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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칼럼] 군주민수(君舟民水)

입력
2016.12.2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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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전통사상이 강조한 자질과 품성

안으로는 덕성, 밖으로는 용기가 필요해

지도자 잘 가려서 뽑는 게 새해 과제다

교수신문이 올해를 상징하는 한자 성어로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선정했다. 순자(荀子)에 나오는 말로 백성이 물이라면 황제는 배와 같아서, 항상 백성의 마음을 헤아려 정치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필자는 당태종의 전기에서 이 문구를 접한 적이 있다.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통치자의 하나로 꼽히는 그도,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전복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배를 잘 저어가고 싶으면 항상 물을 살펴야 한다고 즐겨 말했다. 그가 위징 같은 신하들의 격렬한 상소를 수용, 개원절류(開源節流), 즉 재원을 늘리고 지출을 줄이는 정책으로 민생 안정을 기하고, 의창(義倉)을 설치해 빈민을 구제하는 정책을 편 것 등은 모두 군주민수의 마음가짐에서다.

동양의 고대사상에서는 정사를 맡을 군자(君子)의 소양과 자질을 강조하는 전통이 면면이 이어져 왔다. 공자는 ‘대학(大學)’에서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을 갖추어 수신(修身)이 되어야 비로소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중용(中庸)’도 지인용(智仁勇)의 덕목, 즉 배움을 좋아하고, 힘써 행하고, 수치를 자각할 것을 군자가 갖춰야 할 천하의 달덕(達德)이라고 했다. 이런 덕목을 갖춰야 비로소 남을 다스리고 국가와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했다.

서양 정치사상에서도 지도자의 덕목을 강조하는 전통이 강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공화국’에서 폴리스의 여러 직종들 가운데 정치와 군사의 임무를 담당하는 공화국의 수호자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았다. 한가지 임무에만 숙달해도 되는 농부나 상인 등과 달리 폴리스의 수호자는 동포에 대한 덕성과 아울러 적에 대한 기개라는 상반된 자질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질을 동시에 갖추게 하기 위해 플라톤은 어린 시절부터 덕성을 함양해 주는 음악과 기개를 길러주는 체육을 집중적으로 교육해서 훌륭한 수호자를 길러 내야 한다고 보았다. 미국의 아이비리그를 포함한 서구 명문대학에서 아직도 학업성적 이외에 음악과 체육을 강조하는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것도 플라톤 정치사상의 영향으로 보인다.

아놀드 토인비는 1940년대에 간행된 ‘역사의 연구’에서 역사상에 존재했던 26개 문명의 흥망성쇠 요인을 살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나 국가의 흥망에는 외침과 같은 외부적 요인보다 창조적 비전을 가진 지도자의 유무가 결정적 열쇠였다고 지적한다. 그는 출애급을 주도한 모세와 같이 종족의 지도자들이 창조적 비전을 보이면서 도전적인 자세로 역경에 대응했을 경우에 문명은 발전했지만, 지도자들이 과거의 관습이나 전통에 얽매일 경우에는 쇠퇴와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동서양의 고전 정치사상에서 강조하고 있는 지도자의 덕목과 자질은 국가의 제도와 체계가 복잡해지고, 국경을 넘어 놀라운 속도로 국제화가 진행되고 있는 21세기의 국제질서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것 같다. 지도자의 리더십 여하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부동의 반석에 서기도 하고, 추락의 기로에 처하기도 한다. 2017년은 세계 주요 국가들에서 리더십의 변화와 상호 간 경쟁이 진행될 전망이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돼 과거와는 다른 대외정책을 예고하고 있다. 강력한 리더십을 자랑해 온 중국, 일본, 러시아 지도자들도 국제사회에서의 자국의 국가이익 추구를 위해 치열한 세력경쟁을 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런 와중에 한국은 탄핵정국의 한복판에서 차기 대선 주자들의 행보가 활발해지고 있다.

과연 어떤 지도자가 유가사상이 면면히 이어 온 수신제가(修身齊家), 혹은 지인용(智仁勇)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있는가. 과연 어떤 지도자가 서양 정치사상이 강조해 온 적에 대한 기개와 동포에 대한 덕성을 동시에 겸비한 리더십을 갖고 있을까. 신년의 국내외 정국을 이런 각도에서 관찰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의미가 있어 보인다. 지도자의 품격 여하에 따라 오히려 백성들이 거친 밤바다의 항해를 하는 듯한 일이 왕왕 빚어지기 때문이다.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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