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는 자서전 ‘나의 투쟁’에서 나치즘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했고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기 전까지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독일 국민도 많았다. 독일의 경제 파탄이 유대인과 영국의 농간이라고 믿었던 젊은 나치 유겐트 조직과 전쟁패배에 대한 복수심에 불탔던 중장년들이 히틀러를 독일의 구세주처럼 떠받들기도 했다. 반대로 많은 지식인이 나치즘의 정체를 파악하고 미국 등으로 망명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외국의 적극적인 구애에도 불구하고 독일에 남은 지식인들도 많았다. 불확정성 원리로 유명한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도 그중 하나였다. 전시의 고통스러운 체험은 현대물리학을 둘러싸고 나눈 대화를 모은 책 ‘부분과 전체’에 담담하게 기록되어 있다. 유대인인 아인슈타인을 변호했다는 죄로 구속되어 악명 높은 게슈타포에 심문을 받았던 일, 징집되어 육군 병기국에서 원자폭탄에 대해 연구하라는 명령을 받고 고민했던 과정도 있다. 나치 정권은 미국에 맞서는 무기를 개발하라는 의도로 탁월한 과학자들을 모아놓았으나 의식 있는 과학자들은 그들의 연구가 전쟁이 끝난 후 평화적인 방식으로 쓰이기만을 희망해서 무기 개발에 협조하지 않았다. 이들이 만약 나치즘에 완전히 세뇌당했다면, 미국보다 먼저 원자폭탄을 개발했을 수도 있었던 아찔한 지점이다. 정치와 무관해 보이는 순수과학도 가치중립을 표방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자연과학이 그러할진대, 인간의 복잡한 행동과 마음을 연구하는 인문학과 예술은 오죽하랴. 권력과는 거리가 멀고 체제 전복 같은 것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이들까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기사로 연일 시끄럽다. 박근혜 정부를 반대하는 홍성담 화백의 그림 때문에 일어난 광주비엔날레의 소동, 정부를 비판하는 영화를 상영하려 했다고 국제적 명성을 쌓았던 부산국제영화제를 난리 통으로 만들어 놓았던 씁쓸한 기억 등등, 이 정부가 문화예술과 언론계에 행한 횡포는 나치즘을 연상케 했다. 하이젠베르크 같은 과학자들이 군대에 끌려가 강제로 수용되더라도 절대 폭력적인 권력에 부역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히틀러가 몰랐던 것처럼, 이 정부 역시 어떤 비열한 탄압도 모든 문화예술인이나 과학자들의 소신을 송두리째 파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어쩌면 그와 같은 문화예술계에 대한 억압이 오늘의 탄핵정국을 가져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일 수 있다. 누르면 누를수록 어느 시점에는 터져 나오는 것이 민중들의 힘이다. 히틀러를 옹호하는 당시의 권력자들은 히틀러의 성공적 권력 유지를 들이대면서, 지식인들의 의견을 일축했지만 결국 모두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최근 복간된 ‘향수’를 쓴 모더니즘파 시인 정지용의 산문집에는 ‘민주주의와 민주주의 싸움’ 이란 제목의 글이 들어 있다. “민주주의가 봉건 지주, 독점자본가, 친일파, 외국상품 전권 제국주의 모리배, 탐관오리, 외군 주둔 무기연기 테러집단 등 반민족적 요소에 걸려 한반도에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라는 대목도 있다. 전통적인 목소리로 자연을 노래한 시인의 눈에 비친 해방 전후의 사회상이나, 블랙리스트에 오른 예술인들의 눈에 비친 최근의 국정농단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70년 전으로 돌려놓은 것 같아 화가 난다. 과학이나 예술 등 문화 발전은 권력자 하나둘이 거스를 수 없는 도저한 흐름이다. 자신을 반대하는 것 같다며 분서갱유를 일으켜 모든 책을 불사르라 명하고, 영원히 살겠다고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지시했던 진시황과 국정화 역사교과서나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줄기세포 면역치료와 각종 이상한 주사를 맞으며 영원한 젊음을 꿈꾸는 권력집단과 그 주변 인물들이 과연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진정한 리더십은 자신과 다른 입장을 너그럽게 포용하고 소통할 때 바로 세워지고 더욱 단단해진다. 타인의 비판에 발끈하며 근거 없는 고집만 세우고, 한편으로는 거짓말이나 밥 먹듯 하면서 죄의식마저 없는 리더라면 일고할 가치도 없는 저급한 잡인에 불과하다. 온 국민을 기만한 것에 대한 죄를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전체주의 시절로 회귀하지 않도록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일이다. 이 정권 초기, 공무원과 그 가족들이 대통령의 인사 농단에 분개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을 하는 장면들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었다. 꽤 많은 공무원이 이 정부 내내 그런 감정을 갖고 일했던 모양이다. 대형 사고가 연일 터지고, 경제가 고꾸라짐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이 손 놓고 있던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입 닥치고 가만히 있으라는 분위기에서 무슨 성과를 내겠는가. 열린 가슴을 가진 지혜로운 리더의 따뜻한 손길은 구성원의 사기를 올려주지만, 무지하면서 폭압적인 리더는 구성원들을 우울과 냉소의 나락에 빠지게 한다.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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