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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스노우맨인가, 샐러리맨인가

입력
2016.12.30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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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크리스마스는 종교색이 사라진 지 오래다. 최근 정부 조사에 따르면 5명 가운데 1명만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반면 76%의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하는 시간이라고 대답했다. 대부분의 영국사람은 크리스마스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크리스마스 전통음식 칠면조 요리를 먹고 선물을 교환한다. 크리스마스는 1년 중 가장 큰 명절이며 특히 아이들은 1년 동안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린다. 크리스마스는 아이와 부모 그리고 조부모, 가끔은 고조부모가 모두 함께 모이는 거의 유일한 날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는 크리스마스 당일에도 근무 하셨던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바닷가 원유 시추현장에서 근무했는데 2주 동안 연속으로 일하고 2주를 쉬는 식이었다. 아버지가 일하는 주에 크리스마스가 있으면 가족은 아버지를 많이 그리워했다. 최근 한국의 은행 광고를 봤는데, 크리스마스 때 일하고 계셨던 아버지를 그리워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나는 동국대학교 영어통번역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올해 수업에서 기말시험 일부로 학생들과 일대일 인터뷰를 가졌다. 내가 학생들에게 던진 질문 중 하나는 ‘어떤 광고를 좋아하는지, 그 광고의 내용,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러 명의 학생이 같은 광고를 꼽았다. 국민은행 광고로 학생들은 그 광고를 보고 감동을 해 울기도 했다고 이야기했다. 궁금해져 직접 찾아보았다. 그 광고를 보고 나도 거의 울뻔했다. 내용은 이렇다. 한 그룹의 회사원들이 시험을 보게 되는데, 그들은 모두 아이가 있는 아빠였다. 처음에 나오는 문제들은 ‘당신의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지갑에 아이 사진이 몇 장 들어있나요’ ‘아이에게 가장 최근에 사랑한다고 말한 게 언제인가요’ 등 모두 아이에 관한 질문이다. 회사원들은 웃으며 답한다. 그런데 갑자기 질문이 바뀌기 시작한다. 같은 질문을 그들의 아버지에 대해서 묻는다. 그들은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들은 언제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이야기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어서 아버지들의 영상 편지가 나온다. 영상편지에서 아버지들은 ‘좋은 아버지가 못되어 미안하다’ ‘너무 일만 해서 미안하다’ ‘풍족하게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너무 엄하기만 해서 미안하다’ ‘내 아들에게 나는 부족한 아버지였다’ 등이다. 아버지의 이런 말들은 듣고 회사원들은 눈물을 흘린다.

이 광고는 올해 초에 읽었던 한국의 단편소설을 떠올리게 했다. 서유미 작가의 ‘눈사람(스노우맨)’이라는 작품이다. 새해가 지난 바로 다음 한 회사원이 일하러 가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그는 승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에 나가려는데 집이 눈으로 뒤덮여 나가지 못한다. 눈 때문에 문조차 열 수가 없었다. 그는 상사에게 전화했지만 상사는 핑계라며 듣고 싶지 않아 했다. 그는 눈 속에 굴을 파서 회사까지 가기 시작한다. 그는 최선을 다해 눈을 팠다. 그러나 결국 그는 눈 속에서 동사한다. 이 이야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뚜렷하다. 한국에는 가족까지 뒷전으로 두고 죽도록 일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에 사는 거의 모든 이들이 한국이 OECD 국가 중 가장 노동시간이 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모두가 2017년을 준비하는 지금 내가 한국사람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면, 당신 스스로를 당신의 직업과 동일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당신의 삶은 일이 아니다. 삶은 관계이다. 커리어는 당신의 삶이 될 수 없다.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당신은 ‘내가 조금 더 회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야 될 텐데…’ ‘컴퓨터 앞에서 시간을 더 보냈었어야 했는데…’ 라고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배리 웰시 서울북앤컬쳐클럽 주최자ㆍ동국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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