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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의 길 위의 이야기] 아이 셋 엄마

입력
2016.12.3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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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가 아기 옷을 두 상자나 보내왔다. 원피스는 못해도 열댓 벌은 되었고 아기 내복에 신발도 열 켤레가 넘었다. 딸 둘을 키우던 S는 얼마 전 막내아들을 낳았다. 아들에게 물려줄 수 없는 여자아기 옷들로만 골라 내게 보내온 것이다. 그녀가 나에게 상자를 보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내 출산을 앞두고 그녀는 신생아 옷과 천기저귀를 보내주었다. 딸 둘을 키워낸 천기저귀는 매일매일 삶아 빨아 보들보들했다. 백일 즈음 쓰기 좋은 아기 의자도 보내줬는데 뒤늦게야 막내를 임신한 걸 알게 되어 나는 우리 아기 백일이 지난 다음 의자를 도로 보내야 했다. 번역가인 그녀는 첫 아기를 낳으러 가던 순간까지 원고를 부여잡고 있었다. 번역을 다 끝내고 출산을 하는 편이 나았지만 진통이 심해지자 더는 참지 못하고 편집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저히 안 되겠어요. 아기 낳고 와서 마저 할게요.” 편집자는 기겁을 했다. 번역이고 뭐고 당장 병원에 가라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펄펄 뛰었단다. 한 번도 아이 셋의 엄마가 되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던 그녀는 이제 농담처럼 자신과 닮은 아이 셋을 데리고 산다. 아이들은 꼭 한꺼번에 아파서 그녀는 새벽부터 혼자 병원엘 가서 예약을 미리 해두고 시간이 되면 아이를 업고 안고 걸리면서 병원에 다시 간다. 아이들을 입원실에 누여놓고 그녀는 아이고, 지겨워, 내가 이러려고 그 먼 독일까지 가서 공부를 하다 왔나, 한숨을 쉬지만 나는 남의 속도 모르고 그녀가 그렇게나 부럽다. 이렇게 아기가 예쁠 줄 알았으면 나도 하나 더 낳을 걸. 이렇게 사랑스러운 존재가 또 하나, 또 둘 더 있다면 얼마나 감동스러울까 말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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