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중섭은 아마도 아빠로서의 책임도, 그림을 그리겠다는 자신의 꿈도, 그 어느 쪽도 포기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가난 때문에 가족과 함께 살 수 없었던 중섭은 일본에 가 있던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살겠다는 목표로 필사적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의 그림에 아이들 그림이 많은 것은 모두 가족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그린 작품에는 유독 게가 집게발로 아이들의 고추를 집으려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여기에는 많은 해석이 있지만 내 처지에서 보면 이 그림은 그가 ‘거세 불안’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게의 집게발이 아이의 고추를 집는 모습은 그가 아버지로서의 자신의 남근성을 의심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어린 아들에게 자전거 한 대 사줄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이 아버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늘 괴로워했다. 중섭은 아버지 역할을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늘 그런 것이 두렵다. 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사업체가 부도가 나고 내가 겪어야만 했던 고초를 내 아이들도 겪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학위를 내려 놓고 생업에 뛰어 든 이유다.

적당히 아이를 핑계 삼아 학위를 내려놓기로 마음 먹은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다. 완전히 내려 놓아지지는 않는다. 마음 먹은 대로 포기가 되지 않는다. 미련이 계속 남는다. 대학원에 발길을 끊은 지 벌써 수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꿈에 나온다. 학위를 취득했다는 친구의 소식을 들을 때면 “축하한다”며 건네는 인사 위에 내 마음은 이상할 정도로 강렬하게 요동친다. 아직은 이른 나이가 아닐까? 내게도 아직 기회가 있지 않을까? 나는 안일하게 포기해버린 것은 아닐까?

얼마 전에는 좋은 유학 기회가 생겨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두 분은 내게 “두 아이를 보고 어른처럼 행동하라”고 하셨다. 이제는 중학생 때처럼 내 방으로 달려 들어가 문을 ‘쾅’ 소리 나게 닫을 수도 없는 일이다. 아무 것도 달라질 것이 없는데 애먼 문에만 분풀이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집에 돌아와 나탈리 크납이 쓴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이라는 책을 읽었다. 거기에 “벚꽃은 버찌로 변신한 다음에야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수정되기 전 밤 서리를 맞아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하여도, 벚꽃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며, 그의 일을 다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벚꽃은 봄에 핀다. ‘봄’은 열매를 맺는 시기가 아니다. 열매를 맺기 전, 꽃을 피우는 시기다. 열매도, 열매를 맺게 될지에 대한 확신도 아직 없지만, 열매를 꿈꾸고, 열매를 기다리고, 열매에 대한 희망이 있는, 그런 계절이 봄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삼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봄(春)에 대해서 생각하는(思) 시기’, 사춘기가 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발을 허공에 디딘다. 공기가 나를 받쳐준다.” 시인 힐데 도민의 말은 우리 발 밑에는 공기가 있다는 정도의 확실성밖에는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매일 매일이 불확실한 날들이다. 어른이 되었다지만,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나는 아직 모른다. 나는 아직도, 내 미래를 알지 못하고, 나중에 나 자신 혹은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낼 수 있을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도 벚나무라면 버찌보다 벚꽃이 더 아름답다. 과정이 결과보다 더 아름답고, 모든 과정이 끝난 이후보다 때때로는 과도기가 더 아름답다.

여드름에 짜증이 나던 때는 행복했던가? 좋아하던 여자 아이에게 고백을 못해 끙끙대며 괴로워했던 밤, 학교에 갇혀 주체할 수 없었던 에너지를 억누르던 나날이 행복했다면 볼륨을 있는 대로 높여 데스 메탈을 귀가 터지도록 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벚꽃일 때는 그 때가 벚꽃인지 몰랐다. 버찌가 되지 않더라도 벚꽃만으로도 충분하다. 새해에는 남자와 아빠 사이, 현실과 꿈 사이, 나와 가족 사이의 이 어정쩡함을, 이 불편함을, 이 두려움을 봄의 희망으로 긍정하고 싶다. 그것뿐이다.

권영민 철학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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