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침이 되면 집 근처 호숫가로 달려간다. 호수 표면을 덮은 거대한 물결이 거울이 되어 출렁거린다. 이 물결은 호수의 심연을 감추는 거대한 장막이다. 나는 가만히 앉아 물결의 움직임을 응시한다. 시선이 고정되면 신기하게 흔들림이 사라진다. 그러면 호숫가 안에서 유영하는 물고기의 윤곽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외부의 조그만 자극에도 파문을 일으키는 마음의 호수를 침묵시키니 위한 방법은 정적(靜寂)을 수련하는 것이다. 정적이라는 여과를 통하면 나의 본 모습이 드러난다. 그 모습이란 내 삶을 알게 모르게 조절하는 영향을 주는, 나의 인격을 형성한 나만의 습관이다. 이 습관은 대개 제거하고 남들이 볼 수 없도록 깊숙이 감추고 싶은 민낯이며 괴물이다.

오늘 하루는 이 괴물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더 ‘나은 나’로 태어나려고 주어진 순간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검은색 수첩에 매일 한 개씩 ‘괴물 리스트’를 작성했다. 이 리스트는 나만의 비밀이다. 이기적이며 짐승적인 욕망이다. 괴물 리스트 작성은 그것을 극복하겠다는 나의 고백(告白)이자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決意)다. 나는 이 수첩을 항상 내 주위에 둔다. 내 정신을 단단히 동여매 주는 스승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고백’을 형벌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심지어 범죄자가 재판관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한다면, 그는 죄를 사면받았다. 기원전 4세기 아테네 근처에서 집단생활을 하며 종교공동체를 만들었던 에피쿠로스는 ‘자발적인 상호고백은 공동체 구성원이 자발적인 개선을 위한 길이다’라고 말했다. 기원후 2세기 로마 황제이자 철학자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그의 저서 ‘명상록’에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자신의 과오를 기록한다. 그는 자기 할아버지의 애첩들을 탐하지 않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신에게 감사한다. 아우렐리우스는 도덕적으로 훌륭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남이 아니라 ‘자신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후에 그리스도교 고해성사는 이 고백 전통에서 유래한 것 같다.

‘고백’을 통해 멸망하는 로마제국을 마감하고 중세라는 새로운 시대를 연 신학자가 있다. 4세기 후반, 아프리카 북부 로마 도시 히포의 주교였던 아우구스티누스다. 사십대 초반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397년)이라는 자서전적 책을 남겼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유작 ‘철학적 논거’(1953)도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에 등장하는 언어에 대한 인용으로 시작한다. ‘고백’은 인류의 고전이다. 그는 그 책을 쓰기 10년 전 밀라노에서 수사학을 가르치는 철학 교수였을 때, 자신과 이성과의 대화를 담은 ‘독백’(387년)을 썼다. 그러나 당시 로마는 훈족과 고트족과 같은 이방인들의 침공으로 멸망 직전에 있었다. 이성적인 방식으로 로마멸망이라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그 현상의 이유를 찾아 나섰다. ‘독백’이 자신의 현재를 유지하고 자신의 철학적 사고에 대한 지적인 놀이라면, ‘고백’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있는 그대로 고백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는 영적인 몸부림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은 13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부터 9장은 ‘과거의 자신’에 대한 고백이다. 그는 자신이 저질렀던 죄들과 실수들을 기술했을 뿐만 아니라, 그 당시 자신의 깊은 심리상태까지 세세히 묘사했다.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최초의 ‘심리학자’로 평가한다. 소년 시절 과수원에서 배를 훔친 절도사건, 헌신적인 어머니의 모습, 자신의 첩, 이단으로 정죄된 사교에 가입하여 활동한 시절, 섹스에 대한 병적인 집착, 그리고 성공에 대한 욕심. 누가 자신의 부끄러운 삶을 이렇게 낱낱이 명명백백하게 말할 수 있을까. 고백하는 이유는 이런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며 스스로를 수련하겠다는 다짐이다. 인간은 누구나 수치스러운 일과 실수를 저지른다. 하지만 오직 혁신적인 인간만이 고백한다. 이 고백 자체가 ‘검은 수첩’이 되어 그를 완벽한 인간으로 수련시키는 조련사가 되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부끄러운 잘못을 적나라하게 나열하여 1,4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글로 남겼다. 그래서 고전이 되었다. 이 고백은 그것을 용기 있게 말하는 사람에게 정신적인 깨달음을 선사하고 위대한 삶의 여정에 지표가 된다. 고백은 완벽한 변신이자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한 회심을 위한 첫 단추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국가’에 실린 ‘동굴의 비유’도 이 고백과 회심에 관한 이야기다. 인간은 원래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 깊은 곳에서 동굴 안에 위치한 벽에 투영된 그림자만 보도록 손과 발이 쇠사슬로 묶여있는 수인과 같다. 그들 중 한 혁신가가 ‘결연히’ 자신을 얽매고 있는 편안하면서도 속박하는 사슬을 끊는다. 그리고 자신들이 본 것들 허상이라는 것을 고백한다. 그리고 동굴 밖에 있는 태양을 향해 거룩한 여정을 시작한다.

고백(告白)이란 한자도 이런 의미다. 고백하는 자는 공개적으로 소(牛)를 제물로 바쳐 놓고 ‘하얀 하늘’ 백(白)을 향해 자신의 잘못을 외치는 자기다짐이다. 며칠 전 몇몇 정치인들이 ‘고백, 저부터 반성하겠습니다’라는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그들은 자신을 속박하는 굴레를 끊고 자신들의 과오를 고백하고 동굴을 탈출하는 수인들처럼 보였다. 이 시점에 대한민국에 절실한 리더는 시시비비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남만 탓하는 선동가가 아니라, 더욱더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관찰하고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자다. 우리는 일 년 중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지(冬至) 기간을 보내고 있다. 아니 대한민국이 동지를 지나고 있다. 나는 밤이 가장 긴 이 시절에 나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한다. 그리고 ‘괴물 리스트’를 다시 곱씹어 보면서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새해가 오기 전 사소한 실수까지 찾아내 낱낱이 고백하고 싶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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