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에서 시민단체가 위안부 수요집회 25주년 기자회견을 마친 뒤 일본 아베 총리가 소녀상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올해로 집권 5년차에 들어섰다. 아베 정권은 1980년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 때와 여러모로 닮은 꼴이다. 정통보수를 자처하며 미일동맹 강화에 뚜렷한 업적을 쌓고 장기집권한다는 점이 그렇다. 총리재임기간을 보면 5년간 집권한 나카소네를 아베가 이미 지난 연말에 제쳤고, 3월 자민당대회에서 연임제한을 고치면 2021년 가을까지 집권이 가능하다.

1982년 11월 취임한 나카소네는 곧바로 이듬해 1월 미국으로 건너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미일 무역마찰이 표면화된 상황에서 두 사람은 서로 퍼스트네임을 부르며 ‘론_야스 관계’라는 밀월을 구축했다. 제4파벌 출신이던 나카소네가 최대 파벌을 이끈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의 후원을 받아 통치했다면, 아베는 당내 라이벌이 전무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쌓고 있다.

보수우익의 숙원을 짊어진 아베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가장 먼저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나카소네-레이건’처럼 ‘아베-트럼프’의 궁합이 맞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미일관계의 상수가 미중관계란 점에 우익들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중관계가 트럼프-시진핑 간 거래로 관계개선의 급반전이 일어나는 경우나 트럼프-푸틴 간 새로운 미ㆍ러 협조체제가 굳어질 가능성 모두 일본의 고립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특히 우익들은 트럼프가 중국과 일본 양쪽을 경쟁시켜 저울질하는 최악의 경우도 불안해하고 있다. 미일동맹은 유지되지만 주일미군 분담금 증액요구 같은 압박으로 이어져 트럼프로선 나쁘지 않은 구도다.

아베 총리는 국내상황도 변화를 대비해야 한다. 유일하게 아베의 인기를 위협하는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ㆍ여) 도쿄지사가 여름 도의회선거에서 별도의 정당형태로 독자깃발을 든다. 자민당과 대립하며 세를 불리는 그가 연립여당인 공명당마저 끌어들이는 게 문제다. 공명당은 카지노허용법을 반대하면서 자민당과 틈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역시 아베 정권의 운명은 외교능력에서 좌우될 조짐이다. 미일동맹뿐 아니라 한일관계 재설정의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동북아전략의 전제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또다른 위안부소녀상이 등장해 보복조치에 몰두하고 있지만, 한국의 차기 대선결과에 따라 한일 군사정보협정(GSOMIA)이나 위안부 합의 파기 주장이 현실화할 수 있다며 난감해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2년 대선 때 일본대사관 앞 집회에서 “전범기업의 한국내 입찰을 제한하겠다”고 말한 사례를 주목하고 있다. 한국 대법원에 전범기업 강제징용건이 계류중이란 점에서 만약‘좌파정권’이 들어서면 징용피해가 제2의 위안부 문제로 부상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박근혜 정부와 쌓은 아베의 성과들이 휴지조각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자업자득이란 지적도 피해갈 수 없다. 일본 국회에서 위안부피해자에 사죄편지를 보낼 의향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굳이 “털끝만큼도 생각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하면, 진주만 공습을 추모한다며 아베와 미국을 함께 다녀온 다음날 방위장관은 2차 대전 A급전범의 위패가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했다. 진정성 없는 모순적 행동들을 실시간 한국민에게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전전(戰前)세력이 단절되지 않고 현재의 일본정치 주류집단에 역사관이 승계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런 아베 진영을 새로 상대할 한국의 정권 역시 시련이 불가피하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합의가 날림공사였다면, 반일여론을 등에 업을 차기 정권이야말로 그보다 더한 외교역량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집권 후를 감당하려면 험난한 한일관계를 다룰 실력이 있는지 대선공약 과정부터 혹독하게 검증해야 한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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