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단일한 통치 체제 내지 지배 권력 아래 사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정치적 공동체로서 비교적 명확한 영토를 갖고 있고 거의 대개 주권을 행사한다. 연방국가에 속하는 개별 국가는 주권에 제약이 있는 경우가 있다. 주권을 갖고 있는 국가를 특별히 주권 국가라고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줄곧 문제가 되는 것이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이다. 사람들은 박근혜와 최순실이 국가기밀을 주고받은 데 분노하며 ‘국가 시스템’이 무너졌다고 개탄한다. 특히 최순실이 국가 예산과 인사를 주무르면서 국가의 공적 자원과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재벌로부터 엄청난 돈을 거둬들인 것과 딸을 대학에 부정입학 시킨 것에 대해서도 “이게 국가인가”라며 탄식하고 있다.

국가는 영어로 state, 독어로 Staat, 불어로 État인데, 이 셋 모두 ‘상태’를 뜻하는 라틴어 status에서 나왔다. 이 라틴어가 그대로 살아남은 형태인 영어 status는 사람들의 상태나 조건, 즉 신분, 등급, 서열 등을 뜻한다. 쿠데타(coup d'état)는 말 그대로 ‘국가에 가하는 타격’을 뜻한다.

키케로 시절 고대 로마에서는 ‘status rei publicae(국가의 상태)’라는 말이 쓰였는데 이것은 국가 공동체의 구조 내지 체제의 특정 유형을 뜻하는 말이었다. 굳이 오늘날의 영어로 번역하자면 이 말은 constitution이나 regime에 해당한다. 이 말이 그저 status로 줄어들면서 근대적 의미의 법적, 정치적 국가를 의미하게 된 것이다. 이 말을 근대적 의미에서 최초로 사용한 것은 마키아벨리로 알려져 있다.

한자 국(國)의 갑골문 자형을 보면 혹(或) 자의 형태를 하고 있었음을 잘 알 수 있다. 애당초 或은 형태상 성곽(口)을 무기(戈)로 지킨다는 것을 뜻했는데, 나중에 이 뜻이 소실되자, 다시 성곽(口)을 추가해서 국(國)이란 글자를 만들게 된 것이다.

19세기 중후반 일본에서 서양 말을 한자어로 번역할 때, 가장 골치 아팠던 것들 중의 하나가 society(사회)와 government(정부)와 state(국가)를 서로 개념적으로 구분해내고 그럼으로써 합당한 번역어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국가’는 ‘정부’와 ‘인민’으로 구성된다며 이것들을 서로 구분해내고자 했다.

1880년대 일본의 철학 어휘 사전을 보면 state가 이미 ‘국가’로 번역되어 있다. 그 이전에는 그저 ‘국’이라는 번역어도 있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1889년 일본에서 메이지헌법이 만들어지면서 위로부터의 근대적 국민국가 형성이 근대 일본 인민에게 강요되었던일본의 독특한 사회적, 정치적 상황이 ‘국가’란 번역어에 반영됐다고 추정할 수 있다.

프랑스대혁명과 같은, 아래로부터의 근대적 정치혁명을 결여한 일본에서는, 그리고 또 중국과 한반도에서는, 위로부터의 정치적 근대화 과정에 ‘국가=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국부 이승만’이라든가 ‘어버이수령 김일성’과 같은 말들은 바로 그 봉건적 ‘국가=가족’ 이데올로기가 극명하게 악용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근대 국가는 특별히 ‘nation state’라고 불린다. nation은 국민을 뜻하기도 하고 민족을 뜻하기도 해서 ‘nation state’는 ‘국민 국가’ 혹은 ‘민족 국가’로 번역되어 왔다. 여러 민족, 혹은 에스닉 집단으로 구성된 국가가 지구에는 더 많고 이들 국가 역시 ‘국민’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국민 국가’란 번역어가 상대적으로 더 타당하다. nation이 갖는 복합적 의미를 고려해서 학계에서는 그저 ‘네이션 스테이트’라고 쓰는 경우도 많다.

국가 및 국민과 관련해서 번역이 잘못되어 온 대표적 사례가 나치즘과 관련해서다. 엄밀히 말해서, 나치즘은 ‘국가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민 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이라고 번역해야 맞다. ‘국가 사회주의(state socialism)’는 제1차 대전 당시 독일의 ‘국가 자본주의’ 적 총력전 체제를 가리켰다. ‘국가 사회주의’는 1990년대 초에 몰락한 역사적 사회주의 체제를 가리키는 말이 되기도 했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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