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은 복지의 개념이 다르다. 과세의 공평성이라는 전제가 붙긴 하지만, 유럽에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평등한 복지를 지향하는 반면 미국은 능력에 따라 차별적 복지를 받는 것을 당연시한다. 그래서 부자들에 대한 인식이 유럽이 미국보다 우호적이다. 미국이 모럴해저드라고 비난하는 유럽식 복지에 대해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제임스 위컴은 “미국인의 자선에 대한 의지는 높이 평가하나 사회적 권리는 자선만으로 충분치 않다”며 법의 구속을 받는 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유럽 복지는 인권과 통합이라는 유럽식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비극적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공동체의 회복이 절실하다는 깨달음의 결과다. 유럽연합(EU)의 국가(國歌)로 불려지는 ‘환희의 송가’도 인류애와 화해가 메시지다. ‘당신의 마법으로 우리를 다시 합쳐 주소서/시간이 한 때 갈라놓았던 사랑을/우리는 다시 형제로 설 수 있으리/당신이 포근한 날개를 넓게 편 그곳에’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에 가사를 붙인 이 노래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그 해 크리스마스 브란덴부르크 광장에 울려 퍼졌을 때의 감동이 생생하다.

▦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0년 대선에서 ‘온정적 보수주의’를 앞세워 승리하자 중도로 좌클릭하려는 보수의 개혁이 잇따랐다. 2010년 영국 총선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당수는 “현대화한 온정적 보수주의”를 내걸어 13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도 온정적 보수주의가 원조다. 그러나 이런 보수의 개혁은 끝이 좋지 못했다. 구호와는 반대로 성장과 감세, 작은 정부를 고집하다 양극화를 더욱 고착시킨 끝에 부시 대통령은 ‘최악의 대통령’으로, 캐머런은 브렉시트로 물러나는 불명예를 당했다.

▦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비박계가 ‘개혁보수’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한 번도 ‘따뜻한 보수’를 이뤄 내지 못한 우리 정치권에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으레 그랬듯 선거를 의식한 일회성 구호에 그치지 않을까 걱정이다. 벌써부터 개혁보수의 가치에 대한 고민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영입 같은 대선 프레임에만 급급하는 듯한 인상도 든다. 2014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 공화당에서도 개혁과 보수를 합성한 ‘리퍼미콘(Reformicon)’ 바람이 불었지만 무늬만 개혁이라는 비아냥을 듣다 소멸했다. 대선용 급조 정당이라는 말이 안 나왔으면 한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