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조상은 수백만 년 전 동아프리카 밀림 나무 위에서만 생활하였다. 나무에 달린 열매로 충분히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오래지 않아 지구에 빙하기가 덮쳤다. 그들은 이제 나무에서 내려와 먹을 것을 찾아 다녔다. 이 당시 인류의 조상들은 키가 1m, 몸무게는 40kg 정도로 당시 맹수의 점심거리 정도였다. 이들은 자신들을 공격하는 짐승들이 공격하는지 살피기 위해 허리를 펴기 시작하여 두 발로 걷는 유일한 동물이 되었다. 이들은 이제 땅 속에 있는 근채류와 작은 짐승들을 먹을 거리로 편입시켰다. 인간은 사냥ㆍ채집 경제체제로 진입하면서 중요한 두 가지 생존 전략이 있었다.

첫 번째 전략은 ‘관찰’이다. 자신이 먹을 근채류와 곤충이 있는 곳을 발견하기 위해, 지형을 자세히 살피는 능력이다. 관찰의 상태를 몰입(沒入)이라고 부른다. 몰입을 통해 다른 인간들이 눈이 있어도 발견할 수 없는 새로운 먹거리를 감지하였다. 두 번째 전략은 ‘우정’이다. 내가 온전히 관찰하고 몰입할 때, 나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줄 장치다. 이 우정을 행사하는 사람을 친구라고 부른다. 내가 몰입을 통해 새로운 식용뿌리를 캐거나 작은 동물을 사냥할 때, 나는 가장 취약하다. 배고픈 사자나 표범이 그런 나를 먹을 거리로 낚아챌 수 있는 위험천만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내 뒤를 든든히 지켜주는 자, 그가 ‘친구’다. 내가 볼 수 없는 곳을 보고 나에게 충고하고 나를 지켜주는 자다. 내가 이 친구와의 관계를 평상시에 돈독하게 유지하지 않는다면, 나는 외톨이가 되어 거친 들판에서 얼마 생존하지 못할 것이다.

로마시대 정치가이며 철학자인 키케로(기원전 106~43년)는 기원전 45년, 환갑을 넘어 인생을 돌아보며 <우정에 관하여>라는 에세이를 썼습니다. 그는 간곡히 말합니다. “진정한 친구를 가진 사람은 적습니다. 진정한 친구가 될 만한 가치 있는 사람도 적습니다. 진정한 우정은 눈부십니다. 눈부신 모든 것들은 드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루 종일 돈만 생각합니다. 친구를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생을 잘못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 없이도 잘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정이 없다면 우리는 잘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런 삶은 허무합니다.” 나를 자신처럼 생각해 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친구이다.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가 친구와 더불어 둘이 된다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나는 나의 희로애락을 공유하는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확장된 인간이 될 것이다.

‘친구’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프렌드(friend)’의 원래 의미는 ‘사랑하는 존재’다. 인간은 원래 자신밖에 사랑할 수 없는 존재이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바로 ‘친구’다. ‘친구’에 해당하는 라틴어 단어 ‘아미쿠스(amicus)’도 ‘사랑한다’라는 동사 ‘아마레(amare)’에서 유래했다. 우리는 좋은 시절엔 친구였지만, 어려운 시절엔 모르는 사람이나 적이 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우리는 자신에게 불리한 정황이 드러날까 봐, 두 눈을 크게 뜨고 모른다고 말한다. 그에게 친구는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 사용된 도구에 불과하다. 그러다, 며칠 전 키케로가 말하는 진정한 우정을 보았다. 그들의 우정은 너무 찬란한 소중한 보물과 같은 것이었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퇴임하기 직전 의미가 있고 아름다운 한 가지 일을 아무도 모르게 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부통령 조 바이든에게 미국정부가 한 개인에게 부여할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인 ‘대통령 자유 메달(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수여했다. 오바마는 바이든을 자신의 “형님” 혹은 “미국 역사를 지키는 사자”라고 불렀고, 바이든은 이 상을 받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오바마는 지난 8년 동안 대통령으로 지내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오바마케어라고 불리는 ‘환자보호 및 부담적정보험법’, 쿠바를 방문하여 국교를 맺은 사건, 미국 역사상 첫 번째 흑인 대통령 등이다. 역사만이 이런 외적인 오바마 유산을 평가할 것이다. 오바마가 백악관에 있는 동안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밤하늘의 별처럼 빛날 업적이다. 그것은 바로 오바마와 바이든의 우정이다. 이들의 우정은 그 옛날 고대 이스라엘의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처럼 서로를 위대하게 만든 가치다. 나는 지난 8년 동안 오바마와 바이든이 악수하던 관계에서, 서로의 등을 두드려 주는 관계로 진화하는 모습을 관찰하였다. 그러더니 이들의 우정이 이들의 부인들이 부러워할 ‘브로맨스(bromance)’, 즉 친구 간의 우정이지만 사랑으로 승화한 단계로 진입하였다. 특히 바이든의 아들 보가 죽었을 때, 오바마의 장례식 추도사는 그들의 우정이 얼마나 심오한지 보여 주었다. “보가 세상을 떠나 이 세상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습니다. 저는 당신들이 져야 할 짐을 상상할 뿐입니다. 당신이 보를 위해 있었던 것처럼, 나와 미셸(오바마 부인)도 당신을 위해 거기에 있을 것 입니다. 우리는 바이든의 명예가족이 되었고 바이든 가족의 규칙을 따르겠습니다. 우리는 당신과 항상 있을 것입니다. 내 말이 바이든 말입니다.”

바이든이 기자들로부터 오바마와의 우정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를 사랑합니다. 우정은 상호 간에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뒤를 항상 봐줍니다. 나는 그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그를 위해 할 것입니다.” 바이든이 메달을 받고 눈물을 머금은 채 말합니다. “유대인 탈무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은 바로 마음으로 들어갑니다.”

나는 그런 친구를 가졌나? 나는 그런 친구를 가질 만한 인간인가?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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