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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의 시 한 송이] 전망

입력
2017.01.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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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저는 짙은 회색의 블라인드가 내려진 곳에 있었어요. 창이 있는 곳이라면 무조건 블라인드부터 올리는데요. 강의를 위해 처음 도착한 곳이었고 처음 보는 분들이 이미 앉아있는 상태여서 그냥 수업을 시작했어요. 두 시간쯤 지나 쉬는 시간에 어느 분이 벽에 있는 버튼을 누르자 세 쪽의 블라인드가 일제히 올라갔어요. 하늘을 향해 오르고 있는 언덕이 있었고 허공 가득 눈이 내리고 있었어요. 그 풍경에 모두 와~ 하고 한동안 보았지요. 보이는 너머가 가로막혀 있다는 현실을 잊게 만드는 것, 전망이란 그런 것이지요.

자정은 하루의 끝이지요. 하루가 완성되는 시간인 동시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이지요. 모퉁이는 한 풍경의 끝인 동시에 한 풍경의 시작을 품고 있지요. 좀처럼 보고 싶은 풍경이 나오지 않을 때, 이제 곧 모퉁이를 돌 거야, 그런 주문을 외우곤 해요. 모퉁이를 돌아 처음 만난 것들은 모두 돌아가고 있는 뒷모습이기도 하지요. 인간이라는 시계도 모두 돌아가고 있는 중이기도 하지요. 내가 보고 있는 머리를 돌리는 너와 내가 본 그의 얼굴과 그의 손들은 자정과 자정 사이의 원무(圓舞)이기도 할 거예요.

보이지 않는 것들은 보이지 않게 존재하지요. 벽이 지워질 때 머지않아 하늘이 무너질 것이라는 예감. 전망은 그런 것이지요. 하늘이 무너진 자리에서 새 하늘이 열린다는 것. 아주 작은 것은 아주 큰 것을 품고 있지요. 간결한 이미지에 깊은 세계를 담고 있는 이 시처럼, 지금은, 마지막 별이 떠 있어요. 자정의 우리는 처음 별처럼 내일을 생각하지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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