아니에요. 감정을 자연스럽게 다루는 경험을 하고 반복해서 연습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건 어느 대학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아요. 대학 졸업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지숙씨가 ‘대학을 못 나와서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고 내 삶이 이렇게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방어기제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대학이라는 쉬운 핑계를 대고 불안을 달래려는 심리예요. 대학을 나왔다 해도 지숙씨의 지금 모습은 아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특히 아이에게 엄마의 학력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어요. 아이는 그간 ‘엄마가 대학을 안 나와서 싫다’는 말보다 ‘엄마를 사랑한다’는 말을 훨씬 더 많이 했을 겁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괴로울까요? 대학에 가지 못했다는 것이 지숙씨의 해결되지 못한 갈등 덩어리이자 건드려지면 아픈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의 상징이기 때문이지요.

지숙씨는 자기 자신을 효능감(문제를 자기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믿음)이 떨어지는 엄마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이가 엄마에게 자꾸 빈정대고 대드는 것 때문에 자신감을 잃었어요. 그래서 아이를 잘 키우지 못하고 있다고 불안해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이를 시키는 것을 고분고분하게 따르는 순종적인 아이로 키우는 엄마가 꼭 효능감 있는 엄마는 아니랍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겪는 자연스러운 진통들을 엄마 탓으로 돌리지 마세요.

모든 사람에게는 만지면 뜨겁고 손 대면 고통스러운 ‘핵심 갈등’이 있습니다. 대부분 부모와의 관계에서 생겨난 것이지요. 사람들은 타인의 핵심 갈등을 잘 발견하지 못해요. 발견한다 해도 모른 척 하고 넘어가지요. 유독 자녀들은 부모의 핵심 갈등을 잘 찾아내고 또 자주 건드립니다. 아이가 지숙씨의 핵심 갈등을 찌르고 상처를 주는 것은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엄마를 극도로 어려워하고 두려워하기만 하는 아이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아이가 부정적인 마음을 엄마에게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건 지숙씨가 아이를 잘 키웠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어요. 자신감을 가지세요. 지금처럼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 아이에게 아픔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만으로 지숙씨는 괜찮은 사람이고 좋은 엄마입니다. 위로하려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에요.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 물질적 조건들을 제거한 나, 꾸미지 않은 진짜 나, 발가벗고 선 나의 모습을 직면하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그리고 감정을 표현하고 수긍하는 법을 구체적으로 배워 보세요. 물론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어렵고 서투를 테고 시간도 많이 걸릴 테지만, 두려워하지 마세요. 자기만의 방법을 찬찬히 찾아 가면 됩니다. 혼자 하기 어려우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도 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서 조금씩 바꿔 나가는 게 중요해요.

아이나 남편이 표현하는 감정을 수긍하는 연습부터 해보세요. 그 감정이 옳든 그르든, 납득이 되든 안 되든 맞서지 않고 수긍하는 거예요. ‘엄마는 대학을 안 나와서 몰라. 그런 엄마가 싫어!’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그렇구나. 우리 딸이 그렇게 생각하는구나’라고 일단 말해 보세요. 아이는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는 존재라는 점을 받아들여 보세요.

지숙씨가 느끼는 부정적 감정을 있는 아이에게 그대로 드러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특정 상황에 닥쳐서 제일 먼저 직관적으로 느끼는 감정을 1차 감정이라고 합니다. 1차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하세요. ‘섭섭하고 화가 난다’ ‘이해가 안 된다’고 1차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신 ‘네가, 당신이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라고 버럭 화부터 내는 사람들이 많아요. 엄마가 그런 식으로 거칠게 분노를 표출하면 아이는 엄마의 교양 없어 보이고 공격적인 모습에 더 크게 실망한답니다.

지숙씨는 아이에게 이 우주에서 하나뿐인 엄마입니다. 어떤 학벌을 가진 엄마인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직업, 재산, 외모, 옷차림 같은 조건들도 마찬가지예요. 지숙씨가 아이를 끝까지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키워낼 단 하나의 엄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아무리 툴툴거려도, 엄마의 가장 아픈 곳을 콕콕 찔러도 아이가 엄마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세요.

아이가 원하는 건 대학이나 대학원 졸업장을 딴 고학력자 엄마가 아닙니다. 감정을 거칠게 드러내기보다 감정을 잘 다스리는 편안한 엄마, 아이를 따뜻하게 품어주고 위로하는 엄마, 아이를 훈계를 할 때도 교양과 품위를 지키는 엄마,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엄마예요. 지숙씨는 그런 엄마를 갖지 못했지만, 아이에게는 그런 엄마가 돼주세요.

지숙씨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아이가 꼭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신 있게 가르치세요. 대학에서 배운 것들이 아니라도 전혀 상관 없어요. 대학 교육과 가정 교육은 엄연히 다릅니다. 가정교육은 다른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알려주는 거예요. 대학을 나오지 않은 엄마도 얼마든지 가르쳐 줄 수 있어요. 대학 졸업장이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세요.

그리고 대학 나왔다고 거짓말해서 미안하다고 아이에게 꼭 사과하세요. 자녀들과 진솔하게 소통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엄마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네가 자신감을 갖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잘못된 판단이었어. 진실하고 솔직한 게 최선이라는 것을 엄마가 너무 늦게 알았어. 우리 딸, 이렇게 예쁘게 잘 자라줘서 고마워. 네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어떤 사람이든 엄마는 언제나 너를 사랑해. 너도 엄마한테 그렇게 해 줄 거지? 엄마는 대학을 안 나왔지만 너를 최선을 다해 키울 거야. 모르는 것은 열심히 공부하고 고민해서 너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엄마가 될 거야. 엄마가 약속할게.’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아이의 마음이 눈 녹듯 녹을 거예요.”

정리=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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