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급보류자’라는 용어가 있다. 말 그대로 직급을 다 내려놓고 맹숭한 상태로 회사에서 자리만 지켜야 하는 이들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더는 쓰임새가 없다고 판단했으나 해고할 명분이 없으니 저기 한갓진 곳에 책상 하나 밀어주고 가만 앉아계시라 하는 거다. 직급보류자로 분류된 이들은 마음이 상하지만 월급이 나오는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순 없다. 가만 앉아서 정년퇴임일을 기다릴 뿐이다. 대개 그들은 연봉이 꽤나 높았던 오십대 초반 전문관리직 남성들이다. 한때 이 기업을 자신의 손으로 다 만들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산 이들이기도 하다. 그들은 말끔하게 떨어지는 수트가 아주 잘 어울리고, 우아하고 점잖은 미소도 지을 줄 아는 사람들이다. 나는 몇 년 전부터 몇 기업의 직급보류자 연수 강의를 맡고 있다. 한 달짜리 연수 프로그램은 제법 다양하게 기획되어 있다. 문학과 미술, 재테크와 해외연수까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프로그램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직급보류자 명단은 금요일 저녁에 통보되고 그들은 월요일 아침이 되면 사무실이 아닌 연수원으로 출근을 한다. 금요일 저녁에 퇴출을 선고받은 이들에게 월요일 아침의 문학 강연이라니. 나는 이 생뚱맞고 민망한 강연을 여러 번 하면서도 매번 난감하다. 다음 달에 또 강연 일자가 잡혔다. 세 시간 동안 나는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까. 교안은 이미 보냈지만 막막하다. 그리고 먹먹하다. 문학이 정말 그들에게 위로가 될 것인가. 사는 게 참 어렵다. 늙는 것도 어렵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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