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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영화가 빚어낸 결정적 순간들

입력
2016.12.3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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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개봉한 한국영화만 333편(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이다. 이름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스크린에서 사라진 영화가 허다하고, 1,156만1,519명과 대면한 ‘부산행’ 같은 흥행작도 있었다. 아우성 치듯 스크린에서 명멸했던 여러 영상 중 2016년과 묶여 기억될 장면들이 적지 않다. 한국일보 영화기자들이 두고두고 돌아볼 만한 장면 10개를 꼽았다. 괄호 안은 개봉일.

동주(2월17일)

윤동주(강하늘)와 송몽규(박정민)가 일제 고등형사에게 취조를 받는 장면, 독립운동 혐의가 적힌 문서에 서명하라는 강요에, 늘 우유부단하던 동주는 서명을 거부하고, 몽규는 울부짖으며 사인을 한다. 평생 벗이자 라이벌이었던 두 사람의 성정과 불우한 시대의 고통을 압축해 보여준다.

4등(4월14일)

매번 대회에서 4등을 해 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는 준호(유재상)가 수영을 하다 말고 풀장 안에서 햇빛을 따라다니며 잠수하는 장면. 성적에 상관없이 그저 수영이 좋은 천진한 아이의 모습이 아름다운 영상미로 나타난다. 정지우 감독은 이 장면을 위해 조명과 치열한 싸움을 해야 했다.

곡성(5월12일)

시골 경찰 종구(곽도원)가 비 오는 어느 아침 살인사건 현장에 출동한다. 눅눅하고도 비린내 가득한 어두운 이미지가 연속되며 앞으로 다가올 끔찍한 일들을 예고한다. 악마적 세계로 들어가는 출입구 역할을 하는 장면으로 ‘헬조선’으로 전락한 한국사회의 모습을 압축해 보여준다.

아가씨(6월1일)

숙희(김태리)와 아가씨(김민희)가 집을 탈출하는 장면. 깜깜한 새벽녘에 들판을 뛰는 아가씨와 숙희의 모습이 강렬한 해방감을 전한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라고 되뇌는 아가씨의 마음에 공감하게 된다. 두 인물의 특성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부산행(7월21일)

계속 거리를 좁혀오는 좀비 무리에 맞서기 위해 테이프로 자신의 팔을 감는 상화(마동석)의 모습. 시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 자신만 살겠다고 꽁무니를 뺀 기득권자들을 뒤로하고 희생을 아끼지 않은 작은 영웅들의 활약을 상징하며 뭉클한 감동을 안긴다.

터널(8월12일)

터널에 갇힌 정수(하정우)가 아내 세현(배두나)이 출연한 라디오를 들으며 절규하는 장면. 세현은 더 이상 구조는 없을 거라며 살아서 라디오를 들을 지도 모를 남편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작별을 고한다. 사람의 생환보다 금전적 이익을 더 중시하는 배금주의 사회의 비극을 적시한다.

밀정(9월7일)

일제경찰과 독립군의 쫓고 쫓김에 더해 아군과 적군의 불분명함이 주는 긴장감을 시각적으로 명쾌하고도 통쾌하게 빚어냈다. 열차 안이라는 폐쇄된 공간을 쪼개고 조합하며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는 세공술이 한국영화의 기술적 정점을 보여준다.

고산자, 대동여지도(9월14일)

김정호(차승원)가 백두산 천지에 올라 감동하는 장면이 짧지만 강렬하다. 컴퓨터그래픽(CG)을 입힌 듯 선명한 천지에 모습에 입이 절로 벌어진다. 조선시대 김정호는 자유롭게 여러 방면으로 찾은 천지를 현대의 우리는 쉽게 다가갈 수 없어 더욱 장면이 사무친다.

죽여주는 여자(10월11일)

윤락녀로 살다 연쇄살인범으로 삶을 마감한 주인공 소영(윤여정)은 교도소에서 죽어 화장돼 '신원미상-양미숙'으로 쓰여진 채 세상과 작별한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한 인물에 대한 에필로그 같으나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닥칠 말년의 모습일지 몰라 가슴 먹먹한 쓸쓸함이 밀려온다.

자백(10월13일)

입을 꾹 다문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포공항에서 그를 우연히 만난 최승호 PD는 "간첩조작사건과 관련 있지 않느냐"고 묻고 김 전 실장은 "나는 간첩을 조작한 적이 없다"고 기계적으로 답한다. 최순실 게이트 국조특위의 한 장면을 미리 내다본 듯한 장면.

라제기 기자 강은영 기자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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