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게티이미지뱅크.

오피스텔에서 나와 1층의 커피집에서 라떼 한 잔을 산 다음 후후 불어 마시며 걷다 보면 바로 회사였다. 매일매일 라떼를 샀지만 그건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질을 하는 것처럼 습관이 된 일이라, 꼭 커피를 마시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키가 크고 잘 웃던 남자 사장은 어느 날부터 쿠키 한 개씩을 서비스로 주었다. “쿠키가 부서졌어요. 어차피 못 파는 건데, 드세요.” 반으로 뚝 쪼개진 쿠키를 아침마다 받아 들고 출근을 하면 직원들이 그랬다. “실장님한테 딴 맘 품은 거 아녜요? 어떻게 매일 쿠키가 부서져요?” 가끔은 부서지지 않은 쿠키를 건네주는 날도 있었다. “그 사장 잘생겼어요?” 생각해 보니 잘생긴 것도 같았다. 아침마다 지갑을 여는 일이 불편해 10% 할인이 되는 열 잔짜리 선불쿠폰을 샀다. 한 잔 마실 때마다 도장을 찍어주는 거였는데, 어느 날 사장은 나에게 라떼를 건네면서도 도장을 찍지 않았다. 말가니 쳐다보는 나에게 “그냥요, 자주 오시니까요” 그렇게 말했다. 직원들은 꺅꺅 소리를 질렀다. “실장님 이제 진짜 시집 가려나 봐!” 쓸데없는 소리 말라면서도 점심시간이면 직원들을 데리고 가 호기롭게 커피를 사기도 했다. 그리고 20% 할인이 되는 서른 잔짜리 선불쿠폰을 샀다. 사흘인가 지났을 때 커피집은 문을 닫았다. 폐업 공지도 없었고 당연히 쿠폰은 환불 받지 못했다. 점심을 먹고 들어가는 길에 ‘임대문의’라고 종이가 나붙은 커피집을 지날 때마다 직원들이 키득거려서 나는 잔뜩 약이 오른 얼굴로 신경질을 내곤 했다. 석 잔밖에 마시지 못했던 그 선불쿠폰. 쿠키 값과 도장을 안 찍었던 한 잔 값을 제한다 해도 최소 스물다섯 잔 값은 남았는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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