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지내던 시절, 내가 다니던 직장은 그 도시에서 가장 큰 백화점 바로 옆이었다. 크리스마스 시즌 세일을 마무리 짓는 12월 26일, 박싱데이가 되면 백화점 앞은 쇼핑 자루를 든 사람들로 그득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자루였다. 나는 그런 광경을 그 도시에서 처음 보았다. 손님도 없이 매일 한산한 주제에 오후 다섯 시 반이면 얄짤없이 문을 닫는 백화점을 보며 늘 혀를 쯔쯔 차곤 했는데. 나는 박싱데이의 쇼핑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서브웨이 샌드위치 반 개를 입에 물고 사람들의 긴 행렬을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조카들의 선물을 사야 했지만 그 인파를 뚫고 백화점에 진입할 자신이 없었다. 이제는 딸이 생기면서 조카들은 뒷전이 되었다. 다행히도 넷이나 되는 조카들은 이제 다 자라서 별로 서운해하지는 않는 눈치다. 게다가 둘째 이모가 무얼 보내줘 봐야 그다지 마음에 들지도 않고, 비슷한 것들은 이미 쌓여 있고, 그랬으니 더는 무얼 선물해도 심드렁했다. 조카들의 선물 고르기에 영 젬병이었던 내가,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내 딸을 위해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했다. 1만3,000원짜리 두꺼운 골판지로 만든 오두막집이었다. 포장을 뜯고 조립을 하고 나니 영 심심해보여 나는 지붕에다 노란 페인트를 바르고 서랍 속 굴러다니는 스티커를 주워다 붙였다. 그리고 주방 창문에 걸던 레이스 커튼을 떼어내 오두막 창문에다 달아주었다. 아기는 오두막 안에 들어가 까꿍놀이를 거짓말 안 보태고 이백 번은 한 듯하다. 지난 십 년간의 크리스마스를 다 돌이켜보아도 이만큼 성공한 선물은 없었다. 하도 문짝을 열고 닫아 벌써 구겨지기 시작한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말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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