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의미로는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 유통, 소비로 이루어진 인간 활동과 사회 관계를 가리킨다. 영어 economy에 대한 번역어로 19세기 중반에 채용된 것인데, 좀 더 파고들어가서 말한다면, 이 말은 유럽의 고전파 경제학을 지칭하던 political economy에 대한 한자 번역어를 만드는 과정과 맞물려 있었다.

economy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 말로 oikonomia인데 이것은 oikos(집, 가정)과 nomos(법, 규범)의 합성어다. 16세기 후반까지 영어 economist는 가정 관리인을 뜻했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economy는 자원을 적절하게 절약해서 쓴다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economy가 가정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공동체에도 사용되면서 생겨난 말이 political economy다. 이 말을 제목으로 달고 있는 17세기 초의 책들은 일단 군주의 통치에 관해 논하면서, 부의 원천, 상업 활동, 식민지 문제들도 다루고 있었다. 18세기가 되면서 political economy는 고전파 경제학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그 후 정치학과 구분되거나 정치학적 논의를 배제하는 현대 경제학이 성립하는 과정에서 political이란 말이 떨어져 나갔다.

한자 문화권에서 경제(經濟)라는 말의 전거로는 중국 고대 “포박자”의 ‘경세제유(經世濟裕)’, “문중자”의 ‘경제지도(經濟之道)’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말들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 백성들을 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는데, 송 나라 때에 이르러서 경세제민(經世濟民)이라는 말이 나타났다.

18세기 초반 일본 다자이 슌다이(太宰春台)의 저서는 “경제록”(1729)이란 제목을 달고 있다. 19세기 일본에서는 economy를 제산학(制産學), 가정학(家政學), 국가의 활계(活計) 등으로 번역하기도 했는데, 후쿠자와 유키치의 계몽적 저작들에 의해서 최종적으로 경제 및 경제학이라는 번역어가 정착된 것이다.

최근 국내외 예측에 의하면,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2%를 겨우 넘길 것이라고 한다. 한편, 특검은 삼성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경제보다는 정의를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삼성이 최순실에게 몰아준 돈은 원래 박근혜에게 갈 뇌물이라는 것이 특검의 판단이다. 반면에, 삼성 측의 반박은 이러하다: “삼성은 뇌물을 공여한 적이 없다. 승마 지원은 강요 및 협박 때문인 것이고, ‘대가성이 없다’는 청문회에서의 진술은 거짓이 아니다.”

특검이 경제에의 영향을 고려하면서도 정의가 더 중요하다고 내세운 것은 한국 역사상 획기적인 일이다. 건국 이래 거의 70여년 간 한국의 기업, 특히 재벌들은 음양으로 각종 특혜와 특권을 누리고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등을 저지르면서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때마다 지배층 및 사법계가 내세운 논리는 ‘경제에의 영향’이다. 비록 중한 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경제에 나쁜 영향을 줄 우려가 있으므로 기업인과 재벌 총수를 제대로 처벌할 수 없다는 억지 논리였다. 이런 점에서 나는 특검의 획기적 영장 청구를 매우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우선, 삼성 및 이재용의 잘못은 뇌물죄를 범한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에서 국민연금이 입은 손실은 수천억원에 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손실은 결국 국민의 손실이다. 결국, 국민들이 주머니에서 나온 돈을 삼성이 가로챈 것이다. 무엇보다 이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경제와 정의가 대립된다는 거짓 논리에 여전히 매몰되어 있는 것도 문제다.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경제’의 본뜻을 제대로 실감하도록 하는 것이다. 어원적 역사에서 살펴보았듯이, 경제라는 것은 투입한 것 이상으로 효율적으로, 또는 최소한 투입한 것만큼 산출되도록 디자인된 인간 활동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것을 ‘일한 만큼 대접받는 사회’라고 표현해 왔다. 정의를 내세우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경제를 망가뜨리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정의를 끝까지 관철시킴으로써만 경제는 효율적, 효과적으로 굴러가는 것이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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